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동안이라 몰랐는데 이미 18년 째 유부남인 대세 배우

(Feel터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유태오 배우를 만나다

3월 6일 개봉을 앞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작품상, 각본상)에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2월 29일<패스트 라이브즈>의 주연을 맡은 유태오 배우와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삶과 연기 등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기생충> 이후 또 한 번 증명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영화다. 그는 “한 번만 사는 서양인의 인생관에서 여러 번 살아간다는 동양적인 소재가 통할지 의문이었지만 많이 좋아해 주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문화 장벽이 없어진 것 같다. 소비 시장이 문화로 확대되면서 세계인이 우리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고등학교 때 냄새난다고 놀림받았던 김치를 과자 소스의 형태로 진화되어 나오는 상황이 마냥 신기했다”며 영화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소년미 가득한 표정과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진지한 모습이 영화 속 해성과 닮아있으면서도 사뭇 달랐다. 유태오는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여러 나라를 경험한 다국적 배경의 배우다. 15년 동안 무명생활을 겪었던 시절까지 더해지자, 독특한 포지션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9년 <여배우들>의 단역 출연을 시작으로 꾸준히 활동한 결과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버티고>로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고진감래, 대기만성형 배우다. 앞서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분 후보에 오른 <레토>(2019)로 고려인 로커 빅토르 최를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패스트 라이브즈>로는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영화의 주제인 인연처럼 경력에 잊지 못할 인연으로 남게 된 운명적인 영화인 셈이다.


찐 한국인 발음과 연기.. 어려웠지만 즐거운 도전

-온라인으로 즉흥연기를 했다고 들었다. 캐스팅 과정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줌(ZOOM) 오디션이었고 해외 작품과 다르지 않은 공식적인 단계였다. 셀프 테이프를 3일 안에 찍어 보내야 했다. 데모 테이프 촬영은 대략 이런 방식으로 한다. 대본을 읽고 외우지만 살짝 커닝할 대사도 안 보이게 적어 둔다. 눈의 각도까지 점검하면서 몰입한 연기를 찍어 전송한다. 일단 보내고 나면 까먹고 기다려야만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움만 남고 마음이 상하니까. (웃음) <패스트 라이브즈>는 2주 뒤에 2차 오디션을 연락받았다. 이런 경우를 콜백이라고 부르는데 30분 정도 한 번 더 연기를 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달라고 한다. 오래가면 1시간 정도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준비하지 않았던 다른 씬도 해보라며 즉흥연기를 주문했다. 식은땀 흘리면서 겨우 했는데, 재차 요구해서 해성의 모든 씬을 보여주게 되었다. 총 4번 연기 기회가 있었고 3시간 반 동안 진행했었다. 한 번 더 해달라는 부탁이 늘어날 때마다 은근한 자신감이 생기더라.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제가 마음에 들어서 순발력이나 영혼을 탐구하려 든다는 감이 왔다. (웃음) 그리고 2주 뒤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받을 때 합격 소식을 들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 영국에서 살았던 다양한 경험자가 그것도 전형적인 한국 남자 해성을 연기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무서운 건 언어와 어휘력이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인연이라는 철학, 마지막 장면의 여운, 두 가지 요소가 눈물 나게 하더라. 이 요소만 잘 전달된다면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평범한 한국 남자 역할이 왜 나에게 온 건지 의아할 정도였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웃음) 그래서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저와 공통점을 먼저 찾았다. 해성은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 한(恨)이 맺혀 있고,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저도 다양한 국가를 거쳐 오면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던 마음, 결핍을 항상 느껴 왔던 게 비슷했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운명을 받아 들어야 하는 아픔을 멜랑꼴리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제 안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오랜 감정인 멜랑꼴리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었고 그걸 해성에게 투영했다”

-영어 실력이 유창하지만 해성은 영어가 서툰 한국인이다. 한국어도 그럴 테지만 반대로 영어 대사가 어려웠을 텐데..

“스피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다양한 해석의 선택지 중 선택한. 게 지금의 해성이다. 선생님이 어휘의 말맛인 강약 조절, 끝맺는 소리나 모음 처리 방법을 알려주면서 한국적인 문화 배경도 설명해 주었다. 거기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들었을 때 전달될 감정까지 고려해야 했다. 왜냐하면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남성 캐릭터는 너드, 무술, 코미디로 한정된 스테레오 타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양조위의 멋진 캐릭터가 미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최초로 동서양 제작사가 손잡고 할리우드의 동양 남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고 무게감을 선도하는 숙제 같은 영화였다. 외국인이 봤을 때도 우스꽝스럽지 않고 진솔한 태도를 보여야만 했다. 우리가 <중경삼림>을 볼 때 자막을 통해서지만 광둥어가 아름다운 시처럼 들리는 상황과 비슷했다. 고독한 길이었지만 저만의 고민이고 숙제였다. 뉘앙스를 감독님이 원하는 톤과 영화의 장르에 맞춰야 했고 세계 시장에 따라 공통의 감수성도 찾아야만 했다. 물론 제 대사가 한국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겠지만 공통점으로 밀고 나가야만 했다”

-노라가 해성을 만나고 돌아와 남편 아서에게 설명하며 ‘코리안 코리안’ 찐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로 이민 갔고 미국 남자와 결혼해 뉴욕에 사는 노라와 비슷한 생각이 자주 들었겠다.

