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꼭꼭 씹어 마시면 소화가 더 잘될까?

이 사진을 보라. 우유를 꼭꼭 씹어먹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액체인 우유를 어떻게 꼭꼭 씹어서 먹으라는 얘기지? 그렇게 마시면 우리 몸에 더 좋은 건가?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우유 마실 때 꼭꼭 씹어서 마시라고 강조했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TV에도 나왔던 걸 보면 제법 오랫동안 나왔던 이야기인거 같다.

같은 90년대생인 왱 팀원 중에서도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고 진짜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도 있고 반응이 달랐다. 유튜브 댓글로 “우유를 씹어서 마셔야 한다는 말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지,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 취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서 취재했다.

우유를 씹어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 뭔소리인가 싶긴 하지만 유명 우유 업체와 농촌진흥청에서 이런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우유 속에 고형분이 많이 들어있으니 입 안에서 씹듯이 먹는 게 좋고, 침과 잘 섞여 소화가 잘 된다는 거다. 고형분이란 수분을 제거했을 때 남은 영양 성분으로 우유 속에 함유된 단백질, 유당, 지방, 칼슘, 철분 등을 얘기한다. 농촌진흥청도 2015년 ‘우유를 천천히 씹듯이 마시면 침과 잘 섞여서 더 효과적으로 체내에 흡수된다’고 소개했다.

그럼 정말 우유를 씹듯이 마시면 소화가 더 잘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홈페이지에 이 내용을 담은 서울우유에 물어봤는데 뭔가 자신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우유 관계자
“저희가 사실 연구소가 있기는 한데, 제품 연구에 대한 그런 내용들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기업이다 보니까 우유의 효능이라든가 이거를 깊숙이 들어가는 건 사실 저희보다는 학계 쪽이 낫지 않을까 싶어요”

홈페이지 하단에는 ‘이 콘텐츠는 일본 낙농유업협회에서 제공받아 서비스하는 것으로 번역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우유 제조업체 연구소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해봤는데 여긴 아예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A우유 연구소장
“ㅎㅎ 처음 듣는 얘기여서... 그런 얘기(우유를 꼭꼭 씹어 마시라는)가 있었어요 옛날에?”

관련 연구가 있었는지도 물어봤는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A우유 연구소장
“그런 건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과학적으로, (우유를 씹는 게) 소화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우유의 성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이연숙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도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연숙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그게 (우윳 속에) 고형분이 있기 때문에 꼭꼭 씹어먹어라, 그거는 아니에요. 고형분이란 건 위에서 주물럭 주물럭 해갖고 죽으로 만드는 건데, 근데 우유에는 주물럭 주물럭할 만큼의 고형분이 없어요. 그러니까는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는 거는 과학적이라고 할 수가 없고...”

침과 잘 섞이면 우유가 체내에 더 잘 흡수된다는 것 역시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침 속에 담긴 아밀라아제가 당분을 분해하기는 하지만 우유의 유당을 분해하지는 않는다. 유당을 분해하는 건 소장에 있는 락타아제라는 효소인데, 우유를 입속에 오래 머금고 있는다고 락타아제가 더 많이 분비된다는 근거는 없다. 일각에서 침 속 리파아제가 지방 분해 효소라서 우유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하지만, 리파아제는 침보다는 주로 췌장액에 분비되며 유당 분해나 우유 흡수와는 상관없다고 앞에서 나온 업체 연구소장은 설명했다.

그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보이고 자칫 우유를 입에 머금고 무리하게 씹다보면 치아 다 나갈것 같은 이런 얘기가 확산된 이유가 뭘까? 한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유당불내증인데, 동양인이 유독 우유의 유당 분해가 안 돼 속이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하는 유당불내증이 많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연숙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서양인들은) 거의 우유를 빵에다 넣는다든지 요리에 넣어서 먹잖아요. (우리처럼) 그렇게 생우유를 마시는 그런 문화는 아니에요 보면은.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에는 우유가 들어가는 음식이 거의 없어요. 어린애들 (음식) 말고는 성인 음식에는 반찬도 그렇고 우유를 넣고 하는 요리가 하나도 없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얘길 많이 접하게 되는 건 성장기 우유 섭취가 필요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우유를 마실 때 꼭꼭 씹어먹으라는 말은 어떤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상식 수준은 아니라는 거고, 다만 한국인의 체질을 고려할 때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천천히 마시라는 권고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요즘은 유당불내증에 대비해 락토프리 우유도 나와있으니 우유를 즐기는 것도 각자의 방식에 맞게 선택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