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는 왜 마스코트를 철웅이로 바꿨을까

[이재국의 베팬알백] ㉖ 두산 베어스의 황금기 '철웅이 시대'의 개막

두산 베어스는 2010년부터 새로운 마스코트 '철웅이'를 선보였다. 두산은 철웅이 시대에 황금기를 열었다. ⓒ두산베어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강인함과 역동성을 강조한 마스코트를 새롭게 제작해 발표했다. 두산은 11일 “새 마스코트는 두산의 상징 동물인 곰을 로봇 캐릭터로 형상화했다”며 “두산중공업 등 두산 그룹 주요 계열사의 인프라 지원 사업 이미지를 마스코트에 접목시켰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기본 마스코트 외에 타격, 투구, 도루 등 다양한 동작을 표현한 마스코트도 함께 만들었다. 마스코트의 애칭은 공모 이벤트를 통해 정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010년 2월 11일자>

2010년은 두산 베어스 역사에서 또 하나의 장이 열린 해다. 바로 새로운 로고와 엠블럼, 심볼마크가 등장하고 그동안의 마스코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새 캐틱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26번째 주제는 베어스의 최전성기를 연 ‘철웅이 시대’ 개막 이야기로 출발한다.

2010년 3월 27일 KIA-두산의 페넌트레이스 개막전이 열리자 잠실구장 매표소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두산 베어스로서는 철웅이 시대의 개막이기도 했다. ⓒ두산베어스

◆ 곰돌이 마스코트에서 로봇 마스코트로

“당시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과 박정원 구단주 주도 하에 두산 베어스의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하기로 했어요. 특히 박정원 구단주께서 ‘바꾸자,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을 하셨죠. 그래서 마스코트를 비롯한 두산 베어스의 BI(Brand Identity·브랜드 정체성) 작업도 완전히 새롭게 하게 됐습니다. 온순하고 귀여운 느낌의 종전 캐릭터와는 달리 새로운 캐릭터는 강한 이미지를 추구했어요. 결국 로봇이 마스코트의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게 됐죠.”

2010년 두산 베어스 단장을 지낸 김승영 전 사장의 말이다.

두산 그룹은 과거 식음료 등 소비재 중심 그룹이었지만 21세기를 전후해 소비재에서 탈피해 중공업 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런 사업구조의 변화 속에 안으로는 그룹 계열사들의 통합과 결속, 밖으로는 그룹의 변신을 홍보할 창구가 필요했다.

프로야구단 두산 베어스가 그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두산 베어스의 이미지도 2010년 대변신을 시도하게 된다.

두산 그룹은 베어스 초대 구단주였던 박용곤 선대 회장부터 전통적으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런 만큼 두산 베어스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남다르다.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그룹을 상징하고, 그룹을 움직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그룹 사장단 회의 때 사업 얘기로 시작하면 사장들의 표정이 굳고 분위기도 딱딱해지지만, 프로야구 얘기를 하면 모두들 입이 열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야구 얘기가 두산 그룹 회의에서도 앞머리를 장식할 때가 많다.

결국 두산 베어스는 전문의 기사처럼 2010년 2월 11일 상징동물인 곰을 역동적인 로봇 캐릭터로 형상화한 마스코트를 제작해 세상에 내놓게 된다. OB 베어스의 곰돌이 시대(1982~1998년)와 두산 베어스의 반달가슴곰 시대(1999~2009년)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캐릭터. 강인함과 미래지향적인 두산 그룹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역대 캐릭터 중 가장 웅장하고 가장 강력한 포스를 자랑했다.

'철웅이'는 팬 공모를 통해 애칭이 정해졌다. ⓒ두산베어스

◆ ‘철웅이’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두산은 로봇 캐릭터 발표 다음날인 2월 12일부터 9일까지 8일간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를 통해 새 마스코트 애칭을 공모했다. 이를 통해 ‘철웅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됐다.

철(鐵)은 쇠, 웅(熊)은 곰을 뜻한다. ‘철웅이’라는 이름은 구단의 상징 동물인 곰을 역동적인 로봇으로 형상화한 캐릭터의 의미를 가장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철웅이’라는 애칭으로 응모한 팬이 복수였다는 점이다. 이 공모 이벤트에는 총 431명이 참여했는데, 그중 32명이 ‘철웅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했던 것이다.

