[시승기] 쌍용차 토레스 '기대 이상의 만족감, 기대 이하의 실망감'

조회수 2022. 9. 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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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을 지나다 보면 저 멀리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저기까지만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터널이 몇 미터였는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지나왔는지도 잊게 된다. 그저 반갑기만 하다.

쌍용차에게는 토레스가 그런 존재였다. 쌍용차는 법정관리라는 끝없는 터널을 지나면서도 토레스라는 꿈만 바라보고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볼 시간이다. 환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토레스는 과연 기대했던 만큼 좋은 차일까. 토레스 T7 AWD 모델을 직접 시승해봤다.

쌍용차는 토레스 출시 이전부터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차를 처음 마주하면 '내가 알던 쌍용차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동안 재미를 봤던 티볼리의 귀여운 디자인을 완전히 벗어나 선이 굵은 디자인을 사용한 모양새다. 차량 전반적으로 힘 있는 라인이 사용됐고 적재적소를 부풀려놓아 SUV 특유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디자인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곳저곳에 숨겨진 의미를 부여해놓는 기교도 부리기 시작했다. 전면부 주간주행등은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테일램프에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중 리 문양을 형상화해 숨겨두었다.

실내도 만족스럽다. 12.3인치 대화면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아랫쪽에는 대부분의 버튼을 대체하는 8인치 통합 컨트롤 패널이 적용되어 나름대로 최신 자동차라는 인상도 준다.

특히 여유로운 실내 공간이 인상적이다. 코란도와 비교해 휠베이스가 5mm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2열 공간은 훨씬 더 여유로운 느낌이다. 전고도 넉넉해 타고내리기 편안하고, 머리든 다리든 둘 곳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2열을 접지 않아도 깊고 넓고 높은 트렁크를 갖추고 있다. 기본 용량은 703리터로, 뒷좌석을 접으면 1662리터까지 늘어나 캠핑 및 차박에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별도의 작업 없이 거의 평평하게 접히기 때문에 가볍게 이불만 깔아주면 차박할 수 있는 공간이 뚝딱 마련된다.

토레스에는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8.6kgㆍm를 내는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됐다. 한 체급 아래인 코란도와 완전히 똑같은 숫자다. (사륜구동 기준)코란도보다 25cm 더 길고 75kg 더 무거운데 같은 파워트레인이라니. 동력 성능이 다소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됐다.

기우였다. 쌍용차의 1.5 GDi 터보 엔진은 토레스를 끌기에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한다. 제원상 숫자는 같지만, 튜닝을 통해 가속 성능을 끌어올렸다. 쌍용차에 따르면 코란토에 사용된 엔진과 비교해 출발 시 10%, 60~120km/h 구간은 5% 더 빠르게 가속한다. 기대 이상으로 경쾌하게 움직이는데, 차체가 크고 무거워지며 코란도처럼 촐랑거리지 않는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속도에 관계 없이 시종일관 안정적으로 달리는 것도 인상적이다. 키가 큰 SUV임에도 고속도로에서 다소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거나 램프 구간을 꽤 빠른 속도로 내달려도 롤링이 심하지 않아 안심이 된다. 패밀리 SUV를 지향한 만큼 푹신하고 물렁한 승차감에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행 보조 사양도 넉넉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서 달리는 차나 갑자기 끼어드는 차도 잘 감지하며, 차로 유지 보조 장치도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작동한다. 여기에 옵션으로 제공되는 후측방 경고나 후측방 충돌 방지 보조, 안전 하차 경고, 전방 주차 보조 경고까지. 싼타페나 쏘렌토 못지않게 두루 갖추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옆구리의 사이드 박스, 한쪽으로 치우친 뒷 번호판, 보닛 가니쉬 등 부분부분을 살펴보면 자꾸만 다른 자동차가 아른거린다. 게다가 방수가 되지 않는 사이드 스토리지 박스는 활용도가 제한된다. 물론 애초에 회사가 방수 박스라고 설명한 적도 없고, 물놀이 이후 젖은 옷을 넣거나 물에 닿아도 상관없는 공구 등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내가 만약 토레스를 산다면 굳이 30만원을 주고 추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계기판은 스티어링 휠 가운데 쏙 들어가 귀엽긴 하지만, 위아래로 좁고 위치가 밑으로 내려가 있어 시인성이 좋지는 않다. 가운데 LCD에는 순간 연비나 시동을 건 이후 주행 연비는 나오는데, 누적 연비는 표시되지 않는다.

가장 큰 불만은 12.3인치 메인 디스플레이 아래에 있는 8인치 터치패널이다. 공조 장치 버튼을 대체하는 보조 디스플레이인 셈인데, 굳이? 라는 생각이 든다. 주행 모드부터 통풍/열선 시트, 트렁크 개폐까지 모든 조작부를 한 곳에 몰아뒀는데 선명하지도, 화면 전환이 부드럽지도, 보기 편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에어컨을 켜기 위해 온도나 풍량 조절을 누르면 윗쪽 커다란 디스플레이에 똑같은 화면이 표시된다. 이럴 거면 메인 디스플레이 구석에 공조 장치를 표시하고, 주행 모드나 통풍/열선 시트처럼 자주 쓰는 기능은 물리 버튼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외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나 내비게이션이 전체화면으로 표시되지 않는 점 등 소소한 불만도 있지만, 쌍용차가 추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기대해 보겠다.

토레스는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9회말 2아웃에 쏘아올린 추격자의 홈런과도 같다. 그냥 빨리 경기를 끝내길 바라는 누군가에게는 시간 끌기로 보이겠지만, 간절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한 방이다. 쌍용차는 회사가 법정 관리에 넘겨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토레스를 빚어냈고 그 간절함은 6만대가 넘는 계약 건수로 돌아왔다.

사실 코란도 e-모션을 보고 쌍용차의 미래가 정말 어둡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토레스를 보고 다음 차를 기대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쌍용차가 역전의 연타석 홈런을 때려낼 수 있을까? 무엇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다음 타석에는 코란도 후속인 KR10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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