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 철회권도 항변권도 없는 상품, 누굴 위한 '오토할부'인가
카드사 오토할부 편법의 고리➌
자동차 판매사와 할부 약정 미체결
소비자 철회권과 항변권 행사 못해
대출 규제 비껴간 카드사 오토할부
신용카드사 임시한도 남용도 문제
국정감사서 오토할부 꼬집었지만…
아무런 대책 내놓지 않는 금융당국
# 삼성카드·우리카드·롯데카드 등 신용카드사는 '60개월 할부' '대출 규제 미적용' 등을 앞세워 오토할부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오토할부 상품은 2014년 금융당국이 내린 행정지도를 무시한 '편법적 상품'이다.
# 이 때문에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가계부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떠안고 있다. 視리즈 '카드사 오토할부 편법의 고리' 세번째 편에서 카드사 오토할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봤다.
우리는 '오토할부 편법의 고리 2편'에서 신용카드사의 오토할부가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를 무시한 편법적인 상품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오토할부는 '자동차 할부를 할부금융이 아닌 대출로 계산하라'는 금감원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았다.
둘째, 오토할부 상품을 출시하려면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지도도 무시했다. 문제는 오토할부를 둘러싼 논란거리가 이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소비자 보호가 미흡한 데다, 가계부채 우려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짚어볼 부분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 문제➊ 미흡한 소비자 보호 = 무엇보다 카드사의 오토할부는 자동차 생산·판매업체와 계약을 맺은 정상적인 할부금융 상품으로 보기 힘들다. 이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현대차와 기아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동차산업 동향'에 따르면, 두 회사의 국내 완성차 시장점유율은 2019년 70.9%에서 올해 6월 77.9%로 높아졌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10대 중 7대는 현대차와 기아란 뜻이다.
그런데 현대차·기아가 정식으로 신용카드 할부거래 계약을 맺은 카드사는 국내에 1곳밖에 없다. 그마저도 체결일이 2022년 4월이다. 그렇다면 삼성카드·우리카드·롯데카드 등 카드사가 어떤 자동차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오토할부' 상품을 팔고 있는 걸까. 만약 자동차 업체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불법 소지'가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2조(정의)에 명시된 할부금융의 정의를 보자. "할부금융이란 소비자·판매자와 각각 약정을 체결한 다음 소비자에게 융자한 재화나 용역의 구매자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고 소비자로부터 원리금을 나눠 받는 방식의 금융을 말한다."
카드사가 오토할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소비자뿐만 아니라 자동차 판매사와도 할부 약정을 맺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국내 완성차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판매사가 할부 약정을 맺은 카드사는 한곳에 불과하다.
카드업계는 오토할부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익명을 원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는 10년 가까이 오토할부를 관행적으로 운영해왔다"며 "고객이 일시불로 결제한 자동차 구매대금을 카드사의 자체프로그램을 이용해 할부로 변경하는 상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자동차 업체와 계약을 맺지 않은 오토할부는 법적으로 정상적인 할부금융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취약하다. 실제로 오토할부를 이용한 소비자는 할부 철회권(차를 사용한 경우는 제외)과 항변권을 행사할 수 없다.
큰돈을 주고 장만한 차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소비자가 입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참고: 철회권은 할부 구입일 또는 제품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 철회(취소)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항변권은 할부계약 기간 중 잔여 할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 문제❷ DSR 규제 사각지대 = 이번엔 오토할부가 가계부채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두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이는 카드사의 임시한도제도와 연관돼 있다. 우리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오토할부 사각지대 1편'에서 설명했듯, 임시한도는 소비자가 결혼·장례·자동차 구매 등으로 갑작스럽게 자금이 필요할 때 카드사가 일시적으로 결제한도를 높여주는 제도다.
임시한도 사용기한은 통상 1개월로 다음 카드대금 결제일에 상환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용기간을 연장해도 최대 3개월이다. 하지만 오토할부의 자동차 구매대금 상환 기간은 최대 60개월에 이른다. 카드사가 한시적으로 사용해야 할 임시한도를 지나치게 길게 허용한 결과다.
이렇게 임시한도를 무턱대고 늘리면 소비자의 과소비를 부추겨 가계부채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 일례로 3000만원대 신차를 연이율 4.4%, 60개월 할부로 구매하면 매월 55만원이 넘는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여기에 자동차 유지비와 보험료 등을 더하면 적지 않은 돈을 더 써야 한다.
오토할부가 대출로 잡히지 않는 탓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소비자로선 오토할부로 큰돈을 들여 자동차를 구매하고도 DSR 규제를 피할 수 있어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올 2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가 1896조2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는 걸 감안하면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인지 업계에선 오래전부터 오토할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엔 국회에서도 오토할부의 문제점을 언급했는데, 2023년 정무위 국정감사가 대표적이다. 그해 10월 17일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현장 국감에서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카드사의 오토할부가 DSR 규제의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편법적인 카드 할부 구매가 국민의 빚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카드사의 오토할부는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원리금 수익을 챙기는 카드사를 위한 것"이라며 "금감원이 카드사의 편법적인 영업활동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때 카드사의 오토할부의 문제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오토할부가 대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카드사의 오토할부,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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