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왜 이런 안좋은 문화를"...최근 여행 온 외국인들이 경악한 이유
서구권 유행 ‘팁문화’…국내 요식업계까지 번져
계산대 앞 ‘팁박스’ 논란 일자…“인테리어용”
최근 팁(tip·봉사료)을 요구하는 식당과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팁’은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일정 대금 이외에 더 챙겨주는 돈을 말합니다. 팁 문화가 비교적 활성화된 서구권과 달리 한국에선 그동안 다소 생소한 문화였습니다.
최근 국내 한 유명 빵집은 카운터에 현금이 담겨있는 ‘팁 박스’를 뒀다가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한 이 빵집 사진을 보면 카운터 앞에 ‘팁’이라고 크게 적힌 유리병이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우리 가게가 좋았다면 팁’(Tips. If you liked)이라고 영문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해당 팁 박스에는 동전과 지폐도 담긴 모습입니다.
이를 두고 "왜 팁을 요구하냐"는 소비자 비판이 거세지자 카페 업주는 SNS 댓글을 통해 인테리어 개념으로 팁 박스를 둔 거고, 돈은 받지 않아 괜찮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현재는 계산대 앞에 팁 박스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팁 박스, 팁 안내판 등장…"팁 강요당하는 기분 느껴"
하지만 이 카페 외에도 팁을 요구하는 가게들이 있다는 글과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 팁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또 다른 식당에서도 테이블에 ‘서빙 직원이 친절히 응대했다면 테이블당 5000원 정도의 팁을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 논란이 됐습니다.
마포구의 한 유명 카페에서는 결제 전 직원이 태블릿 화면으로 5%, 7%, 10% 버튼을 보여주며 팁을 주겠냐고 물어보는, 사실상 팁을 강요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본 외국인 여행객 사이에서는 "서비스가 안 좋으면 깎아주냐", "미국 거주중인데 현지인들도 요즘 도가 넘는 팁요구에 질린 상황입니다. 서버들이 기본으로 20%를 요구합니다. 직접가서 픽업하는데도 팁을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럴땐 한국이 그리웠는데 참 나쁜 것만 배워가네요", "그야말로 자발성에 의한 것이어야지 저렇게 대놓고 요구를 하는 건 불법 또는 강제성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등의 비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일반 음식점 등 모든 식품접객업소에서 가격을 표시할 때 부가가치세·봉사료 등을 별도로 표기할 수 없으며, 이를 음식 가격에 포함해 손님이 실제 내야하는 '최종 지불가격'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손님에게 강제로 별도 봉사료를 요구하는 건 불법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팁의 유무에 따라 서비스에 차이가 있다면 강제성이나 의무를 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불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택시 이어 카페,식당까지…‘팁 문화’ 한국은 시기상조?
국내 ‘팁 논란’은 2023년 7월 19일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T가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는 ‘감사팁’ 서비스를 시범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택시 서비스 중 일반 호출 서비스를 제외한 블랙, 모범, 벤티, 블루, 펫에 적용됩니다. 승객은 택시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면 최대 2000원까지 팁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승객이 지불한 팁은 결제 및 정산 수수료 3.5%를 제외한 전액이 기사에게 포인트로 지급됩니다. 포인트는 추후 정산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팁 서비스에 대해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 사항"이라며 "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지난 20일 소비자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반대 의견이 71.7%로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찬성에 더 가깝다’는 의견은 17.2%에 그쳤으며, 11.1%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팁’ 서비스가 생기면 택시 요금 인상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음식값 외에 배달비가 추가로 붙는 것처럼, 택시 요금에 적용되는 ‘팁’도 나중에는 의무로 변질돼 소비자 부담을 더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에 대해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고객이 하차 후에 별점을 매기면서 팁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팁이)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며 "혹여나 하차 전부터 팁을 강요하는 기사가 있다면 누적 횟수에 따라 경고 및 배차 제한 조치 등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외신이 전하는 외국 빗나간 팁 강요 사례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지난 후 본격 재 오픈한 레스토랑에서 팁 강요가 심해졌습니다. 맨해튼 식당의 팁은 이제 음식값의 20%가 보통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10%도 괜찮았고 대개 15%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아예 '빌'(식대계산서)에 20%의 팁을 합산해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팁이 '가격'이 된 셈입니다.
