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한 여배우에게 반해 운전기사로 위장 후 접근.. 결혼까지 해버린 재벌2세

눈물의 여왕, 그리고 전성기의 마지막 순간

1960년대 후반,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자 관객들은 극장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당시 단성사에서만 37만 명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심파극의 상징이자 배우 문희의 대표작이 됐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눈빛, 말을 아끼는 선한 얼굴. 문희는 단순한 여배우가 아닌, 그 시대가 사랑한 상징이었다.

같은 시기,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영화계 ‘트로이카’로 불리며 수많은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활약했지만, 문희만큼 '눈물'로 기억되는 배우는 없었다.

“큐” 소리만 들려도 금세 눈가가 젖어드는 그녀의 연기는 많은 감독들이 장면을 끊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재벌가 남편과의 운명적인 만남

1971년, 문희는 갑작스럽게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다.

전성기를 달리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소식은 더 놀라웠다. H신문사 부사장이자 장기영 전 부총리의 장남, 장강재와의 결혼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러브스토리였다.

문희가 출연 중이던 영화의 제작을 맡은 장강재가 문희에게 반해 직접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접근했고, 문희는 그가 운전기사인 줄만 알았다고 한다.

수줍고도 신중했던 두 사람은 6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재벌 2세’와 ‘국민 여배우’의 만남은 당시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하객은 2천 여 명에 달했으며, 문희가 착용했던 웨딩 드레스는 1억 7천여만원에 달하는 명품이었다.

지금 흔히 쓰는 ‘청담동 며느리’라는 표현이 문희에게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결혼 후 문희는 단 한 번도 연예계로 돌아오지 않았다. 배우 문희는 그날부로 사라졌고, 대신 세 아이의 엄마로, 한 사람의 아내로 살아갔다.

남편과의 사별, 그리고 조용한 귀환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22년째 되던 해, 남편 장강재 회장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문희의 나이 47세. 너무도 큰 충격에 그녀는 2년 가까이 칩거하며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그 시기를 견딘 건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후 문희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4년간 정악을 배우며 다시 조금씩 세상과 닿기 시작했다.

영화 속 그리움처럼, 그녀의 삶도 담담하게 흘러갔다.

지금은 남편이 생전에 설립한 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조용히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배우로서의 삶은 내려놓았지만, 문희라는 이름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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