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곡 한 곡만 부르다 정신분열와서 은퇴해버린 전설의 가수

최호섭의 음악 인생은 태생부터 남달랐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작곡가 故 최창권.

최호섭 아버지 최창권

한국 뮤지컬의 초창기를 이끈 인물이자 영화 음악까지 손댔던 거장이다.

형 최명섭은 작사, 동생 최귀섭은 작곡가로 활동하며 온 가족이 음악으로 엮여 있었다.

최호

어린 최호섭 역시 자연스럽게 악보와 음향 속에서 자라며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데뷔는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대한민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주제가를 부르며 이름을 알렸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발표한 1집 <세월이 가면>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발라드계의 새 역사를 썼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는 그야말로 입에 착착 달라 붙었다.

<세월이 가면>은 가족의 합작품이었다.

형이 작사하고, 동생이 작곡, 아버지가 전주 부분을 편곡하며 최호섭 가족의 음악적 DNA가 모두 녹아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최호섭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세월이 가면’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할 만큼 한국 가요사의 대표 발라드로 자리 잡았다.

뜻밖의 역설…

그러나 엄청난 히트곡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어느 공연장을 가나 최호섭에게 <세월이 가면>만을 원했고, 매 무대마다 수없이 반복되는 유일한 히트곡은 최호섭을 지치게 만들었다.

밴드 음악을 추구하던 최호섭에게 <세월이 가면>은 정이가지 않았던 노래다.

흐름에 맞는 팝발라드가 한 곡은 있어야한다고 해서 앨범 마무리 작업까지 다 끝난 상황에서 막판에 집어넣은 것 뿐인데 그게 의도치 않게 히트곡이 된 것일뿐.

마음 속엔 <세월이 가면>이 아닌 다른 노래들이 가득했다.

인터뷰에서 "매일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정신분열이 올 지경이었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단 한 곡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그 단 한 곡에 갇혀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팬들은 <세월이 가면>을 사랑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노래로 인해 무대가 두려워지고 말았다.

이렇게 혹사당한 목은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성대결절 진단을 받으면서 최호섭은 가수 생활을 잠정 중단하게 된다.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던 그는 그렇게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세월이 가면'의 주인공도 점차 얼굴 없는 가수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최호섭은 가요계를 떠난 뒤에도 음악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보컬 트레이닝, 음반 프로듀싱을 병행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고, 강릉으로 이주해 조용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1년, 무려 27년 만에 최호섭이 다시 무대에 섰다.

새 앨범 <GOODBYE>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온 것이다. 신곡 3곡과 함께 <세월이 가면> 리메이크 버전까지 수록하며 팬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 친구들과 손잡고 만든 이 앨범을 '브러더십 앨범'이라 부르며 작업 과정부터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최호섭에게 <세월이 가면>은 한때 영광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곡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흘러 이제 담담하게 말한다.

“이제는 사랑 노래보다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노래 한 곡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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