미국 CNBC 방송은 지난달 미국은 세계에서 팁 부담이 가장 큰 나라라며, 그런데도 팁은 자꾸 오르기만 한다고 고발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CNBC는 현재 미국에서 무분별하게 팁을 올리는 바람에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피로증'(tip fatigue) '팁크립'(tip creep) 증후군이 심각하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이 팁 관습이 일반적인 유럽의 경우와 비교했습니다. 방송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팁은 '감사의 작은 표시로 주는 것'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며 팁을 거의 의무화하고 강제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에서 팁이 오르고 제도화 되면서 희한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팁이 없었던 햄버거 프랜차이즈 등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주문 키오스크에 팁을 추가하도록 하거나 점원이 가져온 주문 태블릿에 점원이 보는 앞에서 팁의 비율(심지어 50%까지도 있다)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미국에서 팁은 이제 세금이나 마찬가집니다.
신분제적 기원의 팁, 발 못 붙이게 해야
팁의 기원은 유럽의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이 하인이나 피고용인의 노동 서비스에 대해 정해진 보수 외에 추가적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유력합니다. 즉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보상을 하는 봉건적 계급적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팁 문화에는 신분제적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팁 청정지역입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일각에서 팁을 도입하려는 것은 이런 관습에 정면 거역하는 일입니다. 한국은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일반화된 팁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심정적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돼 좋다는 해외관광객들의 반응이 많습니다. 팁을 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팁은 서비스를 받은 손님이나 소비자가 베푸는 '호의'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팁이 확산하면 생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몇 가지 문제만 살펴보면 첫째, '추가비용'이 초래됩니다. 고객이나 소비자는 기존 가격 외에 없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합니다. 이는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소비자나 고객은 새로 생긴 이 추가비용에 대해 저항감을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팁이 일반화되면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보수를 인상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지어 깎으려고 할지 모릅니다. 피고용인이 팁을 받는 만큼 보수를 적게 주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저임금제도가 비교적 잘 시행되고 있는 국내에서 팁은 최저임금제도를 헝클어뜨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나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팁을 받는 것을 전제로 보수를 최저임금 아래로 책정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셋째, 팁의 압박이 커지면 팁은 피고용인의 보수가 되어가고, 이는 소비자나 고객 입장에서 그들의 보수를 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넷째, 팁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입니다. 보수처럼 되어버릴 경우 서비스 업소 피고용인들은 임금 불안정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팁이 확산하는 것을 초기에 막아야 합니다. 소비자단체가 나서서 팁을 도입한 업체나 업소에 대해 철회를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불매운동이나 보이콧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팁 노(NO)' 스티커라도 만들어 팁에 저항해야 합니다. 소비자 개개인도 '팁 노' 운동에 동참해 팁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팁 청정지역인 국내에 팁이 확산되는 것을 방치했다간 지나친 팁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미국 꼴이 될 수 있습니다.
"힙하려고 팁박스 두냐…소비자에겐 큰 압박"
미국리뷰 다나언니 유튜브
서구의 팁 문화가 국내에서도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국내 도입된 팁 문화와 관련해 살펴봐야 할 점들이 많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은 가격표시제에 따라 소비자들에게 가격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게 돼 있다"며 "그런데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 메뉴판에 있는 가격이 아닌, 추가 팁을 내야만 한다면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격표시제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사업자가 생산·판매하는 물품에 대해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실제 판매되는 가격을 표시해둠으로써 소비자가 물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도록 합니다.
이 교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가격이 고정적이어야 하는데, 팁문화를 도입하게 되면 모든 가격이 ‘유동 가격’처럼 돼 버릴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팁박스’를 비치하는 것 역시 점주들은 ‘힙해 보여서 인테리어용으로 활용한다’고 할지 몰라도 소비자에겐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임금 결정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서비스 업종은 팁까지 포함해서 임금을 주지만,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9620원으로 일괄 결정돼 있다"며 " 굳이 팁을 추가로 도입하는 건 매장 손실액을 소비자에게 내라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키오스크 도입이 확대되면서 직원보다는 소비자가 오히려 수고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시점에서 팁 문화 도입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지난 2년간 고물가로 시달려 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가격이 올라가는 것에 마음이 좋지 않다"며 "미국의 경우 식당 계산서에 팁을 얼마 줄 건지 쓰게 돼 있는데, 자칫 팁 지불이 의무처럼 번질까 봐 우려하는 소비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팁 문화는 국내보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 보편화돼 있습니다.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큰 상황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