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기업 보고서] 절반 이상 주가 청산가치 밑돌아…갈 길 먼 '밸류업' [넘버스]

/사진=픽사베이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주식 가격이 장부상 청산가치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이 이처럼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들을 향해 정리가 필요하다는 직설적인 어조로 날을 세우면서, 대형 상장사들이 받는 압박감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1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 상장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올해 1분기 평균 1.22배로 집계됐다.

PBR은 기업의 주가 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에 비해 주가가 얼마나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보여준다. PBR이 1을 웃돌면 해당 기업의 주식 시가총액이 순자산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기업별로 보면 절반이 넘는 53곳의 PBR이 1배 미만이었다. 코스피를 대표하는 대형 상장사들만 추려놓고 봐도 장부가치보다 주가가 낮은 사례가 더 많다는 뜻이다.

현대제철의 PBR이 0.18배로 최저였다. 이어 GS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0.25배, 0.29배로 0.3배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밖에 △BNK금융지주(0.31배) △SK(0.33배) △한국전력공사(0.33배) △IBK기업은행(0.33배) △한화솔루션(0.35배) △우리금융지주(0.36배) △LG(0.37배) △한화(0.38배) △하나금융지주(0.39배) △포스코홀딩스(0.40배) △신한금융지주(0.41배)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0.44배) △한국금융지주(0.45배) △현대차(0.48배) 등이 PBR 0.5배를 넘기지 못하며 낮은 편이었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줄기는커녕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기업들 가운데 2023년 말 당시 PBR이 1배를 밑돈 건 49곳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1년여 동안 4곳이 더 늘었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된 후에도 이처럼 PBR에 별다른 개선 흐름이 감지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우려를 더하는 대목이다.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 저평가 현상을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국내 증시가 외국에 비해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공시하도록 유도하며, 정부는 세제 혜택과 지수 개발 등을 통해 이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초 청사진을 공개하고, 같은 해 5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이 대통령이 PBR을 잣대로 주가 저평가를 지적하고 나서면서, 기업들의 주가 관리에는 더욱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업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PBR이 0.1배, 0.2배인 회사들이 있는데 빨리 사서 청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장 물을 흐리는 것은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자산 시장이 부동산 중심인 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본시장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라며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황당한 유머까지 생길 정도"라고 꼬집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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