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에 같은 행동… 근대 시간의 특징은 ‘신체의 동시성’

유석재 기자 2025. 2. 1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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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가 분석한 ‘시간의 역사’
조선은 종으로 통금·새벽만 알려
대한제국 정오는 오후 12시 30분

시간의 연대기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 848쪽 | 4만원

대한제국 말기의 시간은 지금보다 30분 늦은 것이었다. 당시의 ‘정오’는 지금 기준으로 오후 12시 30분이었다. 1908년 2월 7일 ‘대한국 표준시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칙령 제5호가 반포됐고, 이해 4월 1일부터 표준시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됐던 것이다. 동경 127도 30분을 표준 자오선으로 삼아 조선의 시간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직 시계를 갖지 못했던 대다수의 일반인이 어떻게 표준시가 언제인지 알 수 있었을까? 정오에 대포를 발사해 시간을 알리던 각 지역의 오포(午砲)를 일본중앙표준시보다 30분 늦게 발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표준시는 영원하지 않았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1912년 1월 1일부터 조선의 시간은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삼는 일본중앙표준시에 통합돼 30분이 빨라졌다. 광복 후 1954년 한국표준시를 다시 30분 늦췄지만, 그리니치 평균시와 ‘○시간’이 아니라 ‘○.5시간’이 차이가 나 항공, 항해, 기상 관측 등의 시간 환산에서 혼란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1961년 8월 10일부터 다시 30분 빨라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30년 6월 10일, 일제가 정한 ‘시(時)의 기념일’을 맞아 경성 본정(지금의 충무로) 2정목의 무라키시계점이 시계 선전 행사를 벌이고 있다. /테오리아

우리는 보통 ‘시간’을 절대적이고 고정불변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처럼 시간의 구획은 상당 부분 인위적으로 이뤄졌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적인 시간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침투해 왔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시간은 ①우리 내면에서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되는 시간, ②천체의 운동이 형성하는 천문학적 시간, ③인위적으로 제작·유포되는 시간이 있다고 보고, ③의 시간에 현미경을 들이댄 것이다. 그 서술은 마치 ①의 시간처럼 매우 천천히 흐르며 관련 자료들을 일일이 짚어낸다.

근대 이전 조선 시대에는 시간을 전파하는 수단이 ‘종(鐘)’이었다. 이론상 12지시법과 96각법으로 하루를 구분했으나 그런 건 실생활에서 다 소용이 없었다. 그저 하루 두 번, 통금을 알리는 ‘인경’과 새벽을 알리는 ‘파루’ 종소리면 충분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근대 문물이 밀려들던 무렵, 오포가 종을 대신해 시간을 알리게 됐다. 일제는 경성(서울)과 용산 양쪽에 잘 들리도록 남산 한양공원에 오포를 설치했다가 나중엔 청파동 효창원으로 옮겼다. ‘자택과 오포소의 거리가 1리일 경우 음향이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2초’라는 계산이 나오기도 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오포는 사이렌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오포처럼 단발성 소리가 아니라 오래 울리기 때문에 시내 구석구석까지 소리가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부우부우~’ 하는 사이렌 소리는 마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았고, 문명의 이기가 매우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이 소리는 시보(時報)를 넘어서 언제든지 경보(警報)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기상과 취침의 시각, 궁성 요배나 정오 묵도의 시각을 알리는 동시에 유사시 적기의 내습을 알리는 방공 경보일 수도 있었다. 사이렌은 ‘일상의 시각’과 ‘비상의 시각’이 공존하는 음향이었다.

그리고 1930년대가 되면서 시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종, 오포, 사이렌과 달리 시계는 언제든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보 장치였다. 관공서, 우편국, 철도역, 백화점, 병원, 학교 등 근대적 건축물은 외벽에 대시계를 장착하고 시간의 질서에 편입된 공간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분(分)과 초(秒)라는 개념까지 생기면서 ‘근대적인 시간’은 일상화됐다. 책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며 집단 체조를 했던 ‘라디오 체조’에 주목하는데, 같은 시각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신체의 동시성’이야말로 근대적 시간의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근대적인 시간은 질(質)이 사라져 버리고 양(量)만 남은 시간이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20세기 초에 시간의 질을 결정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였고, 개인은 시간을 구성하기 위한 재료 정도의 취급을 받아 왔다. 이제 그 ‘질’을 되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시간의 의미를 수정할 수 있고, 시간의 틀 자체도 변경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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