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교수]
트럼프형 보호주의에 맞춤형 대응
현재 한국의 정상 외교는 정지 상태이나 그런 와중에도 트럼프 신정부는 hub-spoke 형태에서 채찍을 휘두르면서 우리에게 많은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 먼저 내밀 청구서를 면밀히 살피면서 대비하자. 이 때 보호주의는 역사적으로 생경한 것이 아니니, 다만 트럼프형 보호주의의 새로운 특성을 상기하자. 무엇보다 트럼프 내각의 양면성에 주목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제조혁신강국이자 군사동맹 한국이 그간 미국에 기여해 온 바를 보여주며 한국의 전략적 쓸모를 어필해야 한다(주-예컨대, 2023년 한국은 미국내 FDI 중 1위(215억달러, 90건)(greenfield 기준)를 기록, 미국내 리쇼어링과 FDI 계기 고용창출 1위(14%)로 미국경제에 공헌했다). 누군가에게는 채찍 위주 고관세 실험이 미국에 던질 부메랑을 말해야 한다. Farell & Newman(2019)은 hub-spoke 형태의 비대칭적 상호의존 관계에서 hub 지위의 강대국이 spoke의 상대국에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라는 채찍을 과하게 휘두를 경우 후자는 아예 관계 이탈을 시도한다고 경고한다(주- Henry Farrell, Abraham L. Newman, 2019, “Weaponized Interdependence: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 International Security 44(1)). 정부간 외교안보적 대립이 일본의 대중 희토류 의존 탈피, 한국의 대일 반도체 소재 의존 탈피 등으로 이어진 실례는 한 둘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1930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보복관세의 악순환으로 당사자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는 점도 상기시키자.

번영을 약속하는 민주주의 회복
민주주의는 경제에 우선한다. 인간의 기본권이 달린 문제다. 동시에 장기적으로 번영의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조건도 민주주의다. 탄핵 정국 장기화로 경제적 타격이 확산되고 트럼프의 귀환 대비에 실기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불안하고 초조한 게 사실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경제주의적 시각에 경도된 근시안을 경계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 훼손으로 초래된 뼈아픈 업보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소중하나 밥도 먹여준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것을 귀히 여길 일이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평화 위에 꽃피운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억압과 망국적 정치 양극화의 뿌리는 분단 체제에 닿아 있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내란을 획책한 그를 보라. 그저 아찔해진다. 차라리 이쯤에서 멈춘 것이 다행이다. 바이든 집권기에 대통령 체포를 매듭지은 것도 천만다행이다.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서방의 일원으로 자리매김된다.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바 시장경제 진영의 보루가 되었다. 그런 한국의 민주주의 쇠퇴는 그들의 안보를 위협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얻어내야 한다.
식민지배와 전화(戰禍)를 딛고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문화대국으로 발돋음 중인 한국은 개도국에도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자가 현직 대통령이다.

경제력과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로는 주변 강대국과 경쟁 불가인 우리에게는 대신 소프트파워가 있다. 이는 한류만이 아니라 이를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라는 '매력 자산'이다. 이는 냉혹한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생존을 담보하는 소프트파워의 결정체다. 우리는 혹한의 광장에서 K-pop과 응원봉과 선결제로 시위의 전범을 선보였다. 세계는 현직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선포에 실망했으나 ‘K-시위’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사활적 이익이다. 번영을 선결제하는 것이다.
경제안보정책2.0 구축 – 한국형 경제안보정책 수립
이제는 '한국형 경제안보' 정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 경제안보는 공급망 안정화만이 아니다. 무분별한 ‘안보’의 남용은 우리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가 처한 경제안보적 환경과 정체성을 감안할 때 경제안보는 경제와 안보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직되는 일부 분야에 한정해 절제해야 할 개념이다. 나아가 외부적 충격이 일어날 때마다 파편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관련 국제협력도 시야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 비춰 정제된 언어로 경제와 안보를 아울러 모든 가용 수단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한국형 경제안보(주-경제안보(Economic security)란 개념이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이해나, 이를 경제책략(Economic statecraft),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 등 유사한 개념과 구분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관련한 현실적 문제점을 데이터 보호(data protection) 및 데이터 보호주의(data protectionism)와 비교하여 논의한 Yanghee Kim(2024), “Economic security vs economic coercion and data protection vs data protectionism: consequences and implications of the LINE Issue for Korea and middle powers” Elcano Institue를 참고하라.) 정책'의 재구축이 시급하다.

한국 경제안보정책의 중핵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담보하는 대내외 환경을 전제로 우리의 최대 강점인 제조혁신강국의 지위 유지와 질적 도약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세계는 첨단제조업의 전략적 가치에 눈뜨게 되었다. 이에 대중국 디리스킹을 도모하는 미국과 서방의 레이더망에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등 제조업 전반에서 협력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한국이 포착되었다. 천운이다. 만일 트럼프가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봉쇄를 이어간다면 이는 우리에게 분명 기회요인이다.
2024년 12월 19일 미국 백악관은 바이든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추진해 온 글로벌공급망 재편 정책의 성과를 총망라한 <2021-2024 Quadrennial Supply Chain Review>를 발표했다. 이는 경제안보 및 전통안보에 불가결한 핵심 품목의 글로벌공급망의 미래 회복력 강화 플랜이다. 이것이 바이든 주도 보호주의 진영화 및 이를 투사한 신뢰가치사슬(TVC) 구축 정책이다(주-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김양희(2022), ‘21세기 보호주의의 변용,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TVC)’, 외교안보연구소, 김양희(2023),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은 작동 가능할까?: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동향과 전망』 No. 119를 참조하라).
보고서는 글로벌공급망 강화의 핵심은 강력한 미국 제조업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한국을 이를 위한 핵심 파트너로 간주한다. 단적으로, 보고서에 처음 등장하는 미국내 제조업 투자 사례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의 완성차 업체 GM의 배터리 합작사 Ultium Cells이다.
이에 한국은 제조혁신생태계의 도약이라는 원대한 목표 달성을 위해 종합적인 제조실태 보고서 발간에서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해당 정책의 이행 성과를 정기평가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2016년부터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관련 연차 보고서를 발간 중이다. 여기에는 미국 제조업의 생산, 고용, 임금, 생산성, 혁신 등에 관한 업종별·국제 비교는 물론 낭비에 따른 손실과 산재까지 다룬다.
우리는 차제에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제조혁신역량의 수도권-지방 분권, 탄소중립 등의 민감 현안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선 현 지위를 위협하는 심각한 국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파악하여 재도약의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으나, 급할수록 돌아가자.
혹자는 지금의 세계를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낡은 것은 소멸했으나 새것이 아직 오지 않은 ‘궐위기(interregnum)’라는 개념을 차용해 설명한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2025년 1월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아직 낡은 것이 소멸하기는커녕 반동과 퇴행으로 가득하다. 먼저 낡은 것부터 확실히 소멸시키자.
※ 김양희는 동경대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거쳐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통상학과에 재직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외교부 국립외교원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저서는 『경제학들의 귀환』(2022, 공저), 『2024 한국경제 대전망』(2023, 공저), 논문은 “Interactions between Japan's ‘weaponized interdependence’ and Korea's responses: decoupling from Japan vs. decoupling from Japanese firms”(2021),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은 작동 가능할까?”(2023), 보고서는 “Economic security vs economic coercion and data protection vs data protectionism”(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