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에 자살 급증한다는데…고장 난 한강 위 '생명줄'
"만성 예산 부족"…전화기 75대 관리 인력 단 1명
전문가 "생명의전화는 최후의 보루…국가가 적극 지원해야"
[이데일리 박동현 기자] ‘수리 중,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발길이 될 수 있는 양화대교,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생명줄’이 될 수 있는 ‘SOS생명의전화’에는 고장을 알리는 안내문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건너편에 위치한 다른 생명의전화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자 이번엔 통화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 한강다리 위에 설치된 4대의 생명의전화는 이처럼 절반이 먹통이었다.
18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 난으로 삶을 비관한 20대 남성이 마포대교를 찾았다. 남성은 당시 “죽기 전 마지막을 남기고 싶어 전화했다”며 교량 위 생명의전화를 통해 말했다. 전화를 받은 상담사는 남성을 설득하면서 구조 시간을 벌었고 남성은 투신 직전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와 함께 대교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마포대교를 관할하는 용강지구대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곧장 출동해도 대교에 진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생명의전화가 구조 골든타임을 벌어주는 덕에 구조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7월 한강대교에 처음 설치된 생명의전화는 현재 20개 교량에 75대가 설치돼 있다. 이렇게 14년 동안 운영되며 약 1만명의 목숨을 구했다. 재단 관계자는 “실제 생명의전화와 연계해 출동한 경우 구조 성공률이 98%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생명의전화는 한강 곳곳에서 투신을 막고 있었지만 양화대교를 비롯한 상담 건수 상위 3곳의 생명의전화를 직접 방문해보니 3분의 1은 고장 및 수리 중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상담 건수 3위에 해당하는 양화대교(567건)는 4대 중 2대 고장, 상담 건수 2위 한강대교(764건)는 4대 중 1대 고장, 상담 건수 1위 마포대교(5643건)는 4대 중 1대가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생명의전화는 편도 1~2㎞ 거리인 한강 다리 상·하행마다 2대씩 설치돼 있다. 1대만 고장 나도 한쪽 다리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에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다.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고장 난 전화기를 접수하면 2~3일 내로 담당자가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유지 보수 담당 인력이 1명뿐이라 총 20곳의 교량에 설치된 전화기 75대를 수시로 점검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자살 사망자 3년째 증가…전문가 “인프라 적극 지원해야”
이런 와중 자살 사망자는 코로나19 이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한국 자살현황’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는 2022년 1만 2906명에서 2023년 1만 3776명, 2024년 6월 기준 7584명(6월 기준 최대치)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생명의전화 측은 국가 예산이 아닌 보험사 등 사기업 후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만성 예산 부족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한강 전화기는 야외에 있다 보니 폭우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장이 잦은 게 현실”이라며 “2011년도에 처음 도입돼 연식이 10년 이상 된 상태라 노후한 전화기를 교체할 예산이 충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생명의전화가 투신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강을 찾은 이들은 100% (투신할) 마음먹고 간 게 아님에도 고장 난 생명의전화를 보고서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큰 좌절감을 겪을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 등 국가가 책임을 지고 예산을 지원해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담 전화를 건다는 건 투신을 결심하기 전에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신호”라며 “인프라와 관련된 부분은 공공이 확실히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고 조언했다.
박동현 (parkd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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