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 1선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고교 시절부터 완성도 높은 투구로 주목을 받았던 김민준의 곁에도 그를 키운 ‘마을’이 있었다. 마운드 위에서 마음을 다잡게 해 주는 포수 조형우가 있었고, 슬라이더의 그립을 알려 준 페드로 아빌라도 있었다. 대구고 선배 이로운은 원정길마다 고기를 사 주며 후배를 챙겼고, 부모님은 선발 등판 전마다 ‘응원한다’라는 문자로 아들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받은 도움을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온 김민준. 이제 그는 자신을 키운 온 마을의 마음을 등에 업고, 인천 야구의 차세대 에이스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Daeeun Park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1년 만에 다시 만났어요! 대구고 시절 인터뷰가 기억나요? (8월 6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SSG 랜더스 투수 김민준입니다. 작년 인터뷰가 어렴풋이 기억나요. (촬영 실력이 크게 늘었던데요?) 노하우가 생기진 않았어요. 프로에 와서 인터뷰를 자주 하다 보니 괜찮아졌다고 느껴요.
오늘 인터뷰 소식을 선배들도 알고 있어요?
거의 모르실걸요? 제가 오늘 일찍 출근해서 아직 선배님들을 못 뵀거든요.
대구 출신인 데다 작년까지 낮 경기를 했던 만큼 더위 속에서 뛰는 게 익숙하진 않은가요?
더운 건 괜찮아요. 근데 공기가 워낙 습하니 땀이 엄청 나서 힘들어요. 몸이 무거워지더라고요. (더위를 이겨 내는 노하우가 있어요?) 에어컨 바람을 잠시 쐬다가, 더그아웃에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마운드에 올라가곤 해요.
#류현진, 소형준 그리고 김민준
한화 이글스 류현진, KT 위즈 소형준 이후 역대 3번째 고졸 신인 3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 중이에요. 기록을 의식하고 있어요?
직전 경기(8월 4일 문학 LG 트윈스전)에서 세 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했는데, 그때는 의식이 되더라고요. 확실히 다음 경기가 기다려져요. 앞으로도 잘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요.
밸런스게임을 해 볼까 해요. 더 좋았던 기억은? 데뷔 첫 승 vs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
데뷔 첫 승(6월 24일 수원 KT전)을 고를게요. 1회를 삼자범퇴로 넘겼는데 2회에 위기를 맞았어요. 최소 실점으로 2회를 막고 다음 이닝부터 다시 잘 던졌거든요. 그랬더니 타선에서 득점을 많이 내줬어요. 기분 좋게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승리를 거둔 후에는 선배들이 물도 엄청나게 뿌려 주셨어요.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 땐 어땠어요?
7월 7일 잠실 두산전이었는데, 팀이 연패 중인 상황이었어요. 제가 최대한 막겠다는 마음으로 던졌는데, 어쩌다 보니까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더라고요. 첫 승에 비해서는 묘한 기분이었어요.
고교 시절부터 투구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들었지만, 프로에서 급속 성장 중이에요. 어떤 점을 보완했어요?
중심 이동이 달라졌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강하게 던지려다 보니 힘을 옆으로 썼거든요. 입단하고서는 코치님께서 다리를 포수 방향으로 높게 들라고 조정해 주셨어요. 투구할 때 체력이 향상됐고, 멘탈도 더 강해졌어요. (앞으로 배우고 싶은 구종도 있나요?) 지금은 제가 던지고 있는 구종을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페드로 아빌라에게 슬라이더에 관한 노하우를 배운 에피소드를 자세히 들려줄 수 있어요?
원래 슬라이더를 던지긴 했지만, 좋은 공이 아니었어요. 어느 날 불펜 투구를 마치고 들어가려는데 아빌라가 다가와서 슬라이더를 어떻게 던지고 있는지 묻더라고요. 그립을 보여 드렸더니 엄지손가락 위치를 조정해 주셨죠. 다음날 캐치볼을 하면서 그렇게 던져 봤더니 바로 손에 익더라고요. 원래 슬라이더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못 던져도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마운드에서 활용했습니다. 결과도 잘 나왔고요. (이후에 아빌라와 대화를 나눴나요?) 바로 다음 날 아빌라를 찾아가서 고맙다고, 잘 써먹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도리어 잘 써 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더라고요.
7월 29일 문학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빠른 공의 구속이 151km/h까지 나왔어요. 구속 욕심도 상당하겠는데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구속 욕심을 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프로에 와서는 선발 투수라는 역할에 맞게 최고 구속보다는 평균 구속을 높이는 것에 집중했어요. 물론 150km/h를 던져 보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두산전에서 바로 나올 줄은 몰라서 놀랐어요. 포수 뒤에 구속만 나오는 전광판이 있잖아요? 거기에 ‘150’이 찍혀있는 거예요. ‘150이 왜 나왔지?’라 생각하고 다시 던졌는데 계속 비슷한 구속이 찍히더라고요! ‘오늘 컨디션이 좋나 보다’라 생각하면서 던졌습니다.
