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저널] 혹한 속에서 빛난 배터리 승온 기술

연초부터 자동차 업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다. 북극 한파 영향으로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많은 전기차가 방전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차주들은 충전소로 향하거나, 충전을 하던 중 배터리가 바닥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이른바 ‘벽돌 현상’이라 불리는 전기차 방전 현상은 견인 조치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차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인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은 이번 현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혹한을 대비한 설계를 갖춰 한파 속에서도 문제없이 충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번 현상을 두고 업계에서는 혹한 조건에 대응하는 제조사별 설계 방식 차이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과연 어떤 차이가 이번 사태의 향방을 갈랐던 것일까? 혹한의 상황에도 문제없이 충전을 가능케 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파헤쳐 보았다​.

 

매서운 추위 속,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평소보다 빨리 닳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실제로 추운 날씨는 배터리 소모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하는 원리를 알고 나면 이해하기 쉬운 현상이다. 

 

전기차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내부의 전해질 속에서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충전과 방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리튬이온도 양극과 음극 사이를 움직이는 속도가 더뎌지고 만다. 내부 온도가 낮아지면서 전해질의 저항이 커지는 탓이다. 결국 배터리는 제 성능을 내지 못해 충전 속도도 느려지고 평소보다 빠르게 소모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보통 25~35도 부근에서 최적의 성능을 낸다. 실제로 이 영역에서 충전 속도가 가장 빠르면서 주행 가능 거리도 길어진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항상 최적의 배터리 성능을 내기 위해 적정 온도 수준을 유지하는 열관리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배터리를 난방하거나, 지나치게 뜨거워진 배터리는 냉각 시스템을 이용해 열을 낮춘다.

 

겨울철에 배터리를 최적의 온도로 끌어올리는 기술은 직접 배터리 팩에 히터를 달아 배터리 온도를 높이는 방법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여기에 제조사에 따라 기존 모터와 인버터의 작동으로 냉각수 온도를 높여 배터리를 승온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단순히 승온에만 그치지 않고 최적 온도를 유지시켜 가장 높은 배터리 성능을 낼 수 있게 만든다.

 

한 겨울에도 전기차 성능을 유지하는 승온 기술

이번 한파 속 전기차 방전 사태에서 업계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 배터리 승온 방식이다. 모터와 인버터로 냉각수 온도를 높이는 방식은 별도의 히터를 장착하지 않아 효율적이지만 배터리 승온에 필요한 에너지가 배터리 히터를 사용하는 방식 대비 2배 가량 큰 편이라 알려져 있다.

 

현대차그룹은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 히터​ 방식의 승온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배터리 팩의 온도 조절을 위해 흐르는 냉각수의 유입구에 배터리 히터가 위치하고, 이 배터리 히터가 냉각수를 가열해 배터리의 온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열효율이 높은 히터를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영하 30도 수준의 혹한에서도 충전이 가능하도록 충전 관련 로직을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승온 중에 배터리가 방전되는 불상사를 사전에 방지하는 설계다. 특히 배터리가 완전히 바닥난 상태에도 충전 케이블만 장착하면 배터리로 전류를 흘려보내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혹한의 날씨에도 승온과 동시에 충전이 가능하다​.

 

겨울철 혹한 환경에서 전기차 배터리 성능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현대차그룹의 기술로 ‘배터리 컨디셔닝 모드’가 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에 적용된 배터리 컨디셔닝 모드는 배터리 히터를 활용한 전기차 편의 기능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설정할 수 있다. 해당 기능은 내비게이션에서 급속 충전소를 경유지나 목적지로 설정 시 동작하거나, 운전자가 버튼 조작으로 임의 동작을 시켜, 주행 중 미리 배터리 온도를 제어해 최적의 충전 속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행 측면에서의 배터리 승온 제어는 주로 저온 상황에서 작동한다. 가령 주차 중 원격 혹은 예약 공조 기능과 연동하거나, 배터리 출력 성능의 최적화를 통해 냉간*에서의 주행 성능을 향상시킨다. 운전자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배터리 온도 상태를 모니터링해 해당 기능을 직접 끄고 켤 수도 있다. 참고로 배터리 컨디셔닝 모드는 차종의 특성에 따라 각각 상이한 조건에서 작동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제조사는 충전과 주행 성능의 최적화를 위해 작동 상태로 설정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환경에서도 최적 성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차량 개발 시 다양한 온도 조건의 챔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혹한 상황에서의 전기차 배터리 성능 시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양연구소 환경차개발시험장에서 이뤄지는 해당 테스트에서는 영하 30도 이하의 극저온 환경에서 충전 성능을 시험하며, 배터리 열관리를 통한 충전 시간 최적화 등 다양한 배터리 충전 성능 시험을 진행한다.

 

 

 

배터리 충전 성능 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서원우 파트장은 테스트와 관련하여 “배터리 충전 전류 및 히터 용량, 충전 효율 등 다양한 파라미터에 대한 최적 조합을 통해 상품의 경쟁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험 환경의 변화에 관한 질문에는 “이상 기후가 빈번해지며 대응해야 할 환경이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시험 기준을 더욱 넓혀 고객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답변하며 사용자 관점에서의 상품성 향상에 대한 의지를 표했다.

 

더 편리하게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목표로 하다

한편, 현재의 전기차 열관리 기술은 전기차 자체의 에너지만을 사용하고 있어 주행거리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충전 스테이션의 외부 에너지를 활용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쉽게 말해 충전 스테이션에 뜨거운 냉각수와 차가운 냉각수를 모두 구비해 놓고, 배터리 온도 상태에 따라 필요한 냉각수를 직접 주입하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을 적용하면 내부 전력을 활용한 배터리 승온 단계가 없어 배터리 잔량은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배터리 온도를 조절해 충전 속도를 최대로 높일 수 있게 된다. 현재 콘셉트 단계에 있는 기술이지만, 현대차그룹은 냉각수를 식히거나 데우는 시간을 절약함에 따라 충전 속도를 최대 40%가량 줄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혹한 상황 속에서도 뛰어난 상품성을 보장하는 것은, 고객이 주행하는 다양한 환경을 모두 고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고객에게 언제나 최상의 이동 경험을 제공한다는 설계 철학을 반영한 셈이다. 전동화 시대를 맞이해 수많은 제조사들이 얽혀 경쟁하는 이 순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배터리 관련 연구개발 활동에 최선을 다 할 계획이다​.​​

 

글 / 서원우 (현대자동차)

출처 / 오토저널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