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대한민국 소멸 위기’ 외면하는 거대양당
‘검찰 개혁 올인’에 민생 놓친 文…‘아내 방탄’에 올인하며 실기하는 尹
(시사저널=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적폐청산을 내걸었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잔상이 남아있던 시기, 적폐청산을 향한 국민적 기대는 상당했다. 2030세대도 여기에 호응했다. 청년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그가 한국 사회의 곪은 부조리를 뿌리째 뽑아주길 바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개혁 과제들을 밀어붙였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방 공공의대 설립, 블라인드 채용 등의 정책이 추진됐다. 소득주도성장도 그 맥락에 있었다.
앞선 정책들에 논란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갈등은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었다는 점에서 건강한 논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건강한 논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19년 여름, 조국 사태가 발생하면서부터다. 검찰에 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모든 정치적 자원을 검찰 개혁에 쏟아부었다. 2020년에는 팬데믹 와중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에 지난한 대결이 벌어졌다. 급기야 이듬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그에게 패배한 민주당은 정권 이양을 앞두고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데 '올인'했다. 그 결과는 이어진 지방선거에서의 처참한 패배였다.
尹, '김건희 리스크'에서 한걸음도 못 나가
문 대통령 재임기는 세계사적 대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자산 가치가 급등하며 빈부격차가 심화했고 빅테크 기업들이 성장하며 기존 산업 구도가 크게 흔들렸다. 20여 년 동안 하나였던 세계는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두 축으로 다시 나뉘었다. 사회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렸다. 이 중요한 시기를, 문재인 정부는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도 만날 일 없는 검찰을 잡는 데 매진하면서 날려버렸다. 그 피해는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났다. 2016년까지만 해도 1.17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7년 99.7배였던 1분위(최하위 20%)와 5분위(최상위 20%)의 순자산 격차는 2022년 140.1배가 됐다. 지역 불균형도 더욱 심화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내총생산(GRDP) 격차가 확대됐고, 2017년 전체 인구의 49.6%였던 수도권 인구는 2022년 50.5%로 절반을 넘겼다.
여느 정부였다면 야당 반대로, 혹은 기득권 반대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부터 야당이 지리멸렬했던 상황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결정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연금 개혁 같은 건 손도 대지 않았다. 그 높은 지지율과 그 많은 의석(지방의회 포함)을 갖고 이룬 성취는 처참했다. 검찰 개혁 같은 정쟁에 너무 많은 자원을 쏟아부은 대가다. 청년, 지방(호남) 등 사회적으로 약한 고리에 있던 지지 연합의 해체는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 사회의 골든타임은 이미 문재인 정부 때 지났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놓친 끈을 민간의 성취로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실기를 만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의 두 리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임기 시작부터 정쟁의 늪에 빠져버렸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이 대표 역시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 모든 정치적 자원을 소진하고 있다.
'김건희 리스크'는 대선 전에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2021년 12월26일 김 여사가 직접 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아내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실 리모델링부터 총선 공천까지 국정의 많은 영역에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처음부터 제대로 관리했다면 애초에 불거지지 않았을 논란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아내의 광폭 행보를 '박절'하게 끊어내지 못했다. 김 여사 때문에 형성된 부정 평가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일이 거듭되는데도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일이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李, '먹사니즘' 외치지만 '금투세'도 해결 못 해
민주당도 다를 건 없다. 2020년 대법원 무죄 판결(공직선거법 위반)로 해소된 줄 알았던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끊이지 않는 이유에서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의 이재명은 진취적인 행정가였다. 청년 배당, 무상 교복, 공공 배달앱 등 실험적 의제를 무기로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했다. 그때도 '여배우 불륜' 의혹이나 '형수 욕설' 논란은 있었으나 타격은 없었다. 법적 문제도 아니거니와 그의 지지층이 애초에 도덕성을 보고 그를 지지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 같은 당에서 띄운 대장동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거대한 사법 리스크로 비화했다. 피선거권 박탈은 정치적 사망선고다. 마치 한 명의 법무부 장관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정치적 자원을 쏟아부은 문재인 정부처럼, 민주당은 170석 의석을 이 대표 한 명을 지키는 데 소모하고 있다. 말로는 먹고사는 문제(먹사니즘)를 챙기겠다고 하지만 정작 금융투자소득세 하나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반복되는 청문회와 특검법 강행은 정쟁 기능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민주당의 현실을 보여준다.
거대 양당이 바라는 대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검찰을 해체한다고 했을 때 국민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지지층에 속 시원한 감정이나 '정의를 구현했다'는 만족감 정도는 줄 수 있겠다. 대안 없는 비판의 효용은 거기까지다. 분노로 작동되는 민주주의는 집권 세력의 교체만 가져올 뿐 삶의 변화를 추동하지는 못한다. 윤석열 정부가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거대 양당이 정쟁의 늪에 빠져 있는 사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0.7명대에서 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초저출산은 이제 상수다. 한국은 올해 말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인 돌봄 위기 등 눈앞에 다가온 '확실한 위기'를 정치권에선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청년층이 즐겨 보는 경제·교양 유튜브 채널에서는 언제부턴가 인구 감소와 저출생, 지역 소멸 등의 문제들이 거론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구독자 340만 명의 '슈카월드'가 대표적이다. 유튜버들도, 평범한 청년들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시대. 정작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이들은 정쟁에 빠져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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