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금 영끌해 상가에 투자한 후 3년만에 벌어진 일

지방 상가 투자 주의보

고금리와 공급 과잉, 인구 감소와 이커머스 시장 확대 등의 요인이 맞물리면서 지방 상가 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해 지역 성장 거점으로 삼으려 했던 혁신도시에선 인구에 비해 상가가 과도하게 공급돼 공실률이 40% 안팎에 달한다. 해당 상가를 분양 받은 이들은 대출 이자와 관리비를 견디지 못해서 분양가보다 싸게 처분하거나 경매로 떠밀리고 있다.

◇점포 10곳 중 4곳은 비었다는 유령도시의 정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가는 안정적인 월수입을 얻을 수 있는 노후 재테크 수단이었다. /더비비드

15일 부동산 경매 정보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경매에 나온 지방 8개 자치도 내 상가는 작년 상반기(3281건)보다 49.6% 증가한 4910건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22년 상반기(1908건)와 비교하면 157% 급증한 것이다.

매물은 쌓이지만 주인을 찾은 물건은 드물다. 상반기 지방 상가 낙찰률은 평균 15.2%에 불과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물건 10개 중 1개 정도만 팔렸다는 뜻이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이커머스 활성화로 예전보다 오프라인 상가를 찾는 수요가 줄어들었고, 금리가 높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투자 상품으로 인기가 없어 경매에서도 외면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가는 안정적인 월수입을 얻을 수 있는 노후 재테크 수단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과 전자 상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상가를 찾는 소비자가 줄었고,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가 오르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수요보다 상가가 과잉 공급된 지방 혁신도시의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특히 수요보다 상가가 과잉 공급된 지방 혁신도시의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김천혁신도시 집합상가(여러 사람이 구분 소유하는 점포가 모인 상가) 공실률은 42.5%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인 10.2%의 4배 수준이다. 상가 점포 10곳 중 4곳은 비어 있다는 뜻이다.

나주혁신도시(38.7%), 대구혁신도시(37.9%), 전북혁신도시(28.6%), 충북혁신도시(22.9%) 등도 공실률이 20%를 훌쩍 넘는다. 정주 인구가 많지 않은데다 주말에는 대부분 근처 대도시로 빠져나가버리니 공실이 쏟아지는 것이다.

◇10개 혁신도시 중 계획인구 달성한 곳은 달랑 1곳

지방 상가 공실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더비비드

혁신도시 상가가 공실에 시달리는 이유로 인구보다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상업 용지 비율이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이 인구 1인당 도시별 상가 면적을 분석했더니, 혁신도시의 경우 최근 조성된 수도권 신도시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례신도시는 1인당 상가 면적이 3.6㎡, 미사강변도시는 4.7㎡ 수준이지만, 나주혁신도시는 28.1㎡에 달한다. 대구(9.1㎡), 원주(9.0㎡), 김천(8.2㎡) 등 혁신도시도 인구에 비해 상가가 많이 공급됐다. 정부와 LH는 신도시를 조성할 때 토지 용도별로 면적 비율을 정하는데,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상업 용지 비율이 과도하게 책정된 것이다.

특히 나주혁신도시의 경우 아파트를 세우겠다는 건설사가 없어서 주상복합 용지를 상업 용지로 대거 바꿨다. 이 과정에서 상업 용지 면적이 대폭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악한 교육 환경이나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구가 계획보다 크게 늘지 않고, 주말에 가까운 대도시나 수도권에서 소비 활동을 하면서 상가 공실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계획인구를 달성한 곳은 부산혁신도시 1곳뿐이다.

지방 상가 공실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고물가 영향으로 전국 15개 시도에서 지난 2분기 소비가 감소하는 등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5월 개인사업자 연체율이 9년 6개월 만의 최대치로 기록하며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며 “경매로 넘어오기까지 6~8개월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하반기 이자를 견디지 못해 시장에 나온 경매 물건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