결국 두산은 최종 확정된 애칭의 중복 응모로 인해 당첨자를 추첨을 통해 결정했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박준영(당시 29세) 씨에게는 블루지정석 연간회원권을, 우수상에 뽑힌 김석현(당시 34세) 씨 등 총 5명에게는 스프링캠프 모자를 선물로 증정했다.

마스코트는 팀의 상징이자 구심점. 철웅이의 등번호는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V’로 정해졌다.

한편 두산은 철웅이라는 기본 마스코트 외에도 타격, 투구, 도루 등 다양한 동작을 다이내믹하게 표현한 캐릭터 디자인들도 함께 만들어 팬들 앞에 선보였다.

두산 베어스의 캐릭터 디자인과 엠블럼 ⓒ두산베어스

◆ '홀쭉이 철웅이'가 '배불뚝이 철웅이'로 변신한 사연

“마스코트 캐릭터가 바뀌면 팬들은 대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OB 베어스 시절 ‘곰돌이’는 친근했잖아요. 강한 캐릭터의 가슴반달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팬들은 ‘깡패곰’이라며 반발했거든요. 그런데 더 강한 이미지의 로봇 마스코트 철웅이가 등장하자 거부감이 더 크게 들었나 보더라고요.”

당시 두산 베어스 마케팅팀장이었던 김정균 현 잠실구장관리팀장의 설명이다. 김 팀장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얼굴엔 리벳(얇은 판재를 영구적으로 결합하는 금속못)이 박혀 있고, 눈은 지나치게 찢어져 있다 보니까 어린이 팬들이 무서워했어요. 아이들이 마스코트를 좋아해야 하는데 처음 나온 캐릭터는 홀쭉하고 키가 크니까 무서워서 다가서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후엔 배불뚝이 철웅이로 약간 수정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어린이 팬들이 철웅이를 좋아하더라고요.”

두산 베어스 마스코트 '철웅이'는 처음엔 홀쭉한 캐릭터였다. 철웅이가 시구를 하는 가수 아이유를 안내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반달가슴곰’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팬들의 거부감을 잠재우는 건 결국 성적. 두산 베어스가 2010년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열어가자 팬들은 철웅이를 친숙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믹하면서도 엉뚱한 철웅이의 갖가지 기행은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철웅이는 이제 어린이 팬들에게도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친근한 캐릭터로 널리 사랑받는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두산 베어스 엠블럼 변천사. 왼쪽은 1982~1998년 곰돌이 시대, 가운데는 1999~2009년 반달가슴곰 시대, 오른쪽은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사용하는 철웅이 시대의 엠블럼 ⓒ두산베어스

◆ 로고, 엠블럼, 심벌마크의 변화

마스코트만 바뀐 게 아니었다. 2010년 철웅이 시대가 시작되면서 현재와 같은 새로운 로고와 엠블럼, 심벌마크도 함께 탄생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기본 색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반달가슴곰 시대에 등장한 노란색을 없애고, 빨간색이 부활해 짙은 남색(페르시안 블루), 흰색과 다시 조화를 이뤘다. 원년 팀에 대한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공격적인 야구를 표방하는 두산 베어스의 팀컬러와 강렬함을 강조했다.

‘BEARS’와 새 심벌마크 ‘D’ 글자에 곡선을 배제한 것도 새로운 변화였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베어스의 곧고 강렬한 집념, 투지를 표현했다. 아울러 두산 베어스만의 역사성, 그것에 대한 경의, 그리고 명문 강호 두산 베어스로서의 긍지를 엠블럼에 담았다.

김승영 전 사장은 “BI 작업을 할 때 처음엔 강인함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면서 “특히 유니폼에 들어가는 엠블럼 크기를 너무 크게 만들어서 어색했는데 결국 조율을 해서 왼쪽 가슴에 사이즈를 줄여 넣기로 했다”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두산은 미래로 향하는 새 이미지를 추구하는 동시에 최초의 프로야구단이라는 자부심과 역사와 전통을 녹여 2010년 이렇게 대변신을 시도하게 됐다.

두산 베어스 김경문 감독의 깜찍한 모습. 2010년 1월 11일 새 유니폼 포토데이 행사를 위해 잠실구장에 나온 김경문 감독이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짧게 자른 머리에서 시즌 각오를 읽을 수 있다. ⓒ두산베어스

◆ ‘황금기’를 향한 철웅이의 힘찬 출발

두산 베어스는 철웅이와 함께 ‘황금기’를 만들어간다. 무엇보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달성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KBO 최초의 대역사. 2015년과 2016년 구단 최초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하기도 했고, 2019년까지 포함해 3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철웅이가 ‘영광의 시대’를 향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원년이다.

