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메이저리거의 특이한 결혼 발표
바들바들 떤 다저스 홍보팀
현지 시간으로 오전 9시 17분이다. 훈련 시작이 겨우 13분 남았다.
그때였다. 빌 플런킷 기자가 갑자기 호들갑을 떤다. OC레지스터 소속으로 오랜 기간 다저스를 취재한 베테랑이다. 기자실에서 서툰 일본어를 외친다. “하야쿠, 하야쿠(빨리, 빨리).” 뭔가 비상 상황인 것 같다.
곧 진상이 밝혀졌다. 사사키 로키(23)의 짤막한 SNS 탓이다. ”며칠 전 평범한 여성과 가족이 됐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 주세요.”
기자실이 발칵 뒤집어진다. 홍보팀은 거의 패닉 상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진땀을 뻘뻘 흘린다. 그도 그럴 법하다.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러니 해줄 말도 없다. “우리도 15분 전에 알았어요.”
안쓰럽게 지켜보던 한 기자가 SNS에 이렇게 묘사한다. “조(자렉)가 너무 당황해 바들바들 떨더라.” 조 자렉은 홍보팀 시니어 디렉터다. 20년 가까운 경력을 가졌다. 그야말로 사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바들바들 떨었다니…. 이해가 간다. 오죽 시달렸겠나. 작년 이맘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정색한 구단의 신신당부가 이어진다. “결혼에 대한 질문은 오늘만 받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상대(신부)에 대해 알고 싶어도, 절대 (사사키 로키의) 집으로는 가면 안 됩니다.”
물론 경고의 대상은 일본 취재진이다. 헬기, 드론 같은 단어는 철저히 금기어로 통한다. 자칫 하면 (언론사) 사장이 직접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부랴부랴 마련된 기자회견
부랴부랴 기자회견 자리가 마련됐다.
기자 “언제 결혼했나(혼인신고).”
로키 “(지난해) 시즌 끝나고 나서다.”
기자 “왜 이 타이밍에 발표했나.”
로키 “메이저리그 도전 첫 해다. 새롭게 시즌을 맞고 싶었다. 곧 실전이 시작될 것이고, 그전에 사실을 밝히고, 마음을 정리한다는 의미다.”
기자 “SNS 발표가 조심스러웠을 텐데.”
로키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질문받는 것도 긴장된다. 아직 말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아직 (시차 때문에) 한밤중이다. 일어나서 소식이 전해지면 이런저런 반응이 생길 것 같다.”
기자 “부인은 뭐라고 하던가.”
로키 “역시 긴장된다고 하더라. ‘(기자회견에서) 이상한 말은 제발 하지 말라’고 했다.”
기자 “오타니와 야마모토의 반응은 어떤가.”
로키 "방금 전, 오늘 아침에 얘기했다. 깜짝 놀라더라.”
기자 “결혼이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로키 “아무래도 첫 해에는 어려운 일이 많지 않겠나. 그래도 둘이 있으면, 서로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팎으로 새로운 시작이 되니까,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 “(애리조나) 캠프에 와 있나.”
로키 “오지 않았다.”
‘영양가’ 없는 문답
급하게 마련된 인터뷰였다. 오간 문답은 대부분 뻔한 내용이다. ‘영양가 하나도 없네.’ (기자들) 업계에서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뭔가 구체적이고, 자세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입을 꾹 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물음이다.
“상대는 어떤 사람인가(직업, 성격, 외적인 특징 등)?”
“언제, 어떻게 만났나?”
그야말로 열애 혹은 결혼 기사의 ABC다. 여기에 대해서는 철저한 묵비권 행사다. 그냥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한다.
간신히 얻어낸 대답이 고작 이 정도다. “착한 사람이다.”
호칭에 대한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 “(성을 빼고) 아래 이름으로 부른다.”
‘요리도 해주냐’라고 묻자 “그렇다”라고 한다. “직접 만들어주는 요리가 맛있다”라는 자랑도 늘어놓는다. 그런데 ‘무슨 요리냐’고 물으면, 여기서 벽을 친다. “그건….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이런 얘기다. 작년 시즌을 마치고 혼인 신고를 마쳤다. 애리조나 캠프에는 오지 않았고, LA로 돌아가면 신혼살림을 꾸릴 것이다.
딱 그 정도다.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전혀 알려진 게 없다.
물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무척 특이하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하는 정서를 느낀다.
하긴, 작년 오타니 때도 비슷했다. 초반에는 신부의 신상에 대해서 쉬쉬했다. 그러다가 몇 주 뒤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미 네티즌 수사대의 포위망이 좁혀진 상태였다.
어찌 보면 일본 유명인의 특성인 것 같다. 가족의 신상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다. 상대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더 그렇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질라가 귀국하지 않는 이유
2008년 얘기다. 양키스에 노총각 3인방이 있었다. 1974년생(당시 34세) 데릭 지터, 바비 아브레우, 마쓰이 히데키였다.
2월 스프링캠프 때였다. 클럽하우스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셋 중에 누가 먼저 품절남이 되느냐’를 놓고 내기가 걸렸다. 압도적인 우승 후보는 지터였다. 수많은 핑크빛 소문의 주인공 아닌가.
그런데 결과는 전혀 의외다. 얌전한 고양이가 가장 먼저 부뚜막에 올랐다. 스캔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고질라 마쓰이였다. 개막 직전인 3월 말이다. 갑자기 경조사 휴가를 신청한다. 사유는 본인 결혼식 참석이다.
이때까지 팀원들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식 올리기 직전, 감독(조 지라디)에게만 보고된 1급 보안이었다.
알고 보니 1년 넘게 기다린 약혼자가 있었다. 직장을 다니던 일반인 여성이었다. 결혼식 자체도 비공개로 치러졌다. 직계 가족과 절친 몇 명, 그리고 양키스 쪽 인사 2명이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도대체 어떤 여성이냐. 일본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시작됐다. 당사자는 딱 몇 마디로 잘라낸다. “일본에 사는 사람이다. 작년에 만났다. 나이는 25세, 일반인이다. 느낌이 서로 맞는 짝이다.”
그 이상은 입을 닫는다. 기가 막힌 일은 그다음이다. 사진 대신 그림을 들고 보여준다. 마쓰이 자신이 연필로 그린 초상화다. 그 장면이 스포츠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몇 가지 사실이 취재로 드러났다. 같은 고향 출신이고,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근무하던 여성이라는 등의 신상 정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 이상은 확실히 선을 긋는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 일본 언론들이 더 깊게는 파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그런 존중이 있었던 시절이다.
덕분에 ‘미세스 마쓰이’는 여전히 미공개 인물이다. 추정되는 여성의 사진이 몇 번 SNS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뉴욕 인근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아마 일본에 돌아간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쓰이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다.
마쓰이 히데키는 성공했다. 17년간 세상의 눈으로부터 아내를 지켰다.
어쩌면 사사키 로키의 바람도 같을지 모른다.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가능한 오래 신부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2년 전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일본의 남자 피겨 스타 하뉴 유즈루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일반인 아내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주간지가 그녀를 찾아냈다. 이후 과도한 팬심이 여성에게 쏠렸다.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3개월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