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LG전자가 TV 사업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B2B 디스플레이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여기서마저도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성장성이 높은 디지털 사이니지와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에 중국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과 공급망을 앞세워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삼성과 LG가 결국 또 한 번 중국과의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사이니지와 상업용 디스플레이 등 B2B 디스플레이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TV 시장이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서 소비자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만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공항과 쇼핑몰, 지하철, 기업 회의실 등 다양한 상업 공간에서 디지털 디스플레이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 역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들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는 지난 2023년 약 230억달러(약 31조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40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년 키운 B2B 디스플레이…TV 이후 또 다른 축

삼성과 LG가 B2B 디스플레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두 회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공항과 지하철, 매장 등에 설치되는 정보 디스플레이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LCD 패널 기반의 상업용 디스플레이가 시장의 중심이었고 삼성과 LG는 디스플레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했다.
2010년대 들어 디지털 광고 시장이 성장하면서 디지털 사이니지 수요는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 종이 광고판과 현수막 중심이던 오프라인 광고가 대형 디지털 스크린으로 바뀌면서 공항과 쇼핑몰, 대형 매장 등에서 디스플레이 설치가 늘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 사이니지' 제품군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고 LG전자 역시 OLED 사이니지와 호텔TV 등 다양한 B2B 제품군을 확대했다.
실적에서도 이런 흐름은 확인된다. LG전자의 B2B 디스플레이 사업이 포함된 비즈니스솔루션(BS) 사업본부 매출은 2019년 약 6조원 수준에서 2024년 약 5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TV 사업과 B2B 디스플레이 사업이 MS사업본부로 묶이면서 B2B 실적을 따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LG전자의 대표적인 B2B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디지털 사이니지와 상업용 디스플레이 등 B2B 디스플레이 사업 규모가 연간 약 4조원 안팎 수준으로 업계에서 추산된다.
B2B 디스플레이 시장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이 덜하고 프로젝트 기반 계약이 많다는 점이다. 공항이나 대형 쇼핑몰, 기업 회의실 등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는 한 번 계약이 체결되면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TV처럼 매년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 소비자 가전 시장과 비교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업용 디스플레이도 예외 없다…중국의 추격

문제는 10년 전부턴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의 기술 중심이 LCD에서 LED 기반 디스플레이로 이동하면서 이 시장을 점하기 위해 경쟁사들이 대거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대형 광고판이나 스타디움 전광판, 건물 외벽 디스플레이 등 초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LED 사이니지 수요가 빠르게 늘었다.
이를 기회 삼아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LED 디스플레이 시장에는 레야드(Leyard), 유니루민(Unilumin), 앱센(Absen) 등 중국 기업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들 기업은 가격 경쟁력과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실적에서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레야드의 지난 2023년 매출은 약 70억위안(약 1조3000억원) 수준이며 유니루민 역시 약 60억위안(약 1조1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다. 앱센 역시 연간 약 40억위안(약 76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며 글로벌 LED 사이니지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LED업체들의 공세에 삼성과 LG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 LED 기반 초대형 디스플레이 '더 월(The Wall)'을 앞세워 초대형 프리미엄 사이니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LG전자는 마이크로 LED 사이니지 ‘LG 매그니트(MAGNIT)’ 브랜드와 OLED 사이니지, 투명 디스플레이 등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다만 삼성과 LG의 프리미엄 전략이 장기적으로도 우위를 보장해줄지는 불확실하다. 중국 업체들도 점차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BOE와 TCL 등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OLED와 미니 LED 등 차세대 패널 투자를 확대하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TV 시장에서 시작된 중국 업체들의 추격은 이제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B2B 디스플레이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우고 있지만 향후 시장이 커질수록 중국 업체들과의 정면 경쟁 역시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과 LG가 선택한 새로운 성장 동력 역시 또 다른 경쟁 국면에 놓였다는 점에서 상황은 TV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TV 이후의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도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이라는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장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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