두산은 외국인투수 켈빈 히메네스와 레스 왈론드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준비했다. 그중 메이저리그 출신의 히메네스는 에이스로 기대하고 영입한 우완투수. 시속 150㎞대의 빠른공과 싱킹패스트볼이 주무기였다. 김선우와 원투펀치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히어로즈와 트레이드를 통해 금민철과 현금 10억 원을 내주고 이현승을 데려와 전통적인 숙제였던 확실한 좌완 투수를 확보했다.

2010년 1월 11일 이현승의 입단식에서 두산 베어스 김진 사장이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두산베어스

3월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투수로 히메네스가 나섰다.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전년도 우승팀 KIA 타이거즈. 상대 선발투수는 전년도 공동 다승왕(14승)에 오른 아킬리노 로페즈였다.

그러나 두산은 역시 ‘개막전의 팀’이었다. 3회말 고영민(2점 홈런)과 이성열(1점 홈런)의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포함해 한꺼번에 6점을 쓸어 담으며 승기를 잡았다. 두산은 김현수의 4타수 4안타를 포함한 타선의 폭발 속에 개막전을 8-3으로 이기면서 역사적인 ‘철웅이 시대’를 힘차게 열어젖혔다. 히메네스는 KBO리그 데뷔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14승으로 가는 새 에이스의 시작점이었다.

두산은 다음날인 3월 28일엔 0-6으로 뒤지던 경기를 10-9로 역전승하는 집념과 집중력을 보였다. 2009년에 이어 2년 연속 개막 시리즈 상대로 KIA를 만나 2연승을 챙겼다.

두산은 시즌 초반 파죽지세로 치고 나갔다. 개막 4연승을 내달리더니 1패 후 다시 6경기에서 5승1무를 기록했다. 개막 이후 11경기에서 9승1무1패, 승률 9할로 단독 선두를 내달렸다.

두산 베어스의 새 외국인 에이스 켈빈 히메네스의 투구 장면. 히메네스는 2010년 기대대로 14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두산베어스

◆ 고영민, 히메네스, 이현승부상자 속출

2010년처럼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레이스의 변수로 떠올랐다. 전년보다 더 앞서 고비를 만났다. 고영민이 4월초 등 부위 근육통으로 결장하더니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선발 한 축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재우가 팔꿈치 통증으로 2경기 만에 이탈한 것이 뼈아팠다. 이재우의 부상은 외국인 좌완 왈론드의 부진과 맞물려 선발 마운드 운용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로 인해 4월 18일 SK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갔다. 4월을 14승1무7패로 마쳤지만, 5월엔 11승14패로 반타작 승부에 실패했다.

히메네스가 5월 19일 잠실 한화전에서 수비를 하다 허벅지를 다치면서 2주간 결장하고, 기대했던 이현승은 어깨 통증으로 5월말 2군으로 내려가 한 달 넘게 재활에 매달렸다.

6월에 다시 15승9패로 반전에 성공했지만 멀찌감치 앞서 나가는 SK와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여기에 여름에 강한 삼성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두산은 7월 10일 3위로 한 단계 더 내려왔다.

2010년 두산 베어스의 중심타선을 이룬 '김동석 트리오'. 김현수~김동주~최준석 이름에서 따온 닉네임이었다. 사진은 4월 14일 광주 두산-KIA전이 페넌트레이스 사상 최초로 강설 취소될 때의 장면.ⓒ두산베어스

◆ '김동석 트리오'와 이성열+양의지…KBO 최초 토종 20홈런 타자 5명 배출

두산은 2010년 팀 평균자책점 4.62로 8개 구단 중 5위에 그칠 정도로 안정적이지 못했지만, 타선은 새로운 마스코트 철웅이처럼 강력한 파워를 장착했다.

규모가 큰 잠실구장을 사용하면서도 팀타율(0.281)은 물론 팀홈런(149홈런)에서도 롯데(0.288, 185홈런)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두산은 2009년 팀홈런수가 120개로 8개 구단 중 꼴찌였다. 불과 1년 만에 홈런의 팀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 중심에는 김현수~김동주~최준석으로 이어지는 일명 ‘김동석 트리오’가 있었다.

