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계엄·탄핵이 당신에게 내밀 청구서
과거 탄핵 때와는 비교 안되게 상황 어려워
尹 “끝까지 싸운다”…험난한 탄핵심판 예고
‘피크 코리아’…한국경제 이제 내려갈 일만
‘12.3 비상계엄’ 선포로 정신적 고통을 당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추진합니다. 변호사들이 무료로 변론하고 소송에서 이기면 승소금은 전액 공익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뜻있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얼마의 위로금을 받아야 우리의 상처가 아물지 모르겠습니다.
태풍도 눈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고요하듯이 지난 3일 밤 일어난 일이 얼마나 심각하고, 특히 대한민국 경제에 미칠 충격이 얼마나 클지 태풍의 눈 한 가운데 있는 우리는 정작 모르는 듯합니다. 오히려 외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신 나간 계엄령 때문에 5100만명의 한국 국민들이 오래오래 할부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여당의 반대로 지난 주말 어렵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번 탄핵사태는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나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겨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에 불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일 뿐입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방해했으며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정치인 언론인 등의 불법체포를 시도했고 △무장한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국민을 협박하고 폭동을 일으켜 대한민국 전역의 평온을 저해하는 내란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국회는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이 정도의 ‘내란죄’로 정리했지만 외신은 내란을 넘어 ‘쿠데타’(군사반란)로 규정합니다. 내란이 민간인이 주도한 폭동이나 무력 행사인데 비해 쿠데타는 군사 집단이 무력으로 국가권력을 빼앗으려는 반란행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국무위원 가운데 가장 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입니다. 그는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짧은 국무회의 후 계엄 선포를 위해 자리를 뜨는 대통령을 향해 재고를 거듭 요청합니다. 조태열 장관은 이번 계엄 선포가 단순히 ‘외교적 파장만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지난 70년간 쌓아 올린 모든 성취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특히 국내 정치를 위해 한미동맹을 흔들고 안보를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목입니다.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북한을 공격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습니다. 관련해서 여러 증언이 나옵니다. 반드시 밝혀야 할 대목입니다.
유사 이래 세계의 모든 정치사상을 모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거낙업’(安居樂業), 편하게 살고 즐겁게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재물에 살고 재물에 죽고 재물에 영욕이 갈린다고 했습니다. 정치는 이상이지만 경제는 현실입니다.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행위는 물론 문화적 활동도 최종적으로는 경제로 귀결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 나간 계엄령 선포는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외교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던졌지만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수치로 드러납니다. 앞으로 우리가 두고두고 갚아야 할 청구서의 할부금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엄청난 사고를 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아니라 우리가 할부금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달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 세계 정치인과 관료들이 백악관이나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개인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로 몰려갑니다. 우리도 누군가 빨리 달려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비롯 관세와 반도체 이슈 등을 논의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의 대미 흑자를 이유로 1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탄핵당한 대통령이 나설 수도 없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 다른 누군가 나선다 해도 만나줄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내년 하반기 새 정부가 출범해 협상한다 해도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을 제대로 못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비용은 과연 얼마일까요. 비상계엄과 탄핵 등 우리 정치 상황이 한국경제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순진한 희망이거나 아니면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미국과의 관계 등 대외 경제 이슈가 아닌 우리 내부 경제문제로 들어와 봐도 과거의 탄핵정국 때와 달리 상황은 심각합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중국 경기 호황이라는 호재가 있었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반도체 호황으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했고 성장 기조가 유지됐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중국 경기는 불황이고 산업의 중심축인 반도체도 흔들립니다. 성장은 잠재성장률 2%를 밑돌아 1%대를 이어가는 등 저성장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개별 경제문제로 들어가면 제일 걱정되는 게 환율입니다. 달러당 환율은 계엄선포 직전의 1390원 대에서 지금은 1430원 대로 올라섰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합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내년 상반기 환율 상단을 1450~1500원까지 예상합니다.
실물경제도 매우 어렵습니다. 2016년 탄핵 때만 해도 반도체와 함께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지금은 자동차와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정도만 좋습니다. 요즘 제일 어려운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재편이 필요하지만 계엄·탄핵사태로 모든 게 멈췄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정치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제일 타격을 받는 게 민간 소비입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사태로 연말 특수가 실종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사태 당시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 국회를 통과했지만 사회가 안정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경제적 충격이 계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29분간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신의 비상계엄 선언은 “국민들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는 사면권과 외교권 행사처럼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에도 성명서를 내고 “잠시 멈춰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같은 선언은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험난한 과정이 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그만큼 심판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만큼 과거 탄핵 때보다 국론은 더 분열되고 갈등은 더 심화될 것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여야 지지자를 가리지 않고,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에서 청구서와 할부금으로 날아올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짊어져야 할 정치라는 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인용될 경우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는 당연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에게는 ‘사법 리스크’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1심에서 이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부터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대북 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에 이르기까지 무려 5개나 됩니다. 이 가운데 제일 위험한 것은 6개월 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와야 하는 공직선거법 위반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한 여당인 국민의힘은 끝까지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것이고 진영 간 싸움은 더 격화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정치 역학상 이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할 리도 없습니다. 결국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종국엔 우리가 갚아야 할 할부금으로 청구될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 칼럼리스트 윌리엄 페섹은 외신 기고문에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국제투자가들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래된 우려를 재확인시켰고, 한국을 민주주의 선진국 모범사례에서 다시 개발도상국의 반면교사로 전락시켰으며, 한국의 미래를 스스로 무너뜨렸으며,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 계엄령 사태의 대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5100만 한국 국민들이 할부로 지급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뒤이은 탄핵사태로 우리가 두고두고 갚아야 할 할부금은 얼마나 될까요. 1인당 몇백만 원일까요. 아니면 1인당 연간 국민소득에 버금가는 몇천만 원 수준일까요. 아니면 이보다 더 많을까요. 우리는 이 정도의 할부금을 지불하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정치인 모두에게 묻습니다.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고 하지요. 대한민국은 여기까지인듯합니다. 한국경제는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