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성비 높은 신용카드를 일컫는 '혜자카드'의 명맥은 완전히 끊긴 것일까? 제주은행의 여행 특화 신용카드가 혜자카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금융소비자 사이에서 물밑 입소문을 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제주은행의 '제주지니 에어머니(JEJUJINI Air Money)' 카드는 연회비 6만원(비자 플래티넘 브랜드)을 낸 고객을 대상으로 실적 요구 없이 실용성 높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매년 1회 동반하는 승객 1인에게 국내선 무료항공권을 지급한다. 제주지역 여행 시 렌터카 24시간 무료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최초 신규가입 또는 갱신 시 국내 특급 호텔 무료숙박권을 제공하고, 해외 호텔 무료숙박 혜택은 매년 1회 이용할 수 있다. 2박 이상 숙박 시 1박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연회비 2만원의 기본카드 혜택도 나쁘진 않다. 국내 이용 시 에어머니(AIRMONEY) 0.3~0.7% 적립(전월실적 30~50만원 필요), 해외 이용 시 에어머니 1.0%(전월실적 30만원 필요) 적립 혜택을 제공한다. 제주지니 가맹점 이용 시 3% 청구할인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제주은행의 디지털 플랫폼 제주지니는 제주 맛집·관광지·특산물 등을 추천해주는 지역특화 여행앱이다.
이 카드는 지난 2020년 출시됐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돼 여행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금융소비자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올 6월 단종된 KB국민카드의 항공여행 특화카드 '로블(ROVL)'에 견줘 비교될 정도다. 제주도내 '렌터카 총량제' 영향으로 렌터카를 빌리는 비용만 하루 20만원에 달하는 등 물가 상승이 에어머니 카드의 매력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은행이 '에어머니' 카드로 원하는 것은?
이러한 혜택을 살펴보면 에어머니 카드는 제주 내지인보다는 외지인을 겨냥한 경향성이 크다. 제주은행은 20여년간 제주에 특화한 지역은행이 되겠다는 뜻의 '로컬 톱 뱅크(Locol Top Bank)'를 비전으로 삼아왔다. 그런 만큼 '육지사람들'에게 제주은행은 가깝지만 먼 존재였었다.
제주은행의 '탈로컬'에는 최대주주인 신한금융그룹의 의지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2002년 제주은행을 인수한 신한금융그룹은 로컬특화 전략을 존중해왔지만, 최근 제주은행의 실적은 그룹 성적표에 '옥에 티'로 보일 정도로 악화세가 뚜렷하다.
제주은행은 올 상반기 순이익이 102억원으로 전년 동기(141억원)보다 27.3% 감소했다. 금리상승기 효과로 신한은행 순이익이 같은 기간 22.8% 증가했음에도 제주은행은 오히려 역진한 것이다. 신한저축은행(217억원)에도 더블스코어로 밀린다.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이 지난해 상반기 46억원에서 올 상반기 124억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 신용손실충당금이란 부실화 우려가 있는 대출금을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 항목을 뜻한다.

제주은행의 지역특화라는 특색이 오히려 자산구조의 경직성을 강화시켜 경기변화에 더욱 취약한 내생적 한계로도 작용하고 있단 분석이다. 제주은행의 원화대출금 중 개인사업자대출 및 가계대출 비중은 약 75%에 이른다. 관광 서비스업 위주 산업구조의 영향에 따른다. 기업여신 역시 도소매, 숙박음식, 부동산 등 경기민감도가 높은 업종의 비중이 약 70%에 달한다. 관광경기가 악화되면 제주은행 대출 포트폴리오 역시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기업여신은 80%가량이 담보 및 보증대출로 신용보강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2019~2020년 제주지역의 지가지수가 하락해 담보가치 하락 위험이 높아졌지만 2021년부터는 지가지수가 다시금 상승했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당 제주지역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583만원으로 서울(855만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였다.
잠재고객 발굴도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 인구 유입 현황을 보면 올 7월까지 2353명이 유입됐는데 20대 1039명, 10대 515명은 도외로 나갔다. 제주은행은 공시에서 "도내 기업대출 중심의 견고한 시장, 그리고 미래 성장 기반인 MZ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 성장을 보이겠다"고 했지만 영업환경은 그와 반대되고 있다.
제주지니 에어머니 카드의 인기는 제주은행 특유의 리스크를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이벤트로 평가된다. 제주지역을 벗어나 외지인의 결제 및 대출채권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자산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이 제주도 현지에 치중된 제주은행의 자산 다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해당 카드는 제주은행 관광앱인 '제주지니'와 밀접한 성격을 지닌 만큼, 디지털채널 집객력을 높이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기대된다.
곽수연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제주은행은 올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여신금리 상승으로 이자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여신구조에 내재된 자산건전성 저하 우려로 인해 대손부담은 지속적으로 수익구조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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