앞서 2년 연속 0.357의 고타율을 올렸던 김현수는 0.317로 타율이 다소 떨어졌지만 24홈런으로 데뷔 후 개인 최다홈런 시즌을 만들었다(2015년 28홈런으로 경신). 김동주는 2003년(23홈런) 이후 7년 만에 20홈런 시즌에 재가입하면서 '두목곰'의 강력한 존재감을 되찾았다.

최준석도 잠재력을 폭발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20홈런을 넘어 22개의 홈런포를 가동했다. 파워뿐만 아니라 0.321의 타율로 팀 내 타격 1위이자 전체 3위에 오를 정도로 정교함까지 갖춘 타자로 도약하면서 그해 생애 첫 골든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 최준석의 홈런 잠재력이 폭발하자 팬들도 많이 늘었다. 두산 팬들이 재미있는 문구를 써서 최준석을 응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동석 트리오’는 과거 타이론 우즈~김동주~심정수로 이어지는 ‘우동수 트리오’나 심정수 대신 심재학이 들어간 ‘우동학 트리오’의 파괴력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삼총사는 철웅이 시대의 첫 시즌인 2010년 묵직한 중공업 타선을 구축하면서 흔들리는 마운드와 떨어진 기동력의 약점을 보완했다.

여기에 새로운 거포로 올라선 이성열과 양의지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2008년 시즌 도중 LG와 2대2 트레이드로 영입한 이성열은 2010년 타율이 0.263으로 높진 않았지만 무려 24개의 홈런을 때리며 파워를 꽃피웠다. 2004년 프로에 데뷔한 뒤 전년도까지 개인적으로 한 시즌 홈런을 가장 많이 친 것이 2005년의 9개였는데 2010년 거포 본능이 대폭발하면서 김현수와 함께 팀 내 최다홈런 공동 1위로 도약했다. 또한 군복무(경찰야구단)를 마치고 돌아온 양의지도 그해 20개의 홈런포를 가동하면서 신인왕에 올랐다.

'김동석 트리오'와 이성열 양의지까지 무려 5명이 20개 이상의 홈런을 생산했다. 한 시즌에 토종 타자 5명이 20홈런을 넘어선 것은 베어스 역사뿐만 아니라 KBO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들이 합작한 홈런수만 110개나 됐다.

2010년 두산 베어스의 새로운 거포로 떠오른 이성열(오른쪽)과 양의지. 이성열은 그해 24홈런을 뽑아냈고, 양의지는 20홈런을 날리며 신인왕에 올랐다. ⓒ두산베어스

◆ 여유 있는 3위 확보, 2010년대 첫 가을야구 진출

두산은 7월 11승1무8패, 8월 11승1무10패를 기록하면서 3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8월말까지 2위 삼성에 6게임차로 뒤져 있었고, 4위 롯데에는 8게임차로 앞서 있어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한 발 비켜나 있었다.

그러자 김경문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달인 9월에는 무리한 레이스를 펼치기보다는 부상 선수 관리와 젊은 선수들을 두루 기용하면서 포스트시즌에 대비해 전력을 가다듬어나갔다.

결국 두산은 9월을 8승9패로 마감하면서 시즌 73승3무57패(승률 0.549)로 3위를 차지해 준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었다. 2위 삼성엔 6게임차, 4위 롯데엔 4게임차 간격을 유지한 채 페넌트레이스를 마쳤다.

흥미로운 점은 2010년 두산의 순위 흐름이었다. 3월 27일 개막부터 4월 17일까지는 1위를 달렸고, 4월 18일부터 7월 9일까지는 2위, 7월 10일부터 9월 24일 정규시즌 종료까지 3위를 줄곧 유지했다. 보통 한 시즌을 치르게 되면 일주일 사이에도 순위가 몇 번씩 오르내리지만 두산은 1위에서 2위, 2위에서 3위로 바뀐 날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순위가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준플레이오프는 9월 29일 잠실구장에서 펼쳐지게 됐다. 철웅이 시대의 첫 가을야구는 그야말로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베팬알백] ㉗편에 2010년 롯데, 삼성과 벌인 역대급 숨 막히는 포스트시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두산 베어스 선수단이 2010년 페넌트레이스 종료일에 팬들 앞에서 포스트시즌 선전을 다짐하며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