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지만 떠나보낸 아이들이‥"

정승혜 luxmundi@mbc.co.kr 2024. 10. 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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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 암이나 심각한 심장, 신장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당사자인 아이만이 아니라 그 투병 과정을 함께 하는 부모들도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 이외에도 ‘왜 내 아이가 이런 힘든 병에 걸렸을까, 이 치료의 끝은 어디가 될까, 다시 건강하게 저 병실 문을 나설 수 있을까...’ 여러 말할 수 없는 심리적인 고통에 짓눌리게 됩니다.

이런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들이 찾는 의사가 있습니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를 맡고 있는 권승연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교수입니다.


■ 투병기간이 긴 소아중환자와 가족들을 찾아간다

소아 완화의료의 정의는 ‘아이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을 진단받은 시점부터 치료 전 과정에 걸쳐 환자와 가족이 겪게 되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전인적인 돌봄’입니다. 임종 준비기에 받는 성인 완화의료와 달리, 소아 완화의료는 병의 진행단계에 제약을 두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이용할 수 있습니다.

권승연 교수는 매일 아침 병원에 들러 소아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일주일에 이틀은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과 함께 아픈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통증조절을 해주고, 가래 흡인 등 처치를 도와주는 재택 치료를 나갑니다.

“세브란스에는 중증도가 높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소아 중환자실, 심장 중환자실...이식 대기중이거나..당장 기로에 있는 아이들이 30~50명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이들... 가정용 인공호흡기나 가정용 산소를 쓰면서 튜브로 영양을 공급하는 소아 재택 환자들이 100여 명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횟수는 갑자기 열이 난다든지, 가래가 안 좋아진다든지, 호흡에 변화가 있다든지..위중도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집에서 약을 먹으면서 좀 더 지켜볼지, 입원해야할지 임상과 선생님들이랑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재택의료, 완화의료의 역할입니다.”

기관절개를 해서 말을 못 하는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미술 치료 등을 통해 읽어낸 뒤 주치의와 상의해 치료에 반영하는 것도 그의 몫입니다.


■ 매년 30~50명 떠나보내는 고통은...“우리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최근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는 거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인력 자체가 부족해지다보니 소아완화의료를 전담하는 의료진을 따로 두고 있는 병원은 서울대와 세브란스 정도라고 합니다.

권승연 교수에게 중증도가 굉장히 높은 아이들만을 돌보고 때로는 아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완화의료 전담 의사로서의 스트레스는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매년 30~50명 정도 떠나보내게 됩니다. 제가 만약 주치의로서 그 아이들을 다 보냈으면 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용기가 있으신 분들이 임상의.. 소아혈액종양과, 소아심장흉부외과 선생님들이시죠.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도 아이들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그런 것들을 안고 본인 안에서 삭이고 다시 아이들을 돌보는 분들이 주치의들이죠. 저는 환자, 가족들이 가는 길을 동행해드리고, 모퉁이에 서서 ‘이 길이 맞아요, 잘 가고 있어요’라고 안내하고, 탈진돼 있으면 물을 드리고 부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문득문득 떠오르죠. 어떤 병실에 가면 늘 그 아이가 있던 자리가 있고, 길 가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 싶은 게 본인의 새해 소망이었던 아이가 생각나는 거예요. 시간은 짧았지만, 본인의 삶에 최선을 다했고, 완성하고 갔다고 믿어요. 때때로 저도 너무 힘들어가지고 번아웃이 올 때가 있고...더 이상 이렇게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올해 심하게 들었는데...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겨우겨우 버티는데...진짜 무너지는 댐의 구멍을 손으로 막고 있구나”

권승연 교수에게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영향을 받는 일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통원치료나 재택치료 받던 아이들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금방 와서 좀 해결하고 가야 하는데.. 응급실 이용이 안 되면 결국 다 이리로 오거든요. 지역 응급실 사정이 진짜 안 좋으니까...그런 아이들 부모님이 엄청 불안해하시죠. 저희도 사전에 체크해서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빨리 상의하고 최대한 나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아보자..조금 안 좋으면 빨리 연락해서 응급실로 안 오는 상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권 교수는 현재 의료상황에 대해 무너지는 댐의 구멍을 겨우 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수들이 외래에서 척수 검사, 항암 골수검사도 하고, 입원 환자 처방도 내고, 당직도 서고... 이게 얼마나 버텨질 지가 사실 되게 무서운 거죠. 보호자들도 너무 불안해하시고... 여기 있는 의료진들이 한 명 두 명 지치거나 아프게 되면 안되는데, 지금 남아 있는 인력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거든요. 중환자들을 보는 전공의가 안 들어온다면 사실은 너무 희망이 없는 거죠.”


■ 의사란 무엇인가...“현실은 안 알려지고 프레임은 돌고 돌아 밥그릇”

권승연 교수에게 ‘의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봤습니다.

“나가서 경제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이런 분야를 선택하는 의사들도 되게 많이 있지만 필수의료는...뭔가 사람을 살리고 중한 환자들을 돌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명맥이 이어져 왔던 거고요. 정말 자부심으로 버텨온 사람들인데, 그 마음을 몰라주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몰라주는 거는 괜찮아요. 왜냐면 옛날부터 정부가 마음을 몰라줬기 때문에...그거까지도 괜찮은데 이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직하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이런 현실은 너무 안 알려지고, 결국은 프레임이 돌고 돌아 밥그릇이고.. 가끔 왜 필수의료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지 의사들 인터뷰가 실릴 때 댓글을 보면 또 상처를 받고 진짜 비수가 되더라고요. 우리 마음을 정말 모르는구나, 결국 ‘하기 싫으면 나가라’ 잖아요.. 저희 환자들은 다 알거든요. 지금 이 환경이 어떠하고 얼마나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필수의료 의사란...그런 거에요.”

정승혜 기자(luxmundi@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645613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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