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이 뭐라고... 암호화폐 다툼으로 시작된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전말 [사건 플러스]

박준규 2024. 2.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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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분쟁으로 극에 달한 적개심
수개월 계획해 강남 한복판 납치
실행 일당 범행 대부분 인정됐고
배후 부부는 살해 공범 혐의 벗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괴한들이 저항하는 여성을 끌고 차량으로 납치하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해 3월 29일 오후 11시 45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앞 대로변. 괴한들이 순식간에 40대 여성 최모씨를 납치했다. 경찰이 재빠르게 추적에 나서 이틀 만에 용의자 3명을 검거했으나, 최씨는 대전 대청댐에서 매장된 채로 발견됐다.

검경의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납치살인은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으며, 살해를 실행한 일당 뒤에 이를 사주한 중년 부부가 따로 있었다는 게 수사기관의 결론이었다.

범행 일당의 신상과 역할도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요약하면 ①이경우(37)가 암호화폐(코인) 강탈과 살해를 계획·주도했고 ②황대한(37)과 연지호(31)는 이경우가 짜둔 계획에 따라 여성을 납치·살해했고 ③유상원(52)·황은희(50) 부부가 코인 강탈과 살해를 사주했다는 게 검찰이 제시한 혐의다. 검찰은 '코인 사업 피해로 인한 복수심과 코인 강탈을 통한 경제적 이익 획득'을 살인 동기로 지목했다.

'강남 납치·살해'로 불린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1심 판결이 선고됐는데, 재판부 판단은 수사기관과 사뭇 달랐다. 이경우 일당이 최씨를 납치·살해한 건 맞으나, 유씨 부부는 코인을 빼앗으라고 했을 뿐 살해를 공모한 적은 없다는 취지였다. 이런 판단에 따라 이경우와 황대한은 무기징역, 범행을 자백한 연지호는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으나 유씨 부부는 각각 징역 8년과 6년을 받는 데 그쳤다.

강남 한복판 주택가에서의 대담한 납치 이후의 암매장, 그 악랄한 범행의 시작이 됐던 코인 분쟁.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린 이런 잔악한 범죄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법원이 유씨 부부의 살해 공모 혐의에서 검찰과 판단을 달리 했던 까닭은 무었이었을까.


실패한 코인 투자, 극에 달한 적개심

강남 납치·살해 사건 개요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검찰의 공소장과 1심 판결문 내용을 정리하면 잔혹한 사건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씨 부부는 그해 10월 최씨로부터 제안을 받아 '퓨리에버 코인'에 1억 원 상당의 이더리움 코인을 투자했고, 이후 투자자를 모집해 30억 원 어치의 이더리움 코인을 또 투자했다. 유씨 부부는 퓨리에버 코인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등에 상장되면 막대한 차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퓨리에버 코인은 상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격이 폭락했다.

화살은 유씨 부부에게 돌아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유씨 부부가 퓨리에버 코인 가격을 폭등시킨 다음 몰래 처분하는 바람에 가격이 떨어졌다'고 책임을 추궁했고, 유씨 부부가 투자자들에게 4억 원을 물어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씨 부부가 2021년 9~10월 최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할 만큼 감정이 골이 깊어졌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이경우가 유씨 부부에게 접근했다. 이경우는 원래 최씨 쪽 사람으로 퓨리에버 코인에 8,600만 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고, 유씨 부부가 머무른 호텔에 난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21년 7월 더 재력이 있어 보이는 유씨 부부에 붙은 뒤 '저는 북파공작원 출신'이라며 최씨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도왔다.

살해 논의가 본격화된 건 최씨의 사기 혐의 수사가 2022년 8월 무혐의로 끝난 뒤부터였다. 검찰에 따르면 이경우는 유씨 부부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최씨와 그의 배우자로부터 코인을 빼앗고 살해하는 계획을 세웠다. 유씨 부부 또한 '코인을 빼앗으면 최소 3억 원을 우리한테 주고 나머지는 가져가도 좋다'며 작업비로 7,000만 원을 줬다. 이후 이경우는 대학 동창이자 대전 지역 조직폭력배인 황대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있던 연지호와 장기간에 걸친 범행 준비에 돌입했다.


장기 적출 계획까지

계획은 치밀하면서도 잔인했다. 이경우 일당은 처음엔 코인을 빼앗은 뒤 중국인을 이용해 장기를 적출하는 방식으로 살해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중국인 섭외에 실패하자 지난해 1월쯤 '코인을 빼앗고 살해한 뒤 암매장'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경우의 아내로부터 받은 전신마취제 '케타민'으로 최씨를 제압한 뒤 최씨의 코인을 훔쳐 대청댐 인근에 암매장하는 '완전범죄'를 꿈꾼 것이다. 이들은 성공적인 범죄를 위해 최씨 부부의 사무실과 주거지, 최씨 부모의 주거지 등을 수시로 잠복했고 동선을 파악했다. '디데이'는 지난해 3월 29일로 결정됐다.

