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계엄령, 국제 신용평가사들 한국 신용등급 강등할 뻔!
[김성재의 국제 정치경제학]
신용평가사들 등급강등 가능성 컸다
비틀거리는 한국, 최악 상황 맞을 뻔
트럼프, 정통성 약한 정부 갖고 놀 것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즈의 인터뷰
이재명 대표 리더십에 대한 평가일 수도
미국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 정치상황은 외신에게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미국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직 검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다. 이번 계엄령 선포는 경제발전의 모델이자 K-pop으로 대변되는 21세기 문화를 이끌어가는 아이콘으로 한국을 동경했던 많은 외국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갔다.
한국 정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해외 언론만이 아니다. 미국 주요 투자자와 신용평가기관 및 한국과 거래를 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촌각을 다투어 업데이트하고 있다.
해외 투자자의 반응은 원∙달러 환율의 동향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악화하는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해 달러당 1400원 안팎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은 계엄령 선포 후 1430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관계된 많은 사람이 고통에 빠진다.
미국에 아이를 유학 보낸 학부모는 같은 금액의 달러화를 송금하기 위해 1만 달러당 3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1백만 달러를 수입하려면 3000만 원의 비용이 더 늘어난다. 그만큼 가계는 살림살이에 압박을 받고 기업은 수지가 악화한다.
한국에 투자하는 해외투자자도 환율 상승을 반기지 않는다. 수익률이 2.6%인 국고채에 투자하는 외국 펀드는 환차손을 감안하면 남는 게 없다. 향후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진다면 해외의 채권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가장 신경쓰는 것은 '정치적 안정'
국제신용평가사는 이들 해외 채권투자자를 대신해 국채의 위험도를 계산하고 이를 신용등급에 반영한다. 그간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한국 국채에 대하여 후한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무디스(Moody’s)는 2015년 12월 이래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Aa2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Aaa와 Aa1 아래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Aa3인 영국이나 A1인 일본보다 각각 1단계, 2단계씩 신용등급이 높다. 향후 등급전망도 안정적(stable)으로 유지해 부정적(negative)인 프랑스보다 낫다. 명실상부 선진국 대접을 받아왔던 셈이다.
무디스와 쌍벽을 이루는 S&P 글로벌의 신용등급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신용등급 체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AA를 부여받고 있다. 전망도 ‘안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3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AA-로 평가하고 있다. 전망도 ‘안정적’이다.
한국이 이렇게 양호한 신용등급을 받는 데는 비교적 강한 경제 펀더멘털이 기여했다. 2%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1인당 GDP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어느새 일본을 넘어섰다. 최근 정부빚이 늘어나 GDP 대비 나랏빚 비율이 50%를 넘었다고는 하나 100%가 넘는 미국이나 200%가 넘는 일본에 비하면 재정건전성이 상당히 양호한 상태다. 무역수지나 경상수지도 꾸준히 흑자를 달성한 덕택에 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도 40%에 미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안정이었다. 국내적으로는 여야가 서로 이견을 보이며 치고받았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국가라는 시스템적 안정성을 자랑해 왔다. 신용평가사가 정치적 불안정성을 뜻하는 폴리티컬 리스크(political risk)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현재 경제 펀더멘털이 아무리 좋더라도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면 한 순간에 성장의 과실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계 최강의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의 신용등급은 최고 등급이 아니다. S&P와 피치는 미국보다 경제사정이 좋다고 볼 수 없는 호주나 독일보다 한 단계 아래인 AA+ 등급을 미 국채에 부여했다. 무디스도 Aaa를 유지했지만 ‘부정적(negative)’ 전망을 달았다.
미국이 최고 등급에서 작년 강등(downgrade)된 것은 정치적 불안정 때문이었다. 미국의 집권 민주당과 공화당은 나랏빚을 낼 수 있는 상한선인 국가 채무한도가 찰 때마다 극심한 정쟁을 치렀다. 야당인 공화당은 정부의 씀씀이를 구체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채무한도 증가를 승인할 수 없다고 나왔다.
적자재정을 편성해 반도체 산업과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게 복지혜택도 늘이고 싶은 바이든 행정부는 정부 씀씀이를 줄이라는 공화당의 요구를 거절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예산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연방정부가 폐쇄 일보직전까지 갔다. 공화당도 내부적으로 갈라져 하원 의장을 탄핵하고 후임 하원의장을 뽑지 못해 세월을 허비했다.
