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역사와 사연을 품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
[이병록 기자]
1992년, 인천 2함대 사령부에서 유도탄고속함 함장으로 복무하며 주안동에 살았다.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보다 많았던 시절이다. 30년이 지나 다시 이곳, '남구'가 아닌 '미추홀구'로 돌아왔다. 이제는 낯익은 기억과 풍경이 새로운 이름과 함께 다가온다.
서울이나 부산, 광주처럼 대부분 대도시가 여전히 '동·서·남·북' 같은 방위 중심 행정구 명칭을 고수하는 가운데, 인천이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이름인 '미추홀'을 되찾은 일은 참 반가운 변화다. 나는 다른 도시들 역시 무채색 이름 대신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름을 되찾기를 바란다. 이름은 단지 방위(方位)가 아니라 그 땅에 스며든 시간의 결을 다시금 되살리는 작업이다.
미추홀, 2천 년 전 물의 고을
'미추홀(彌鄒忽)'은 고대 백제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는 이름이다. '물의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지명은 약 2000년 전부터 존재했다. 오랜 세월 침묵 속에 잊혔지만, 마침내 제자리를 되찾았다. 이름을 되찾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땅에 스며든 시간의 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두 가지 설이 있지만, 비류와 온조 두 형제가 남쪽으로 내려와, 형 비류가 나라를 세운 땅이 바로 미추홀이다. 이후 오랜 세월 중심지 역할을 하다,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도심의 중심축이 항구로 옮겨가며 문학산 아랫마을은 '구읍면'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의 파도 속에서, '남구'라는 이름 아래 60여 년이 흘렀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정착하며 삶을 일궈왔다. 그러던 중 2018년 7월 1일, 남구는 잃어버렸던 이름 '미추홀구'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을 인천의 또 다른 '개항일'이라 부르고 싶다. 단지 행정구 이름이 바뀐 날이 아니라, 잊혔던 자존심과 정체성이 되살아난 날이기 때문이다.
이름 속에 깃든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
미추홀구의 동네 이름들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사연을 품고 있다. 지금은 인천 육지의 중심부이지만, 내가 사는 주안동 일대는 과거 염전이 펼쳐졌던 바닷가였다. '염전로'라는 도로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학익동의 옛 지명 '햇골'은 조개가 나는 해변 마을이었음을 말해준다. 이곳의 본래 얼굴은 물과 소금, 조개와 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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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미추홀구 수봉산 영산정사 영산정사에 바라본 마을 풍경이다. 수봉산 아래 옛 마을과 산보다 높게 올라가는 아파트 풍경이 대조된다. 6월 4일 촬영. |
| ⓒ 이병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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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용에서 유래한 용현동에 있는 용현시장은 잘 정비된 재래시장이고, 용의 형상이 용현동임을 알려준다. 6월 4일 촬영. |
| ⓒ 이병록 |
문학동은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이자, 인천의 역사적 뿌리가 서려 있는 곳이다. 문학산 일대에는 인천도호부 관아, 인천향교, 학산서원터, 삼호현 등 수많은 유적이 모여 있다. 고려 시대에는 인주로 승격되어 번성했지만, 1883년 개항 이후 도심 기능이 옮겨가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문학동에서 분리된 관교동은 '관청리'와 '향교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 얼굴을 되찾는 일
'미추홀'이라는 이름 안에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정체성이 흐릿해진 시대,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자기 얼굴을 다시 찾는 일이다. 만약 다른 대도시들도 방위 중심의 무채색 행정명에서 벗어나,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적 뿌리를 담은 이름을 되찾는다면 행정구역 하나하나가 단순한 지도상의 경계가 아니라, 사람과 기억이 깃든 '삶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인천 '미추홀'은 그 가장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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