그러나 막상 계획은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납치를 하긴 했으나 최씨가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틀렸거나 전자지갑에 코인이 없었던 바람에 이경우와 유씨가 코인을 빼앗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황대한이 추가로 주입한 케타민이 화근이 돼, 최씨가 케타민 중독으로 사망했다. 황대한과 연지호는 결국 최씨를 암매장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공범의 자백, 어렵지 않았던 유죄 인정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이경우(왼쪽 사진), 황대한(가운데), 연지호가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김승정)이 이경우 일당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연지호가 살인을 자백한 게 결정적이었다. 연지호는 법정에서 이경우와 황대한이 2022년 12월 '중국인 애들이 (최씨를)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할 때 너는 운전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지시하는 등 범행 내내 최씨를 살해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재판부는 연지호의 자백을 토대로 "살해가 아니라 강도를 공모했을 뿐"이라는 이경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경우가 살인 공모를 주도했던 이상, 중국인을 통한 살인이 아닌 다른 살인의 방법을 논의한 바가 없더라도 강도살인의 공모관계에서 이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이경우가 암매장을 지시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황대한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케타민 과다 투약으로 최씨가 사망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도 이경우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묻어버리자. 내가 다 책임져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고, 연지호 또한 증언대에서 "최씨를 암매장한 뒤 이경우가 '거기 좀 더 있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와서 확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이경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해자가 살아 돌아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차단하려고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대한 역시 "강도를 공모했을 뿐이고 케타민을 주입해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씨의 양손과 양발을 묶고 매장한 뒤 땅을 발로 밟아 다진 점 등을 고려하면 케타민 중독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계획대로 최씨가 죽었기 때문에 강도살인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황대한이 범행 이틀 전 연지호와의 대화에서 무기징역 선고를 전제로 대화를 나눈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이경우 일당은 돈만을 위해 범행을 준비했다"며 "특히 이경우와 황대한은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등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든다"고 질책했다. 다만 검찰의 사형 구형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이경우와 황대한의 생명을 박탈하는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경우에게 케타민을 준 이경우 아내와 최씨 남편 등에 대한 강도를 준비했던 공범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살해에 직접 가담한 건 아니지만 죄책이 가볍지는 않다는 취지다.


유씨 부부는 '강도 사주'에 불과?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유씨 부부가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납치살인을 실행한 일당의 범행은 이렇게 인정됐다. 남은 쟁점은 사건 배후에 있던 유씨 부부가 살해를 공모했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①유씨 부부가 구치소에서 작성한 메모에서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 너무 후회한다"고 쓰는 등 최씨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고 ②유씨는 최씨 납치 이후 최씨의 휴대폰을 인멸한데다 ③황대한과 연지호의 도피자금을 마련해 주려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유씨 부부가 살해를 공모한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씨 부부가 살해까지 사주한 건 아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유씨 부부와 유일하게 접촉해왔던 이경우가 법정에서 "유씨 부부가 살인을 공모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점에 주목했다. 검찰이 내세운 간접 정황들만으로는 이경우 증언의 증명력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대로 유씨 부부와 최씨 간에 분쟁이 있었더라도 그로 인한 갈등이 피해자를 납치하여 살해할 동기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유씨 부부가 강도를 공모한 것까지는 맞다고 봤다. 이 또한 이경우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경우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2022년 8월 (강제적으로 코인을 회수할 방법이 있다고) 세 번째로 이야기를 하니 유씨가 '진짜 할 수 있다면 잘해봐라'라고 동의를 했다"며 "제가 최씨의 휴대폰을 가져오면 유씨가 어떤 수단으로든 코인을 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역할이 나누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황대한도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 "이경우로부터 '유씨 부부가 책임져 줄 것이다'라거나 '이 작업은 실패해도 좋아해줄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유씨는 최씨가 납치된 직후를 포함해 2022년 9월 이경우로부터 받은 대포폰으로 이경우와 6개월간 53차례 통화를 했고, 황대한과 연지호도 범행 이틀 전 배후에 유씨 부부가 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부부는 최씨에 대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경비를 제공하고 최씨가 납치된 뒤에는 코인을 탐색하는 데 직접 참여했는데도 이경우로부터 속아 억울하게 말려든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유씨 부부가 살인 혐의를 벗자, 유족은 울분을 터뜨렸다. 피해자 동생 A씨는 "누군가에게 7,000만 원을 주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죽인 뒤에 징역 8년과 6년을 살면 끝나는 것이냐"며 "피해자 가족이 용서하지 않는데 법원이 용서를 해주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검찰은 법리 오해와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의 최대 쟁점은 부부의 살해 공모 인정 여부와 형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장 검증 등을 신청해둔 상태다.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여파도 이어지고 있다. 살해 사건의 발단인 퓨리에버 코인의 발행사 대표는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2021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6일까지 코인 사업을 허위 공시하고 시세조종을 통해 6,100여명으로부터 210억여 원을 가로챘다고 판단했다. 퓨리에버 코인 발행사 대표의 정관계 로비의혹과 관련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는 공무원도 재판을 받고 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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