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기록 다시 쓴 《진격의 거인》…일본 콘텐츠의 부활에 숨겨진 비결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이젠 《진격의 거인》인가. 영화로 개봉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하 《진격의 거인》)이 5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23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신드롬과 최근 불고 있는 J팝 열풍에 한일 간 콘텐츠 협업도 늘어나고 있는 현재, J콘텐츠의 진격은 무얼 말해 주는 걸까.
작년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 《룩백》은 30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57분짜리 중편인 데다 다른 멀티플렉스에서는 방영하지 않고 오로지 메가박스에서만 방영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30만 관객 돌파는 이례적인 성공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재패니메이션' 팬덤이 국내에 그만큼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성공을 그저 기적이나 우연으로 남기지 않는다. 이 작품은 《체인소맨》을 그린 후지모토 다쓰키의 단편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내용 역시 만화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하는가를 그렸다. '재패니메이션' 혹은 일본 만화의 국내 팬들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일종의 '소장 욕구'를 만족시키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 흐름을 새롭게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 바로 《진격의 거인》이다. 메가박스 단독 개봉작인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이미 55만 관객을 돌파하며 작년 《룩백》이 썼던 단독 상영작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이 작품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11년간 연재됐던 만화가 원작이다. TV시리즈로도 제작된 《진격의 거인》은 국내에서도 방영되면서 일찍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진격의 ○○'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만큼 팬덤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OST 인기 올라탄 J팝 열풍
이 작품이 다시 화제가 된 데는 OTT의 영향도 적지 않다. 티빙, 넷플릭스, 웨이브에서 전편을 볼 수 있어 영화가 개봉한 후 '복습'하듯 다시 본다는 팬도 적지 않다. 이런 화제성에 팬으로 유입되는 이도 많아졌다. 물론 전체 회차 수로만 90회가 훌쩍 넘은 대작이지만, 매 회 20분 정도의 분량인지라 숏폼에 익숙한 현 영상 소비 세태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번 보면 끝없이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방대한 세계관 때문에 깊은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고, 그래서 더욱 많은 '떡밥'으로 팬심을 자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는 OST의 인기로도 이어진다. 일찍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무려 490만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일본 록 밴드 10-FEET가 부른 주제곡 《제ZERO감》이 인기를 끌었다. 《진격의 거인》의 인기도 링크드 호라이즌의 《홍련의 화살》 《심장을 바쳐라》 등의 OST가 주도하고 있다. 일본 아티스트 히구치 아이의 《악마의 아이》 같은 곡도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콘텐츠 한일 교류 열기도 뜨거워
이런 흐름은 이제 J팝 팬덤의 저변이 넓혀지는 일반적인 과정이 됐다.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가 국내에서 히트를 치면서 그 OST를 불러 화제가 됐던 일본 아티스트 요아소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독특한 음색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창력으로 《장송의 프리렌》 《주술회전》 같은 일련의 애니메이션 OST를 부른 요아소비는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갖게 됐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날씨의 아이》 등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OST를 불러 국내 팬들의 주목을 받은 레드윔프스 등도 OST를 타고 J팝 열풍을 이끈 주역 중 하나다. 물론 요네즈 겐시나 아이묭처럼 OST와 상관없이 유명한 J팝 아티스트들이 존재하지만, '재패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이런 유명 아티스트들을 OST에 참여시킨다는 점에서 그 시너지가 확연히 크다.
국내의 J팝 열풍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건 최근 이들의 내한 공연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열기도 뜨겁다. 2024년 말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공연한 요아소비의 티켓은 1분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올해도 요네즈 겐시, 아이묭, 유우리의 단독공연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J팝 팬덤의 공고함이 나타난다. 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공연에서 몇백 명을 모으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올림픽 체조경기장, 인스파이어 아레나, 킨텍스 등 대형 공연장에 관객들을 꽉꽉 채워넣을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물론 K콘텐츠의 일본 열풍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따라서 J콘텐츠의 진격은 이제 한일 대중문화의 교류가 쌍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시계를 1990년대 말로 되돌려보자. 이런 쌍방향 문화 교류는 '선언적 의미'만 있었을 뿐, 가시적인 흐름은 잘 보이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단행한 일본 문화 개방 조치는 4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져 2004년 전면 개방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에서 J콘텐츠 소비는 극히 미미했고 그마저도 음성적인 흐름이 대부분이었다.
'왜색 문화'가 들어온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상 일본 문화 개방 조치는 K콘텐츠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즉 개방 이전에는 한국 방송사들의 일본 콘텐츠 베끼기가 일상이었다. 대중에게 원천적으로 차단된 일본 콘텐츠였기에 공공연했던 베끼기는, 개방된 이후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이 이를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개방으로 경쟁력을 좀 더 요구받게 된 K콘텐츠는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을 강타했고, 2010년대에는 소녀시대·카라가 일본 내 K팝 열풍을 이끌며 급성장한 K콘텐츠들의 일본 팬덤을 형성했다. 그사이 우리에게도 J콘텐츠의 팬덤이 생겨났는데, 그 대표주자는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변되는 '재패니메이션'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열풍은 2021년 《너의 이름은.》으로 국내에서 흥행을 거둔 신카이 마코토로 이어졌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부터 《진격의 거인》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최애의 아이》 《은혼》 《장송의 프리렌》 《하이큐》 등 다양한 '재패니메이션' 시리즈를 선보이며 좀 더 다양한 J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해줬다. 정서적 차이 때문에 거리감이 있던 일본 드라마들도 다양성을 요구하는 OTT 구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같은 시리즈,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같은 영화가 그 대표적인 J콘텐츠들이다.
K콘텐츠와 J콘텐츠의 양방향 성장과 교류가 이뤄지면서 양국 콘텐츠의 협업도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방영되어 양국에서 큰 인기를 끈 《아이 러브 유》 시리즈를 비롯해 성시경과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 마쓰시게 유타카가 양국의 음식을 맛보는 콘셉트의 《미친 맛집》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최근 CJ ENM은 일본의 TBS와 함께 드라마, 영화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협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K콘텐츠나 J콘텐츠의 진격이 일방향적인 것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중요한 변화다. 물론 과거사 문제 같은 외교적 사안들이 주는 정서적 거리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적어도 콘텐츠 영역에서는 협업이 가능해진 한일 문화 교류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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