결국 채무한도는 늘였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평가받는 미 국채가 부도가 나고 온 나라 경제가 절단 날 상황으로 몰리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공화당이 감히 미 국채를 부도내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극한의 정치적 대립은 시장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이를 지켜본 국제신용평가사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한국이 잃게 될 것들
극심한 정쟁을 겪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12월 3일의 계엄령 선포는 정치적 불안정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다행히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지 않았다. 계엄령이 여섯 시간 만에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피치는 이번 정치적 소동이 경제적 재무적 신용도를 중대하게 훼손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신용평가사들이 폴리티컬 리스크를 경고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계엄령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등급을 그대로 유지는 하지만 현재의 신용등급이 잠정적일 수 있다고 시사했다. 만약 정치적 혼란이 수습되지 않고 악화하면 지체 없이 등급 강등에 나설 여지를 보였다.
또한, 피치는 향후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상 여하에 따라 한국 경제의 리스크가 더 커질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계엄령 선포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점점 약화하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이유로 신용등급 하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다분했다는 얘기다.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한국경제가 흔들리는 조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경제성장은 해가 갈수록 성장의 탄력성이 떨어져 왔다. 2010년 반짝 7% 성장한 이후에는 성장률이 3%대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연간 실질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내려왔고 최근에는 1%대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관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으로 발표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발표 이후 전망치를 2% 안팎으로 수정하고 있다. 가뜩이나 삼성전자, 석유화학산업 등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계엄령 사태가 불거졌다. 그로 인해 해외 투자가 위축되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 악화로 수출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12월 4일 새벽에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고 45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반복되었다면 한국의 신용등급은 처참하게 강등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환율은 1500원 위로 치솟았을 것이고 환차손을 견디지 못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과 채권 투매가 일어나면서 자본시장이 붕괴했을 것이다.
그러면 자본시장에서 손절매한 자본이 다시 국외로 이탈하면서 달러 매수가 촉발되고 환율은 외환위기 당시와 같이 2000원을 위협했을 것이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과 노벨상 수상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1980년 계엄령 하에서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는지 외국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단행한 이듬해 우리나라 경제는 -1.7% 역성장했다. 환율은 달러당 484원에서 607원으로 25% 뛰었다. 그 영향으로 물가도 30% 가까이 상승했다. 민생이 거의 파탄날 지경에 이르렀다.
계엄 선포를 통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고 정치적 혼란이 극한으로 치달았다면 1980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방된 오늘날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전두환 시절의 경제여건과 다르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대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당시의 경제성장이 자신의 정책 추진 덕분이라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윤석열은 이 같은 성장 이전에 전두환이 선포했던 계엄령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황의 바탕이 된 3저의 조건은 외부적인 것이었다.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볼커 의장이 이끌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상에 나서자 달러화 가치가 급등했다. 강(强) 달러는 당시까지 제조업 국가였던 미국의 국제수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서방 G5(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서독) 다섯 나라의 합의라는 형식을 통해 달러 환율 낮추기에 나섰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다. 이어 연준의 금리 인하와 중동 정세 안정이 저금리와 저유가를 가져왔다. 농민과 노동자의 희생 아래 저임금 구조의 수출을 통한 우리의 성장 드라이브가 먹혀든 것 뿐이었다. 당시 소련과 격렬하게 체제 경쟁을 벌이던 레이건 행정부가 은근하게 전두환 정권을 지원한 것도 도움을 줬다.
계엄령을 막는 시민과 정치지도자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윤석열이 계엄령을 통해 통치를 지속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트럼프는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미국 제품의 수입을 늘리라고 대놓고 압박할 것이다. 정통성이 취약해진 정권의 약점을 파고들어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과거보다 더 높여 받으려 할 것이다.
더불어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한국은 도외시하고 김정은 정권과 직거래하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비극적 사태를 일단 막은 야당 의원들은 역사적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이를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하며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이재명 대표의 공도 상찬해야 한다.
그 중요성은 우리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조중동에 비견되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언론인 월스트리트저널도 이재명 대표와의 회견 기사를 크게 냈다. 계엄령 선포 당일 일어났던 일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이 대표의 행적도 묘사했다. 진보지인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역사적 평가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으로만 받는다. 그 행동은 자기 진영의 사익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에 바탕한 것이어야 한다.
※ 김성재 미 퍼먼 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금사와 예금보험공사에서 12년 간 근무했다. 학업을 재개해 코넬대와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파이낸스)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패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