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다.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있지만, 나는 곧 다가올 봄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사방에 제철을 맞이한 꽃들이 만개하는 계절. 잦은 봄비와 내려앉은 햇살까지, 걸음걸음마다 코 끝을 스치는 냄새가 쉴 새 없이 바뀌는 봄은 조향사인 나에게 한없이 즐거운 때이다.
나 말고도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겠지. 특히 새로운 대학 생활을 시작할 신입생들에게는 정말로 설레는 한 시절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날들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줄 향수를 추천하려 한다. 가급적 흔하거나 뻔하지 않은, 그래서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는 향으로 골라보았다. 꼭 신입생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릴, 편안함과 순수함, 청량함과 사랑스러움을 갖춘 향수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
어비어스 뮈스크
어비어스는 ‘Less is more’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철학을 지닌 브랜드다. 그래서인지 어비어스의 향들은 언제나 중용을 지키는 듯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밸런스를 잘 맞춘다. 특히 어비어스의 ‘뮈스크’는 머스크 향을 담백하게 풀어낸 것이 장점. 머스크 향수를 흔히 ‘살내음 향수’라고 하는데, 사람의 체취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단독으로는 존재감도 발향력도 약하기 때문에 어떤 향과 조합되느냐에 따라 그 색이 확확 달라지는 향조기도 하다.
어비어스의 뮈스크는 심플하게 머스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첫 향부터 차분한 베이지 컬러가 떠오르는 포슬포슬한 질감의 머스크로 시작되며, 머스크 향수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옅은 넛맥과 진저의 조합이 함께 느껴지지만 향신료 같은 뉘앙스가 아니라 달큰하고 오묘한 우디처럼 잔잔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거두절미하고 바로 머스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포근한 질감이 느껴지는 클래식한 머스크랄까. 그리고 마지막은 따끈한 온도감이 있으면서도 살내음처럼 느껴지는 엠버그리스가 부드럽게 깔리면서 편안한 체취로 마무리된다. 단정한 니트나 가디건을 입고 도서관 혹은 서점을 즐겨 찾는 지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향으로, 새롭고 낯선 세상을 마주할 때 안정감을 찾게 해주는 힐링템이 되어주리라 예상된다.
두 번째,
도르세 에흐.베.
신입생의 싱그러운 이미지를 향기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향이 아닐까. 도르세는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브랜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랑을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 ‘장미’를 담았다는 에흐.베.(R.B.)의 향기는 오히려 순수한 느낌을 주는 향이다.
탑노트는 투명하고 산뜻한 꽃의 향으로 시작된다. 그리너리한 프리지아와 향긋한 장미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플로럴 노트들의 조화가 화사하다. 마치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봄날의 캠퍼스를 향으로 그려낸 것만 같달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부드러운 비누 향이 올라오면서 깨끗한 느낌이 부각된다.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비누나 쨍한 세탁 세제의 느낌보다는 꽃비누로 막 씻고 나온 듯 촉촉하고 자연스러운 느낌. 비누 향이 베이스 노트의 머스크 향과 이어지며 잔향으로 보송보송한 질감과 조금은 따뜻한 온도감을 더해준다. 아침에 막 뿌렸을 때는 화사함을, 저녁엔 향긋한 편안함을 잔향으로 즐길 수 있는 향수. 흰 티에 청바지나 심플한 원피스에 뿌리면 그 꾸밈없는 매력에 포인트를 만들어 줄 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 번째,
산타마리아 노벨라 메디치 가든 컬렉션의 아쿠아
산타마리아 노벨라는 비누 향의 정석으로 알려진 ‘프리지아’ 향수로 유명한 브랜드다. 최근 메디치 가문의 기록에 남아있던 꽃과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메디치 가든 컬렉션’이 새롭게 출시되었는데, 클래식한 느낌이 부각되었던 이전의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향수들과 달리 프레시하고 생동감 넘치는 향들을 담은 게 특징이다. 마치 모든 것이 만개한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중에서도 신입생에게 찰떡일 향은 바로 ‘아쿠아’다.
첫 향은 물기 어린 서양배 향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다. 이내 아쿠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물내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비릿한 느낌 하나 없이 살짝 달콤하고 투명한 물내음이라 호불호 갈리지 않고 누구나 마음에 들어 할 향이다. 이후에는 맑은 느낌의 꽃향기들이 이어지면서 싱그러운 무드를 조성한다. 플로럴 노트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꽃의 느낌이 도드라진다기보다 물의 청량함을 표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남자가 쓰기에도 좋은 중성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어쩐지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둥글둥글한 성격과 훈훈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떠오르는 향이랄까. 성별 상관없이 깔끔한 셔츠에도, 편안한 후드티에도 두루 잘 어울리기 때문에 활용도로 보면 100점 만점인 향수다.
마지막 향수,
퍼퓸 드 말리 델리나
퍼퓸 드 말리는 프랑스 왕실의 헤리티지를 담은 향수 브랜드로, 전반적인 향이 ‘귀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중 델리나는 퍼퓸 드 말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공주님 향기’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렇다고 유치한 느낌의 향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조된 향에 가깝다.
뿌린 직후에는 달콤하고 쥬시한 리치 향기가 가장 먼저 느껴진다. 그 사이사이에 시트러스와 루바브로 상큼한 느낌을 더해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함이 화사하게 퍼져 나간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핑크빛 무드가 도착하는 곳은 장미와 피오니(작약). 특히 피오니 특유의 보드라운 질감이 강조된 플로럴 노트가 사랑스러운 무드를 극대화한다. 곧바로 투명하게 이어질 듯한 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머스크와 바닐라, 옅은 우디와 캐시메란의 조합으로 벨벳처럼 고급스러운 질감을 드러낸다. 잔향은 피부에 내려앉은 햇빛처럼 따사롭고 달콤한 프루티 플로럴 향으로 오래 남는 편. 이런 향은 여자만 쓸 것 같지만, 의외로 스눕독의 최애 향수라는 반전 매력이 있으니 남자라도 한 번쯤 트라이해 볼 것. 생각지도 못한 인생 향수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