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데기'가 개그소재? 그러라고 만든 '더 글로리' 아닌데[★FOCUS]

[스타뉴스 김노을 기자]

/사진제공=넷플릭스

[김노을 스타뉴스 기자] '더 글로리'가 막을 내렸다. 배우들의 열연과 폭행 가해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연일 화제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를 개그 소재로 소비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지난해 12월 30일 파트 1이 공개됐고, 이달 10일 파트 2가 베일을 벗으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배우 송혜교는 고등학교 시절 지독한 학교 폭력을 당해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 역을, 임지연은 학교 폭력(약칭 학폭) 가해 주동자 박연진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외에도 박성훈과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 등이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극 중 문동은은 학창시절 심각한 학폭 피해에 노출돼 영혼이 파괴되는 고통을 느낀다. 시도 때도 없이 무자비한 폭행, 성추행, 성희롱을 당하고 그 안에서 의지할 데 하나 없이 외롭고 고독한 인생을 견뎌낸다.

이 과정에서 '고데기'는 문동은이 박연진에게 폭행을 당할 때마다 등장하는 물건이다. 박연진 무리가 문동은에게 집단 린치를 가할 때면 어김없이 고데기가 나오고, 박연진은 그것을 문동은의 살을 지지거나 협박하는 데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도구를 넘어 문동은의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치이자 그는 씁쓸하게도 고데기에서 연상되는 추상적인 뜨거움 등에 트라우마를 가진 성인으로 성장한다.

고데기가 지닌 폭력적 상징성은 이렇듯 엄청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데기를 개그 소재로 쓰거나 이와 관련된 상황을 희화화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빡구형', 쿠팡플레이

최근 황보는 개그맨 윤성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황보는 윤성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웃으며 그의 팔을 때렸고, 이에 윤성호는 "아프다. 혹시 '더 글로리' 봤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보는 "봤다. 어디 고데기로 지져줄까"라고 받아쳤고, 윤성호가 거듭 "학교 다닐 때 (고데기로 다른 사람을) 지진 적이 있냐. 애들 때린 적 있냐"고 학폭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듯 "그런 적 없다. 정말 이미지만 그런 거다. 학폭을 한 적도 없다"고 호소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은 경솔한 언행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학폭을 주제로 한 '더 글로리'를 봤음에도 고데기와 폭력을 장난스럽게 언급하고, 농담 소재로 소비했기 때문. 논란이 커지자 해당 영상에선 두 사람이 '더 글로리'와 고데기, 학폭 등을 언급한 장면이 편집됐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3도 이와 비슷한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라 질타를 피하지 못했다. 콩트에서 문동은 역으로 분한 개그우먼 이수지에게 박연진 역의 배우 주현영이 고데기로 쥐포를 태우는 설정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면서다.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두려움인 고데기 학폭이 고작 '쥐포 협박'이라는 개그 소재가 된 것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SNL 코리아' 측은 무대응을 고수,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더 글로리'의 고데기 학폭 설정은 지난 2006년 청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것이다. 당시 가해자는 고데기로 피해자의 팔에 화상을 입히고 옷핀, 책 등 여러 물건을 이용해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자백했으며 '더 글로리'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된 바 있다.

김은숙 작가는 고2 딸에게서 받은 질문으로부터 '더 글로리'를 시작했다. 어느 날 딸이 김 작가에게 "엄마는 내가 누굴 죽도록 때리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내가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라고 물은 것. 이에 대해 김 작가는 "그 질문이 너무 충격적이고 지옥이었다"며 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첫 장르물 '더 글로리'를 썼음을 밝혔다.

범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겪는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민낯을 들춰내기 위해 쓰여진 '더 글로리'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저마다 느끼는 바는 다를 테지만 적어도 이 시리즈물이 가벼운 개그 소재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한없이 가벼운 언행에 자꾸만 오르내리는 '더 글로리'의 처지가 애석하다.

김노을 기자 sunset@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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