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얘기하다 상법 개정하자는 野 속내 [김지현의 정치언락]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9월 24일 민주당 차원의 ‘금융투자소득세 토론회’를 마친 뒤 이 같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일단 처음 드는 생각은 영어가 참 많네요.‘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 이름도 몹시 어렵고 거창한데요. 결국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고 ‘독립 이사를 의무화’하며,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권고적 주주 제안 허용’ 등을 담은, 이른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 주가 하락 시 소송 남발 우려
‘민주당표’ 상법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한다는 부분입니다. 이것도 말이 어렵죠. 쉽게 말하면, 현행 상법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충실 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까지 늘린다는 겁니다. 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법에 위반된다는 거죠.
이게 현실화되면 앞으로 개별 주주들은 배당이나 대형 투자, 인수합병(M&A) 등 특정한 경영 판단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 이사를 상대로 상시 소송을 제기할 명분이 생기는 셈입니다. 가령 A 기업이 미래 먹거리 성장동력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가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면, 주주들이 이 결정을 한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영인 입장에선 그야말로 골 때리는 상황이죠. 통상 어느 기업이든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 당장 주가는 빠지기 마련입니다. 돈을 왕창 쓰겠다는 예고가 투자자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장기적 투자 없이는 어느 회사도 지속 가능하기 어렵습니다. 삼성이 바이오 산업에 맨땅에 헤딩하듯 투자해 시총 70조 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낸 것도, 현대차가 지금 잘나가는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에 대규모 투자하는 것도 모두 미래를 내다본 전략입니다.
이 밖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경영권을 노리고 움직이는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로 진입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주총회에 주주의 제안을 상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결국 장외 여론전 등으로 이어져 경영진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 野 갈등 수습하고 與 분열 자극
이런 우려에도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빠른 시간 내 당론으로 채택해 힘차게 추진할 것”(진성준 정책위의장)이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상법 개정안을 단독으로라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자며 금투세 유예를 논의하다가 결국 상법 개정을 처리하겠다고 결론을 내린 건 솔직히 아이러니합니다. 금투세 유예는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월 당 대표 연임을 선언하면서 한국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던진 카드였죠. 그래 놓고 재계와 학계에서 입을 모아 “한국 기업 가치를 더 떨어트릴 것”이라고 반대하는 상법 개정을 하겠다는 배경은 뭘까요.
그동안 민주당 내에선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를 필두로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죠. 9월 24일 열렸던 민주당의 금투세 토론회에서도 김성환 김영환 이강일 의원 등이 금투세 시행 찬성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한 재선 의원은 “토론회에서 직접 들어보니 금투세 찬성론자들의 논리도 아주 명확했다”며 “솔직히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당초 당 지도부가 토론회 직후 ‘금투세 유예’로 당론을 정할 거란 관측이 많았는데, 예상보다 만만치 않은 이견 분출에 곧장 발표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죠. 게다가 조국혁신당 등 다른 야당도 금투세 유예를 반대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상법 개정안 처리로 야권 내 뿔난 마음을 달래보겠다는 겁니다.
실제 더미래는 토론회 다음날인 25일 “민주당 지도부는 국감 전에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소관 상임위 심사와 여야 협상에 본격 착수해 주시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죠. 당 지도부로선 상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금투세 유예에 대한 당내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유보적 입장인 반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재차 상법 개정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군불을 때는 중입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아직 공식 스탠스조차 못 잡고 있고요.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있어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 (9월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합병, 공개매수 등의 과정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8월 29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상법 개정안에 대한 추진 의사는 변함이 없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것” (9월 12일, 이 원장)
“한동훈 대표가 당 대표 취임 뒤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바 없다.” (9월 25일 국민의힘 당 대표실 관계자)
“아직 당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상법 개정안 관련 논의를 한 바 없다.” (9월 25일 국민의힘 관계자)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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