“항상 그래왔다.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맴도는 외로움이자 내 팔자다. 예를 들면 한국인은 냉면 먹으면서도 ‘시원하다’, ‘슴슴하다’ 등 여러 표현으로 말하는데. 그 감정의 미묘함과 배경을 외국어 한 단어로 표현이 벅찰 때가 많다. 아내는 오히려 감정의 표현 범위가 넓어진다며 축복이라고 다독여 주더라. 그래서 고생이나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더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와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데 중점 두기로 마음먹었다”

-해성은 조건이 안 맞아서 결혼은 못 할 것 같다거나, 공대 나와 중국으로 유학 가는 등 한국적인 고민이 많은 남자다. 참고한 캐릭터나 조언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참고한 배우나 캐릭터는 없다. 이것저것 시도했는데 포기한 상태다. 차라리 제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깡’을 품고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깡은 눈치 보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진솔한 방법이다. 유교적인 사회나 문화, 병역 의무 역사를 따져 볼 때 쉽지 않겠은 선택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국인보다 더 그 문화에 관심 두고 의식하면서 저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적인 인연.. 전 세계인이 공감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인연을 깊게 공부했다고 들었다. 나영(한국 이름)의 시간은 전생, 노라(영어 이름)의 시간은 현생같이 보였다.

“저는 감독님의 전생 철학과 약간 다르지만 해성을 연기하며 정신적인 고민과 세상의 이치를 '인연'과 연결하며 깊게 빠졌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만나 연기를 대하는 태도나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인연은 사람 관계나 물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만 저에게는 유독 특별했다. 동양적인 인연, 팔자, 운명을 완벽히 해석해야 해성의 슬픔과 아픔, 맺힌 감정을 여한 없이 결말에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연기할 캐릭터도 ‘전생의 영혼’쯤으로 생각할 정도로 철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편 아서를 연기한 ‘존 마가로’ 배우와 어색한 침묵과 미묘한 심리전도 잘 살렸다.

“‘그레타 리’랑 연기할 때도 일부러 스킨십을 자제하도록 했다. 감독님이 게임하듯이 경쟁심을 부추긴 것도 한몫했다. ‘존 마가로’와도 메서드 연기를 해야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감독님이 리허설도 없었고 일부러 못 만나게 했었다. 그래서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가 실제 상황이 반영되어 탄생한 장면이다. 나중에 안 건데 질투심이 생기도록 의도된 현장이었더라. 존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한국 아내와 결혼했고 저와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내내 보이지 않는 형제 같은 동질감이 생겨나서 연기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연애대전] 대본도 아내의 적극 추천이라 말할 만큼 아내 사랑이 남다른 사랑꾼이자, 다양한 역할에 거침없는 도전정신이 엿보인다.

“아내는 모든 제안, 오디션, 대본의 장단점도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다. 저보다 한 발 더 앞서 있고 세상에 아예 들어가 있다. 반대로 저는 붕 떠 있는 사람이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모든 소통을 받아 주는 편인데 아내가 그걸 잘 정리해 준다.

영화에서 아서와 노라가 침대에서 나누는 속 깊은 대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저도 아내와 자기 전에 몇 시간이나 속마음을 드러내며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소중하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오르며 ‘관객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연기’라는 극찬을 받았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부분인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저는 인생을 기대 없이 사는 사람이다. 희망은 있지만 기대하지 않는 이유가 상처만 받을 수 있어서다. (웃음) 현실에 충실한 편이라 상 받지 않는 이상 실감 나지 않는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매니저의 말에 현혹돼서 2시간 내내 긴장하면서 수상소감 리허설만 되새겼었다. (웃음)

식이 끝나고 디너 자리에서 ‘킬리언 머피’를 만났는데 용기 내서 예전부터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웃음) ‘당신과 함께 노미네이트돼서 영광이다. 그러면서 동양권에서는 당신이 선배고 <오펜하이머>가 대세이니 먼저 받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어 설명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을 소개해 주더라. 행복한 순간이었다.

20년 동안 활동했지만 미국에서는 신인이라 제 실력을 더 보여주어야만 한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절대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대신 시상식 커뮤니티와는 가족처럼 친해하게 지내고 연기로 인정받기로 결심했다. 어딜 가도 연기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대비하고 있다. (웃음)”

-배우로서의 연기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동화 [양말 괴물 테오]나 <로그 인 벨지움>(2021)으로 감독으로 영화도 만들었다. 연기 말고 창작 활동도 기대된다.

“연출은 시간이 많이 들어서 욕심을 버렸다. 대신 각자 분야의 프로들을 모아 무언가를 해볼 준비 중이다. 먼 자리에서, 창작의 갈증은 충족하면서도 팀워크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재미있게 꾸려볼 생각이다”

글: 장혜령

사진: CJ ENM

패스트 라이브즈
감독
셀린 송
출연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문승아, 임승민, 조조 T. 깁스, 크리스틴 시, 셀린 송, 데이비드 히노조사, 파멜라 코플러, 크리스틴 바숑, 크리스틴 드소우자 겔브, 제리 경범 고, 미키 리, 테얼러 셩, 셀린 송, 크리스토퍼 베어, 대니얼 로슨, 샤비어 커크너, 키스 프레이스
평점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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