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뇌 유전자 활동’ 모니터링 방법 제시
- 기존 조직 샘플 채취와 영상 모니터링 방법의 절충안
- 간질(뇌전증) 비롯한 다양한 뇌 질환에 응용 가능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유전자 활동을 관찰·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이 제기됐다. 이 방법을 통해 난치성 뇌 질환을 비롯한 신경학적 질환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 새로운 진전이 있을 것인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유전자 활동 모니터링, 왜 중요한가?
특정 뇌 질환에서는 유전자 차원에서 다른 발현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등에서는 신경세포(뉴런)의 사멸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이 정상일 때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사전에 확인할 경우,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고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되기 전 치료를 시작할 수도 있다.
뇌 질환이 발병한 후에도 유전자 활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유전자 활동을 기반으로 특정 지표를 개발해서, 질환의 진행 상황은 어떤지, 치료법을 적용했을 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활동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축적될 경우, 특정 유전자가 어떤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환자 개인의 증상을 통해 원인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에 적합한 맞춤형 치료를 적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 질환에 대해서는 다방면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뇌’라는 장기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 많다. 유전자 활동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 또한 그 일환이며, 뇌 질환에 대한 ‘정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뇌 유전자 활동 연구 방법
뇌의 유전자 활동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방법은 몇 가지로 나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수술을 통해 뇌 조직 샘플을 채취하는 방법이다. 위험성이 높고 얻을 수 있는 샘플이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하거나 사후 기증을 통해 진행한다.
또한, 뇌는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어느 한 영역의 샘플만 채취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어렵고, 여러 영역의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환자에게 가해지는 위험성이 크다. 사후 기증을 통해 확보하는 샘플의 경우,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침습적인 방법으로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나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물리적 위험이 없이 뇌의 기능적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세부적인 수준의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극 이식’을 통한 기존 방법들의 절충안
아일랜드의 뇌 과학 연구 센터인 ‘퓨처뉴로(FutureNeuro)’는 국제적 협력을 통해 기존의 방법들을 절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RNA와 DNA의 활동 흔적을 수집·분석하고, 이를 뇌의 전기적 활동 기록과 연결짓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살아있는 뇌의 유전자 활동을 기존보다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퓨처뉴로의 이사이자 아일랜드 왕립외과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 in Ireland)’의 신경과학 교수인 데이비드 헨셜은 “이 기술은 뇌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전통적 뇌 영상 촬영 및 뇌파 검사(EEG)를 보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뇌에 전극을 이식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수술적 방법을 필요로 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에 뇌 조직 샘플을 채취하는 방법에 비하면 손상이 적기 때문에 합병증이나 뇌 기능 영향 등의 부담이 덜하다.
한 번 이식된 전극은 실시간으로 뇌의 유전자 활동을 깊이 있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돕는다. 환자의 안전과 유용한 데이터의 확보 사이에서 찾은 절충안인 셈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수술이 필요한 방법이므로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만약 난치성 뇌 질환으로 인해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된 환자라면,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음에도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난치성 뇌 질환에 대한 적용 가능성
퓨처뉴로의 연구는 간질(의학적 공식 표현은 ‘뇌전증’) 환자를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 간질은 발작을 예측하는 것이 핵심인 질환으로, 발작 예측을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간질 환자는 약 4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약 0.8% 정도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간질 환자는 약물 치료를 통해 발작을 관리한다. 하지만 연구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약 3분의 1은 약물로 발작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기준으로 집계된 간질 환자는 약 15만5천 명으로, 전체 인구를 놓고 보면 0.3% 수준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 세계 간질 유병률은 100명 중 1~2명으로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에 상관 없이 퓨처뉴로가 제시한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꼭 간질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퓨처뉴로가 제시한 방법론은 간질 외의 뇌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시간 유전자 활동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조현병과 같은 질환에서도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대해 “다양한 뇌 질환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살아있는 뇌의 분자 수준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넓은 범위에 응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는 의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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