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유사시 ‘러시아 개입’ 판 짜기…“파병으로 확약받은 셈”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에 나섰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이미 1500명의 특수부대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고 이를 포함해 모두 1만2000여명을 파병할 것이라고 지난 18일 국가정보원이 밝힌 데 이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군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보급품을 지급받는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 등도 공개됐다. 한반도를 넘어 미국 대선과 세계 정세 흔들기까지 목표로 한 북한의 ‘과감한’ 행보다.
북한은 어떤 전략적 목표와 계산으로 파병에 나섰을까.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판 베트남 파병’을 통해 북한이 경제·군사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확약받고 러시아와 협력한 북한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북한이 러시아와 함께 ‘승전국’임을 주장하면서 국내외에서 전략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도 했다. 두진호 실장은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과 프룬제군사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러시아 정치·군사 전문가다.
“북 파병, 러시아 개입 확약·무기 현대화 기회”
―북한이 파병을 통해 얻는 구체적 대가는 무엇인가.
“한국이 ‘베트남 파병’을 통해 상당한 경제·군사적 이익을 얻은 것과 비슷한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 파병 당시 한국 병사들이 1인당 평균 500달러 정도를 받았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파병되는 러시아 병사 1인당 3천~5천달러 정도를 받고 있는데 북한군이 그에 준하는 대가를 받는다면 우선 북한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군이 실제 전투 경험을 축적하고 데이터를 확보해 낙후된 북한의 무기 체계를 현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경험을 통해 무기 체계를 혁신하고 있는데, 북한도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무기 체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베트남 파병을 통해 한-미 동맹이 굳건해진 것처럼 이번 파병으로 북-러 동맹이 강화되는 상황은 한반도 정세에 중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이란 무엇인가.
“이번 파병은 유사시에 러시아가 한반도 상황에 개입한다는 확약을 북한이 받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월 북-러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해 ‘동맹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데 이어 북한은 실제로 러시아에 파병하는 유일한 ‘동맹’임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어떤 동맹국도 러시아에 파병하지 않았는데, 북한만 무기와 병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파병을 계기로 예상했던 것보다 북-러 간에 훨씬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 때 소련에 진 빚을 갚고,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보장받는 것이다.”
“중국보다 러시아에서 답 찾겠다는 김정은의 결심”
―북-중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번 파병은 김정은이 북한의 미래에 대한 답을 러시아에서 찾겠다는 결단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러시아를 롤 모델로 북한의 미래를 구상하겠다는 김정은의 결심이 없이는 파병까지 할 수가 없다.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북-중-러’의 반미 전선을 고려하면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못한다는 판단을 하면서, 중-러 사이에서 전략적 헤징(위험 분산)을 하고 있다.”
―북한 파병이 실제 러시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는데.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새로운 병력 징집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의 파병이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국경 주요 지역에 북한 병력을 배치해 우크라이나의 기습 공격을 억제하고 쿠르스크에 진입한 우크라이나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후방지역 작전에 북한군을 우선적으로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최근 검찰총장과 해외 정보국장까지 북한에 파견해 북한 병사를 러시아 소수민족 신분으로 위장하는 법적 절차까지 하면서 몇달 동안 준비 작업을 해왔다. 김정은은 특수부대 훈련 등을 지도하면서 파병 준비를 해왔다. 북한이 특수부대에 이어 공병 등 재건 인력을 파견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미국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북한이 파병을 단행한 이유는.
“김정은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무능을 보여주면서 트럼프 당선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일종의 ‘대선 개입’을 하고 있다. ‘두 개의 전쟁’(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글로벌 현안에 미국의 통제력이 약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사거리 해제를 둘러싸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북한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가능성이 커지고 유럽연합은 더욱 분열된 모습을 보일 것이고, 북한은 러시아와 함께 ‘승전국’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은 ‘반미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며 내부 결집에도 큰 효과를 내고 전략적 지위도 높아질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글로벌 현안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계속 약화될 것이다. 국제질서의 ‘복합 위기 시대’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기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강혜경 “명태균, 김건희와 영적 대화 많이 해”
- 북한 파병에 우크라 군인, 한글로 “분단 끝낼 기회”
- [단독] 명태균 “김건희 여사한테 ‘김영선 공천 안 줘도 된다’ 할게” 엄포
- 주한 러 대사, 북 파병 두고 “한국 안보이익 겨냥한 것 아니다”
- 대세 올라탄 트럼프, 네거티브 총력전 해리스…미 대선 D-15
- 나토 사무총장, 윤 대통령과 통화 뒤 “북 파병, 중대한 긴장고조”
- [단독] 김영선 “내가 어쨌든 명태균 득 봐…명, 윤 돕느라 돈 다 써”
- 산 채로 불타 숨진 가자 19살…열흘 전 공습에도 살아남았지만
- 한강이 직접 밝힌 페미니스트 롤모델…“제주 동백숲 가꾼 현맹춘”
- 경찰, 윤 퇴진 ‘촛불행동’ 6300명 정보 확보…집회 족쇄 채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