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로 가득 찬 KBO 1루수들의 건강한 복귀 기원 그리고 포항 구장 이야기.
롯데 고승민이란 선수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면 이 선수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선수인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강인한 인상과는 달리 순둥순둥한 목소리와 딱 20대 초반의 피부를 가졌습니다.
그 고승민 선수에게 수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6월 29일이었습니다. 3연전의 마지막 날, 비가 내려서 경기가 진행될 지 알 수 없는 상태의 덕아웃에서 였죠. 직전 두 경기에서 고승민 선수는 환상적인 1루 수비를 연이어 보여주면서 팀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런데 고승민 선수는 시즌 초만 해도 외국인 투수 스트레일리가 수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던 1루수비를 보여줬던 선수였습니다. 어떻게 불과 두 달 만에 이런 발전이 가능 했을까요?
사실 고승민 선수는 2루수 자원으로 프로에 입단한 선수로 프로에 와서는 루키 시즌을 제외하면 주로 외야로 기용됐습니다. 그의 뛰어난 배트 자질을 썩히기가 어려워서 였죠. 올해는 우익수와 1루수를 병행하는 중이었는데 우익수를 5월부터 2년차 윤동희 선수가 꿰차게 되면서 고승민 선수는 1루에 집중하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두어 달 만에 이제 1루에 완전히 적응하는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승민 선수는 그 비결로 KBO리그의 특유의 분위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1루수인데 다른 팀 1루수에 비하면 아직 많이 어리거든요. 안타를 치고 1루에 온 형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 때 형들이 많은 조언을 해줘요. 제가 안타나 볼넷을 골라 1루에 나가도 마찬가지죠. 아웃카운트나 타자 성향에 따른 수비 위치나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요. 예를 들면 병살플레이를 할 때 어디부터 던지는지. 이런 거요.”
학연, 지연 하나도 없는 다른 팀의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에 처음에는 놀랐다고 합니다.
“그 1루수들이 학교 선배도 아닌 형들이예요. 그런데도 제게 그렇게 따뜻하게 조언을 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죠. ‘이게 KBO 1루수 문화 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 중에서도 고승민 선수가 마음이 울컥할 정도로 고마웠던 선배가 한 명 있다고 했습니다.
“오재일 선배님이요. 삼성이랑 경기를 하는데 제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갔어요. 일어서서 유니폼 흙을 털고 있는데, 재일이 형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너 이렇게 야구하면 앞으로 야구 오래 못 해. 앞으로 1루는 슬라이딩 하지 말고 그냥 뛰어.‘ 이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갑자기 울컥했어요. 사실 아직도 1루가 보이고 제가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안 해야지, 안 해야지.‘하다가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쓰러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재일이 형의 이야기를 항상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아마 7월 6일 그 날도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오재일 선수가 해준 조언을 지키고 싶어했을 겁니다. 한화와의 경기, 고승민 선수가 1루로 머리부터 미끄러져 들어갔던 그 순간에도 말이죠.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렇게 고승민 선수가 왼쪽 엄지 손가락 인대 부상을 입은 그 날과 같은 날, 포항 야구장의 1루에서는 오재일 선수가 병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 1루로 전력질주를 하다가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습니다. 두 선수는 모두 회복과 재활까지 4주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올시즌 오재일 선수는 지독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배트에 컨택만 이뤄지면 엄청난 타구스피드를 바탕으로 장타를 양산하던 오재일의 컨택이 올시즌 눈에 띄게 줄어든 것입니다. 최근 퓨쳐스에서 조정 기간을 거치고 지난 주부터 조금씩 컨택이 이뤄지려는 찰나에 입은 부상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큽니다.
서로 간에 힘이 되는 동업자이자 경쟁자인 롯데와 삼성의 1루수 고승민 선수와 오재일 선수가 건강하게 회복해서 복귀하기를 기대합니다. 부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 김에 한 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에 제가 중계방송을 했던 포항 구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영상 하나 보시겠습니다. 3연전의 첫날 있었던 일입니다.
보시다시피 정철원 선수의 발목이 살짝 돌아갔습니다. 비가 내려서 마운드가 물러져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마운드가 제대로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아서 입니다. 이 날 마운드에 올라왔던 투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평균 구속 이하의 빠른 공을 던졌습니다. 착지 지점이 너무 물러서 자신 있게 발을 딛지 못해서 였겠죠. 강하게 디디면 위 영상의 정철원 선수처럼 넘어질 게 뻔하니까요. 그럼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어땠을까요? 이 영상을 보시죠.
비가 내리지 않았던 수요일과 목요일은 베이스에 슬라이딩만 하면 흙먼지가 자욱해 졌습니다. 위 강승호의 2루타 장면은 대표적인 장면일 뿐, 삼성 선수들도 똑같은 장면을 많이 연출했습니다. 이 역시 원인은 같습니다. 땅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타자들은 타구를 때리고 1루에 달려야 하는데 타석 안에서 뒷발이 미끄러진 선수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이 역시 원인은 같습니다. 땅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서요. 포항에서 고교 시절을 보낸 강민호 선수는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때도 이런 야구장에서 안 했다."고 포항 구장의 그라운드 상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습니다.
삼성 구단에 문의한 결과 삼성 라이온즈 구단의 운영팀과 KBO에서도 이번 3연전을 앞두고 포항 구장의 실사를 거쳤다고 합니다.
"고교 주말 리그와 사회인 야구 등의 경기를 치르면서 경기장 상태가 엉망이 됐는데 실사팀에서는 짧은 시간에 상태를 프로 구장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어차피 방안은 두가지 중 한 가지다. 포항 3연전을 취소하거나, 경기를 치르거나. 아마 결정을 하는 측에서는 경기가 세 경기 밖에 안되니까 빨리 치르는 것이 낫다고 본 것 같다."
구장의 상태가 이 지경 임에도 프로야구 경기를 치르는 결정이 났다는 것이 이 사태의 진짜 문제입니다. 함께 중계했던 김태형 해설위원은 포항 구장의 상태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사회인 야구나 고교 야구 경기는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도 선수예요. 프로만 선수가 아니라 야구복 입고 있으면 다 선수인데 그 선수들은 여기서 경기하다 다쳐도 되는 거예요?"
제가 구단의 제 2구장의 경기가 싫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출판했던 책인 '야구장에 출근하는 남자'에서도 이미 밝힌 바가 있듯이 야구 저변의 확대를 위한 2구장 경기를 매우 환영합니다. 비중도 더 늘렸으면 좋겠고요. 다만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다음 포항에서 열리는 야구 경기는 8월 1일부터 3일까지 기아 타이거즈와의 3연전입니다. 만일 그 때 포항에서 경기가 치러진다면 더 이상 투수가 미끄러지지 않고, 흙먼지가 안개처럼 베이스 주변을 덮지 않으며, 타자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다음 베이스로 출발했으면 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없다면 KBO도 과감한 결정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고승민과 오재일처럼 선수들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정말 어떤 상황에서 부상을 당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수 있는 환경은 최대한 피해주는 것이 낫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야구 선수가 부상의 위험이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야구장에서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