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혹독한 기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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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서반구 원주민들이 서구인의 침략으로 대부분 사멸하고 일부는 보호구역 내에서 명맥을 유지한 데 비해, 이누이트족은 그린란드 영토의 오랜 주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따뜻한 기후가 이누이트족에게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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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그린란드 인구의 90%는 흔히 에스키모로 알려진 이누이트족이다. 서반구 원주민들이 서구인의 침략으로 대부분 사멸하고 일부는 보호구역 내에서 명맥을 유지한 데 비해, 이누이트족은 그린란드 영토의 오랜 주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혹독한 기후가 서구인의 접근을 막아 역설적이게도 종족 보존의 방어막 역할을 했던 셈이다.
□ 이누이트족의 생존을 위협했던 것은 기후가 아니라 덴마크의 강제적 동화정책이었다. 18세기부터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그린란드는 1953년 덴마크 왕국으로 편입됐다. 덴마크는 이후 그린란드 현대화 작업에 착수했으나 강제 이주, 그린란드어 폐지 시도 등으로 저항을 불렀다. 특히 이누이트족 아이들을 덴마크인으로 키우겠다며 가족에서 떼내 덴마크 가정에 입양시키는 실험이 벌어지면서 아이들 상당수가 평생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다.
□ 1960~70년대 이누이트족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반인권적인 강제 피임 정책도 수십 년간 시행됐다. 이누이트족 여성을 상대로 동의도 받지 않고 자궁 내 피임기구(IUD)를 삽입하는 시술을 자행한 것이다. 이는 2024년 150여 명의 여성이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지난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2세 소녀들도 이런 시술을 받았으며 일부 여성들은 평생 불임을 겪었다. 시술 후 고통에 시달린 여성들이 IUD 제거를 요청해도 의사들이 거부해 자신들이 직접 빼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덴마크 총리가 지난해 공식 사과했다.
□ 그린란드는 지구상 마지막 자원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석유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희토류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나, 영토의 80%가 빙하로 뒤덮인 데다 극한 기후 조건으로 거의 개발되지 못했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따뜻한 기후가 이누이트족에게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린란드를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욕에서 보듯 강대국도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자치권을 확대해온 그린란드는 독립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그 꿈의 실현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송용창 논설위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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