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탈출하려 집 나왔는데, 부모 동의해야 '쉼터' 입소?

박정연 기자 2024. 10. 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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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보호자 동의' 쉼터 입소 요건 개선 의견

"제일 먼저 가출했을 때 근처에 단기쉼터를 갔어요. 근데 거기서 부모님에게 전화하라고 했을때 너무 안좋았어요. 부모님한테 탈출하려고 가출을 하는 건데 다시 잡혀 들어가는 게... 쉼터는 절대 안되겠다 해서 그냥 돌아다녔죠 계속."(가정 밖 청소년 A씨)

가정 내 갈등·학대·폭력·방임 등으로 집을 나왔으나, 청소년 쉼터의 입소 요건인 '보호자 동의' 원칙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사회 안전망인 쉼터에 머무르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게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여성 청소년의 거리 생활은 성학대 경험 및 성매매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8일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에 입소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3년 실종 신고되거나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 약 13만 명 중 상당수가 가정 내 학대, 폭력, 방임 등의 이유로 집을 나왔다고 밝혔다. 쉼터를 이용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심하게 맞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72%에 이르렀다.

가정 내 폭력을 피해 집 밖으로 나왔지만 국가가 이들을 위해 마련한 '청소년 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 '보호자'인 부모의 폭력으로 집을 나왔으나,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쉼터 입소를 위해 부모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상황은 장애물이 된다. 만약 청소년이 보호자에 대한 연락을 거부하여 보호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쉼터는 이들을 '실종아동'으로 경찰에 지체없이 신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집 밖을 나온 청소년들은 입소를 포기하거나, 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지난해 실종 신고된 청소년이 2만 3425명,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10만 5655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쉼터에 입소해 보호를 받는 청소년은 5.5%(5827명)에 불과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위기 청소년들에게는 '잠잘 곳과 먹을 것', '생활비'가 가장 필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위기청소년을 지원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는 청소년에게 구직을 독려했으나 돌아왔던 답변은 "오늘 지낼 수 있는 곳과 내일 지낼 수 있는 곳이 다르고 계속 바뀌는데 어떻게 일을 구하란 말이냐"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고서는 특히 가출 이후 거리 생활이 특히 여성 청소년의 성학대 경험 및 성매매 유입을 가속화하는 요건임을 지적하고 있다. 한 가정 밖 청소년은 "미성년자니까 일단 제일 위험한 게 저는 남자 여자 다 똑같겠지만 성매매가 제일 위험한 것 같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울타리가 없잖아요. 밖에 나와 있는 친구들은 가족의 울타리라든지 학교 안 울타리라든지 그런 소속돼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보니까 그런 애들끼리 만나서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각종 범죄나 그런 데 노출되기 쉽다"고 말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입소 후 21일 동안은 부모와 분리된 채 숙식을 제공받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취하다가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나 보호자인 부모의 폭력 및 학대로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청소년에 대한 자립지원 서비스를 제공하 는 지원체계가 작동한다.

영국의 경우도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들에게는 자립을 지원한다. 2017년 제정된 '홈리스감소법'에 가정폭력에 희생된 16, 17세 청소년이라면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이 '폭력적인 사람과 함께 살고 있거나', '살 곳이 없고', '음식을 장만할 돈이 없을' 경우에 주거권을 보장해준다. 담당부서는 청소년이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친족과의 거주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지만 청소년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는 집에 돌아가도록 종용하지 않는다.

청소년쉼터를 운영하는 윤애경 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청소년들이 가정 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서 가정을 '탈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청소년에게 보호자 동의를 받는 것이라 피해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쉼터들이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안전한 기관이기 때문에 기관장이 허락하면 머물 수 있게 해줘야 청소년들이 피해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년들이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쉼터 입소 요건은 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가정 밖 청소년이 되는 주요 원인이 가정폭력 및 학대임을 고려할 때, 학대 가해자가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쉼터 입소 동의권을 오롯이 전유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은 "가정 내 학대 피해자인 가출아동·청소년의 경우에는 '보호자 동의' 없이도 일정 기간 보호시설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 여건에 놓인 청소년 당사자에게 청소년쉼터 입소 동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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