완급 조절에도 능한 모습이에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의 비결이 있나요?
코치님과 형들의 조언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또 선발 투수는 5일을 쉬고 던지니 체력 관리에 편리한 면이 있어요. (쉬는 날의 루틴이 궁금해요.) 투구 다음 날과 이튿날에는 공을 잡지 않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많이 뛰면서 체력을 회복해요. 이후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80%의 강도로 캐치볼을 해요. 변화구 감도 잡으면서요.

#안정형 투수
스프링캠프부터 기대를 받았지만, 부상으로 데뷔가 다소 지연됐어요. 조급해지진 않았어요?
지명 직후에는 6월에 데뷔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김광현 선배께서 어깨가 안 좋으셔서 팀에 대체 선발이 필요한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서 4월 데뷔로 계획이 당겨졌는데, 그때 마음이 급해지긴 하더라고요. 그러다 부상이 생기며 다시 원래 계획이었던 6월 데뷔로 돌아왔어요. 다시 마음 편하게 몸을 만들었습니다.
팀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상황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중책을 맡았어요.
부담감을 크게 느끼진 않았어요. 제가 등판해서 승리를 거두면 팀의 연패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 편히 공을 던졌어요. (그렇게 ‘연패 스토퍼’라는 별명이 붙었죠?) 팀의 연패를 제가 끊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어요. 그런 모습에 팬들께서 별명도 붙여 주셨으니까요.
직접 체감한 학생 야구와 프로야구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타자들의 콘택트 능력이 가장 큰 차이예요. 공이 몰리면 장타로 연결되는 확률도 훨씬 높더라고요.
‘안정형 투수’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스스로 볼 땐 어때요?
데뷔 직후에는 불안했던 적이 많았지만, 점차 마음이 잡혀가고 있어요. 조금만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다면 그렇게 불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운드에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 언제였는데요?) 8월 4일 문학 LG전에 1회 첫 두 타자에게 볼넷을 주고 경기를 시작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가장 긴장하게 돼요. 7월에 있었던 KIA와의 경기에서도 그렇게 흔들린 적이 있었고요. 심호흡을 크게 두 번 정도 하고, 형우 형을 믿고 던집니다.
야구장 밖에서도 안정형이에요?
일상생활에서도 불안을 느끼진 않고, 조용한 편이에요. 아직 크게 불안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마운드에서 조형우에게 “다 죽여 버리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고요. 승부욕이 강한 편이에요?
평상시와 마운드 위에서의 제 모습이 상당히 달라요. 일상에서는 순하게 가만히 있는데,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승부욕이 강해지더라고요. 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공을 더욱 전력으로 던져 구속을 올리면서 화를 풀어요.
“정신 안 차리냐?”라고 물어봐도 별 타격이 없었다던데, 어떤 마음이었던 거예요?
저는 마운드에서 착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보다, 강하게 질책해 주시는 게 더 좋아요. (당근보다는 채찍을 원하는 스타일이군요?) 맞아요. 그래야 제가 정신을 차릴 수 있고, 다음 타자를 상대할 때 편하더라고요.
포수 조형우는 어떤 스타일이에요?
저보다 형이기도 하고, 조언을 자주 남겨 주세요.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이겨 낼 수 있도록 경기를 이끌어 주시죠. 평소에도 지지 말고, 이길 수 있는 것만 생각하라고 얘기해 줘요. 덕분에 항상 자신 있게 경기에 나가고 있습니다.
대구고 시절, KIA 타이거즈 김도영을 상대하고 싶다고 했어요. 올해 직접 상대해 본 김도영은 어떤 타자인가요?
아우라가 남다르세요. 처음 상대했을 때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직접 상대해 보니 콘택트와 힘을 모두 갖추셨더라고요. 확실히 어려웠어요.
실제로 만나 보니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는 누구였나요?
(한참 고민) 나성범(KIA 타이거즈) 선배도 까다로웠습니다. 기본적으로 힘이 좋으신데 직구와 유인구에 모두 능숙하게 대처하셔서 상대하기 쉽지 않았어요.

#막내
쉬는 날에는 어떻게 지내요?
잠을 오래 자요. 오후 한두 시까지 계속 자면서 체력을 보충합니다. 취미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잘 먹기도 하죠?) 쉬는 날에는 오히려 적게 먹어요.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 많이 먹으면 살이 찌겠다 싶더라고요. 다음 날 지장이 있을까 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에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한 번 체중을 올리고 나니까 전보다는 살이 잘 붙는다고 느껴요.
입단 동기들과는 많이 친해졌어요?
동기들과는 강화도에서 매일 붙어 있어서 모두 친해요. 강화도에선 할 게 하나도 없거든요? 동기 중에 두 살이 많은 조재우 형의 차를 다 같이 타고 김포까지 가서 놀아요. (김포에서 뭐 하고 노는데요?) PC방에 갔어요. 저는 원래 게임을 잘 안 하긴 하는데 ‘PUBG: 배틀그라운드’를 하자고 해서 같이 했었죠. 저는 못해서 그 이후로는 안 했습니다. (웃음)
등번호 40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비어 있는 등번호 중에서 가장 낮은 등번호이기도 했고요. 제가 대구고 시절 등번호가 20번이었거든요? 그래서 ‘0’으로 끝나는 걸 선택하고 싶었어요. 40번이 마음에 듭니다. 아직 바꿀 마음은 없어요.
