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동틀 때까지 쓰레기와 연장전

경기는 끝났지만 야구장은 잠들지 않는다. 함성으로 가득했던 관중석에는 어느새 갖가지 쓰레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2만여 석을 메운 관중이 남긴 흔적을 다음 날 경기 전까지 깨끗하게 치워야 하는 야구장 환경미화원들의 발걸음은 24시간이 모자라다.
열대야가 채 가시지 않았던 8월 중순, 수훈 선수 인터뷰가 끝난 뒤 어둑해진 잠실 야구장 관중석엔 노란 고무장갑을 낀 10여명의 환경미화원이 속속 들어섰다. 한 손엔 집게, 다른 한 손엔 하얀 비닐 봉투를 든 그들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의자 사이를 사선 걸음으로 빠르게 누비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이것도 또 다른 경기죠”라는 한 환경미화원의 말처럼, 그들만의 ‘연장전’은 관중이 떠난 순간부터 다음 날 새벽 동틀 때까지 계속된다.
관중석 바닥엔 먹다 남은 음료가 담긴 페트병과 맥주컵, 치킨과 떡볶이, 어묵 등 양념 묻은 음식들, 워터페스티벌 뒤 버려진 우비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은 수차례 허리를 굽혔다 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빈 봉투를 채워나갔다.

청소 시작 1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요청하기 미안할 정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여성 환경미화원 ㄱ씨는 “경기가 끝난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계속 쓰레기를 치운다”며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그나마 오늘은 좀 시원한 편인데, 열대야가 며칠씩 이어질 땐 새벽에도 숨이 턱턱 막힌다. 더위, 그리고 쓰레기와 전쟁이다. 지금도 힘들다”라고 했다.
40대 여성 ㄴ씨는 “새벽 5시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쓰레기를 줍는다. 그래도 못다 한 청소는 다음 날 낮 조가 이어서 한다”며 “저는 원래 야구를 잘 모르는데, 도대체 왜 홈런볼 과자를 바닥에 뿌리고 가는지 모르겠다. 그걸 사람들이 밟아서 으깨지면 정말 청소하기 힘들다. ‘홈런볼 지옥’에 빠진 것 같다. 치킨이랑 떡볶이를 바닥에 흘리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관중석 한쪽엔 으깨진 과자 부스러기와 먹다 남은 치킨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그 옆엔 먹잇감을 포착한 고양이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넘어도 청소는 끝나지 않는다. 새벽 조가 퇴근하면 곧장 낮 조가 출근해, 경기 시작 전까지 못다 한 청소를 이어가는 식이다. 관중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 의자를 닦는 조는 따로 있다. 경기 중에도 환경미화원들은 관중석 안쪽 복도에 마련된 쓰레기통 옆에서 분리수거를 한다.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청소를 하는 셈이다.
쓰레기를 분리하는 일은 또 다른 고역이다. 한여름 음식물 냄새가 올라오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손에 묻은 떡볶이 양념을 휴지로 닦아낸 50대 남성 환경미화원 ㄷ씨는 “더울 때는 어디를 가나 다 힘들죠. 먹고 살기가 쉽나요”라며 “제일 고된 건 음식물 쓰레기랑 분리수거에요.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을 그냥 플라스틱 버리는 통에 넣고 가면 우리가 일일이 손으로 다 다시 분류해야 해요. 시민의식이 아쉽습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10m 정도 떨어진 다른 구역에서 쓰레기봉투를 묶던 50대 여성 미화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양이 워낙 많으니 일손이 늘 부족해요. 더운 건 참을 만한데, 음식물이 손에 묻을 땐 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라이온즈파크 미화팀을 9년째 이끄는 정성환 미화팀장은 “경기가 있는 날에는 50여명의 미화원이 오전조와 경기조로 나뉘어 온종일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경기조’는 오후 2시30분쯤 출근해 경기가 끝난 밤 10시30분까지 청소를 한다. 관중이 입장하기 전 마무리 청소와 경기 중 쏟아져나오는 쓰레기를 분리한다. 경기 다음 날 오전 7시 출근하는 ‘오전조’는 오후 3시까지 관중석과 화장실을 청소한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별명을 가진 대구답게 한여름 폭염은 버티기 힘들다. 특히 땡볕에서 관중석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오전조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 팀장은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빨리 와서 다들 지쳤다”며 “물과 음료, 미네랄과 소금이 섞인 식염환을 수시로 먹으라고 권한다. 물만 마시면 어지럽기 때문에 소금기를 꼭 보충해야 한다. 오후는 너무 더우니까 최대한 오전에 많이 치우려 한다”고 했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다. 정확히 데이터로 수치화해보진 않았지만, 통상 660ℓ짜리 대형 쓰레기통이 하루에 200개 정도 찬다고 한다. 660ℓ 쓰레기통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단지에 놓여있는 큰 쓰레기통 크기다. 정 팀장은 “압착한 쓰레기를 싣고가는 차량이 한 번에 다 실어가지 못해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올 정도”라며 “여기에 음식물 쓰레기도 200ℓ 정도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비가 오거나, 워터페스티벌을 한 날엔 또 다른 난관이 펼쳐진다. 미끄러운 바닥은 중심을 잡기 힘들어 평소보다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우비 속 습도는 숨이 막힐 정도다. 잠실에서 만난 ㄴ씨는 “워터페스티벌이 열린 날엔 평소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온다”며 “우비 같은 일회용품이 많이 나오고, 미끄러운 바닥에 물기 젖은 쓰레기가 들러붙어서 청소하기 더 힘들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버티는 건 ‘깨끗해진 야구장’을 찾는 관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레기 안 치우면 다음 날 야구 못해요”라며 웃는 ㄱ씨의 말처럼, 환경미화원들의 노고가 없다면, 야구장을 다시 찾는 관중이 줄어들 것이다.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넘어 1200만 관중을 달성한 프로야구의 흥행에는 환경미화원들의 땀방울이 녹아있다. 정 팀장은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가족이나 젊은 분들이 야구장에 많이 오신다. 야구장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아무리 우리 팀이 잘해도, 다시 찾지 않을 것 같다”며 “깨끗해진 경기장을 확인하는 게 미화 업무의 가장 큰 보람이다. 관중이 깨끗한 환경에서 응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팬들을 향한 작은 당부도 있었다.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은 일반 쓰레기로 버려주세요.” “쓰레기를 좌석에 그대로 두고 가면 고양이나 비둘기가 몰려와 더 지저분해집니다. 꼭 가지고 나가 분리수거함에 넣어주세요.” “페트병 뚜껑은 열어서 따로 버려주세요.” 환경미화원들이 바라는 건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습관이었다. 〈끝〉
글, 사진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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