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못 믿겠다" 탈출 러시…앞다퉈 SK하이닉스로 '환승' [위기의 삼성전자 中]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
"외국인, 삼성전자에 신뢰 잃어"
"HBM 경쟁, 후공정서 밀려"
"장기 투자 여력 있으면 매수 고려할 주가 수준"
최근 세계 1위 메모리 기업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주도권을 넘겨줬고 중국 업체의 저가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했고 파운드리(위탁 생산)에서는 TSMC와의 기술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마저 악화하면서 삼성전자는 '나홀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모든 자산을 장부가치로 청산한 '청산가치' 밑으로 떨어졌다. 한경닷컴은 증권가 전문가들에게 '5만전자'로 밀려난 삼성전자의 향배를 물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근본적으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들 수 있는 회사인지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7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다음은 김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외국인이 앞다퉈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다.
"외국인은 주체가 다양해 진의를 알기 어렵다. 대략, 3분기 실적 둔화 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화 지연 때문으로 보인다. 9월부터 이어진 3분기 실적 추정치 하향폭이 이례적으로 가팔랐다. 한편 외국인들은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듯하다. 1년 전부터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품질검증(퀄 테스트)을 곧 통과할 것이란 얘기가 수십차례 돌았다. 지난 8월 5세대 HBM인 HBM3E 품질검증 결과가 나오리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품질검증이 끝났다는 소식은 없다. 약속 기한이 지나며 외국인들이 더 이상 회사의 말을 믿고 투자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팔고, SK하이닉스 비중을 늘린 것으로 판단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HBM의 차이는 무엇인가.
"큰 그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기술 격차가 벌어진 건 전공정보단 후공정의 문제다.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한계에 도달해 전공정에서 차이를 내긴 어려운 상황이다. 전공정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수주도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후공정의 중요도가 커졌다. 후공정에서 격차가 벌어지면 같은 재료로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후공정은 아날로그적 특성이 있고, 또 노하우가 중요하다. 단기간에 삼성전자가 선두 업체와 기술 격차를 좁히긴 어렵다. 쉽지 않을 수 있다."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통과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엔비디아는 HBM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1센트라도 아끼기 위해 벤더를 늘려야 하는 입장이다. ‘젠슨이 승인했다(JENSEN APPROVED)’ 사건이 대표적이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격려 내지 질책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관성적인 산업이다. 거래해왔던 벤더와 계속 거래하려는 경향이 있다. 삼성전자가 품질 검증을 통과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엔비디아의 주요 벤더로 부상하거나 점유율을 크게 늘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레거시(범용) 메모리 반도체 전망은 어떤가.
"과거 SK하이닉스보다 삼성전자를 호평할 때 사용되던 논리가 있다. '삼성전자는 레거시 반도체 비중이 커 수요가 회복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레거시 반도체 수요는 작년부터 좋지 않았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레거시 반도체 생산 라인이 HBM용으로 전환하며 공급량도 줄어들겠지만, 경기 우려 때문에 업황이 개선되긴 어렵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재무구조가 지난해 적자에서 아직 회복하지 않았기에 당분간 수익성 중심 경영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물량보다는 가격이 우선시된다. 레거시 수요는 약하겠지만 공급도 계속 하향 조정될 전망이다."
▷주가가 연일 하락하며 주주들이 근심하고 있다.
"회사의 경쟁력과는 별개로 주식으로서 매력이 커졌다. 과거 사례를 보면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반도체 불황(다운 사이클)에선 1.1배까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PBR이 1배까지 하락했다. 현재 삼성전자 주가가 5만5000원까지 밀리면 PBR이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해진다. PBR 1배 수준에선 트레이딩 기회가 있다고 본다. 물론 지금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지만 주식은 리스크가 클수록 리턴(수익률)도 크다. 삼성전자에 장기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다."
▷주가가 반등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자사주 매입·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책이 발표되면 주가는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 이미 삼성전자는 잉여현금흐름 50%를 환원하는 2024~2026년 주주환원책을 발표했다. 또 지금은 회사 내부를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무적인 결정을 내리기엔 어려워 보인다. 구조적으로 상승하려면 실적이 개선돼야 한다. 2분기 견조한 실적을 낸 뒤 3분기 느닷없이 뒷걸음질 치며 4분기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버렸다. 이제 투자자들은 숫자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려를 딛고, 4분기 증익에 성공한다면 안도 랠리가 나올 수 있다. 31일 발표될 3분기 세부 실적에 주목해야 한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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