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200% 자신을 너무 닮아서 행복하다는 배우
[인터뷰] 조정석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는 법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캐릭터에 제 자신이 잘 대입이 됐어요. 지문을 보는데 제가 할 것 같은 제스처도 생각났고요. 그런 부분이 저에게 재밌게 다가왔어요."
7월31일 개봉하는 영화 '파일럿'(감독 김한결·제작 쇼트케이크)에서 '여장'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역할을 소화한 배우 조정석의 말이다.
'파일럿'은 잘나가는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가 재취업을 위해 여성인 한정미로 파격 변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석은 "뮤지컬 '헤드윅'을 오랫동안 해서 여장에 대한 부담감과 어려움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파일럿'은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조정석표 코미디 연기'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좋다. 극중 조정석은 스타 파일럿과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는 '고운' 여장남자의 모습을 이질감 없이 소화했다.
조정석은 역할을 위해 몸무게 7kg을 감량한 건 물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분장, 의상팀과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영화 속 한정미를 완성했다. 여러 스타일의 가발은 물론 100벌 이상의 여성 옷을 착용하며 어떤 의상이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지 상의하고 고민했다.
"처음 여장을 한 제 모습을 보고 다들 아쉬워했는데, 그래도 '해낼 수 있어!' 응원하는 분위기였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가발을 썼는데 어울리지 않아서 탈락했어요. 제가 '무쌍'이라 쌍꺼풀 테이프에도 도전했는데, 그것도 탈락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 "도전이 좋아" 40대 '헤드윅'부터 '신인가수 조정석'까지
조정석의 여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뮤지컬 '헤드윅'은 드래그 퀸(여장한 남성 성소수자)인 헤드윅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이 여성 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 오른다.
조정석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다섯 번째로 '헤드윅'에 참여했다. 뽀얀 피부 때문에 '뽀드윅'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조정석의 애정 또한 남달라 보였다.
"제가 20대 때 처음 '헤드윅'을 했는데, 빨리 40대가 되고 싶었어요. 잘하고 싶은 열정과 욕심 때문이었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40대 헤드윅을 실제 40대에 연기하면 어떨지 궁금했죠. 40대가 된 지금, 20대 때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조정석은 "'헤드윅'을 하지 않았더라도 '파일럿'에 출연을 것"이라면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고민하지 않고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정석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신인가수 조정석'을 통해 신인 가수 데뷔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앞서 가수 데뷔 쇼케이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의 감독, 작가와 친해요. 작년에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 토크를 하디가 제가 습작으로 만든 노래를 들려줬는데 '너무 재밌다'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뒤에 프로그램을 제안해 줬죠. 저도 솔깃했어요."
● 딸에게 바라는 거? "다양한 경험"
극중 한정우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족들에게 소홀한 인물이다.
2018년 가수 거미와 결혼해 딸을 키우는 조정석은 '어떤 아빠인지' 묻는 질문에 "집에 가면 해파리도 되고, 곰돌이도 돼야 한다"면서 "딸이 100일 이후부터 너무 바빠져서 주 양육자가 거미씨가 됐지만, 촬영이 없을 때는 놀아주려고 하는 아빠"라고 설명했다.
"놀아줄 때는 미친 듯이, 재밌게 놀아줘요. 아이가 다섯 살인데, 제 개그가 잘 먹혀요. 내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지러집니다. 하하."
딸이 "자유롭게 일상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던 조정석은 "제가 딸에게 바라는 건 경험이다"고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고 깨닫고 발전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제 딸이 많은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
올해 만으로 44세인 조정석은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후회가 없다"면서 "후회되는 순간이나 기억이 없다"고 고백했다.
"제가 기타를 전공하겠다고 3수를 한 뒤에 연기과로 서울예술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식 날이 생각나요. 그때 제가 캠퍼스 정문 앞에서 멈춰 섰어요. 그리고 '열심히 할 거야' '보여준다'라는 마음으로 들어갔죠. 돈 벌려고 학교 졸업은 못했지만, 정말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이후 조정석은 수많은 공연과 드라마, 스크린을 오가며 활약했다.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고, 실패와 성공을 규정짓지 말자는 생각"으로 달려왔던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네가 있어서 내가 있는 거다. 고맙다! 잘했어"라고 외쳐 웃음을 안겼다.
● '파일럿' 이후 '행복의 나라' "감사해"
조정석은 '파일럿' 이후 다음 달 14일 또 다른 주연영화 '행복의 나라'를 선보인다.
연달아 작품을 선보이는 상황에 대해 "인생이 예상대로 흘러가면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게 지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두 작품을 공개하는 '부담'에 대해 "항상 이겨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조정석은 "10년 후에도 계속 무대든, TV든, 스크린이든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을 거 같다"면서 "그때도 아직 한창때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 같다"고 웃었다.
아빠로서의 모습도 떠올렸다. "10년 뒤면 딸이 중학교 2학년인데, 너무 재밌을 것 같다"면서 "그때가 되면 저와 잘 안 놀아줄 수도 있겠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