데뷔 첫 승리를 기록한 6월에, 선수단에 간식 박스를 돌렸어요. 부모님과 지인들이 준비했다면서요?
소식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간식 박스가 도착해서 선배들께 나눠 드렸어요. 파이와 야구공 모양의 떡이었거든요. 형들이 맛있다고 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앞으로 제가 잘 던지고 나면, 한 번씩 이런 이벤트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평소 부모님은 어떻게 격려해 주는 편이에요?
선발 경기 전날과 당일에 매번 ‘응원한다’라고 문자를 남겨 주세요. 그럼 전 감사하다고 답장하고요. 두 분 모두 다정한 성격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겸손을 강조하시기도 했습니다.
대구고 직속 선배인 이로운과의 인연이 깊은데, 선배 이로운은 어떤 이미지였어요?
제가 유급을 해서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완성도가 정말 높고 배울 점이 많은, 따라가고 싶은 선배였습니다. (프로에서 실제로 만난 이로운은 어때요?) 후배들을 정말 잘 챙겨 주세요. 제가 말을 많이 꺼내는 편은 아니지만,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도와주시는 선배시거든요. 특히 밥을 잘 사 주세요. 원정 경기에 갔을 때 다섯 번 정도 고기를 얻어먹었습니다.
팀에는 내야수 김민준도 있는데, 동료들은 두 선수를 어떻게 구분해서 불러요?
다들 구분을 안 해 주셔서 둘 다 쳐다봐요. (피식) 코치님께서는 ‘야수 민준’, ‘투수 민준’으로 구분해서 불러 주시는데, 형들은 일부러 장난치려고 똑같이 부르세요. 부르셔서 가면 “너 말고 너 와!”라고 하시더라고요.
대구고 시절, 홈런을 맞은 선수에게 DM을 보내 소통한 적이 있다고 했었어요. 최근에 DM으로 소통했던 선수는 없나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게 홈런을 쳤던 당시 경북고 신지후 선수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홈런을 쳤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경기 전날부터 제 스플리터에 맞춰 대비했다고 하더라고요. 프로에 와서 먼저 연락을 한 선수는 아직 없어요. 오래도록 친한 대구고 친구들, 그리고 입단 동기들과 연락을 가장 자주 하죠.
삼성 라이온즈 배찬승과도 친분이 깊다고요. 최근에 얘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최근 들어 연락이 뜸해져서 어색해진 느낌이에요. (머쓱) 경기가 밤 늦게 끝나니까 시간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조만간 제가 찬승이에게 연락 한번 하겠습니다!

#청라 1선발
시즌 목표를 5승에서 7승으로 상향 조정했어요. 신인왕 욕심은 없어요?
의식하지는 않고 있어요. 팀이 승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다승왕을 차지해 보고 싶습니다. (선수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도 있나요?) 통산 180승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큰 부진 없이, 꾸준하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로서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청라 1선발’과 ‘문학산 효자’ 중 더 마음에 드는 별명은 뭐예요?
‘청라 1선발’이 더 마음에 들어요! ‘1선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라는 뜻이잖아요. 그런 선수가 되겠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독자에게 인사 전하며 인터뷰 마칠게요!
항상 응원해 주시고, 경기를 보러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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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속담이 있다. 시련의 연속이었던 인천 야구는 21세기 들어 SK 와이번스와 SSG 랜더스로 이어지며 왕조를 열었고, 꾸준한 강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모든 팀에게 어두운 밤은 찾아오는 법. 인천에도 짙은 어둠이 드리운 순간이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2000년, 그리고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눈앞에 두고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홈에서만 2연패를 당하며 ‘우승 확률 0%’라는 벼랑 끝에 몰렸던 때다.
흥미롭게도 인천 야구는 그림자가 드리울 때 새로운 에이스가 나타나 팀을 구원했다. 2000년에는 구단 역사상 유일하게 신인왕에 오른 이승호가 팀의 초대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2007년에는 김광현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7.1이닝 9탈삼진 무실점이라는 충격적인 호투를 펼치며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2026년, 선발진의 잇따른 이탈 속에 SSG 랜더스는 9위까지 추락했다. 최정과 김광현의 부재로 문학에 그림자가 드리운 지금, 김민준의 ‘랜딩’은 랜더스 팬들에게 또 한 번의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인천 야구는 ‘문학 시대’를 지나 ‘청라 시대’를 앞두고 있다. 청라 돔 시대가 열릴 2028년, 김광현에서 김민준으로 이어지는 에이스의 대관식이 펼쳐질 수 있을까. 지금, 김민준은 새 시대를 향한 자신의 프롤로그를 써 내려가고 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5호 (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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