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부글부글’ 들끓는 국제사회

2024. 10. 2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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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국제법 위반’ 비판 불구 더 노골적 공격에 나서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 막을 실질적 방법 없어 속앓이
10월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차량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상전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까지 공격했다. 유엔 회원국인 이스라엘이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선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더 노골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동시에 레바논 전역으로 공습 범위를 넓혀 민간인 인명 피해도 불어나고 있다.

유엔 기지 ‘헤즈볼라 방패’라는 이스라엘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오전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에 있는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기지 정문을 탱크로 부수고 강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 15명이 다쳤다. 앞서 지난 10월 11일부터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유엔 평화유지군 대원이 잇따라 다치자 파병한 40개국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 만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를 공격했다.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대에 주둔하며 양국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을 포함한 50개국에서 파병한 1만여명의 병사와 지원 인력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을 정당화했다. 처음엔 “고의적 공격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내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따라 넓게 주둔하는 유엔 평화유지군 뒤에 숨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위한 ‘인간 방패’가 되고 있다”며 유엔에 레바논 지역 유엔 평화유지군 철수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 인근 현장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군이 기자들에게 국경지대 산비탈에 있는 땅굴 입구 2개를 공개했으며, 여기에서 불과 90m 떨어진 곳에 유엔 평화유지군 기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진압 작전으로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병원 아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땅굴이 있다며 외신에 현장을 공개한 적이 있다.

“레바논 남부의 눈과 귀 없애려는 것”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10월 14일 처음으로 성명을 내고 “유엔 평화유지군과 시설은 절대 공격 대상이 돼선 안 된다”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유럽연합도 지난 10월 13일 “레바논에서의 즉각적 휴전과 안보리 결의안 1701호의 이행을 위해 이스라엘의 유엔 평화유지군 공격 중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국 외교장관도 같은 취지의 공동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유엔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의 새로운 장을 연 것”(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 등 국가수반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의 근거가 된 로마 규정에 따르면 평화유지 임무와 관련된 요원이나 시설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기소하고 재판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동안 국제형사재판소뿐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대량학살(제노사이드) 등 전쟁범죄 혐의를 두고 있는 상황도 모른 채 해왔다.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 종식을 위해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701호 내용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안보리 결의 제1701호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레바논 리타니강 이남에는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규군과 유엔 평화유지군만 주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안보리 결의 제1701호가 제대로 지켜진 적 없어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레바논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이 결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막무가내 행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지상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하고 철수까지 요구한다고 본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어 억지력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보리 결의 위반 상황 등을 유엔에 보고할 수 있다.

미셸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눈과 귀를 몰아내고 자유로운 통치권을 얻으려 한다”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국제 질서를 지키도록) 매우 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철수 요구에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역으로 공격 확대, 민간인 피해 속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 지역에서 지상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공격 범위를 확대해 레바논 전역을 폭격하고 있다. 헤즈볼라 본부 중심지로 알려진 남·동부와 거리가 먼 북부의 기독교 마을까지 공습하자 레바논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총 22명이 숨졌으며 공습받은 건물엔 피란민들이 거주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레바논 전체인구의 25% 이상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정부는 12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중 어린이는 약 40만명에 달한다. 테드 차이반 유니세프 인도주의적 행동담당 부국장은 “(한 달 사이) 레바논의 학교는 접근할 수 없게 됐거나 전쟁으로 손상돼 피란처로 사용되고 있다”며 “레바논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 분쟁 지역 아이들은 학교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조차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레바논에서 2300명이 사망했다. 이중 75%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확대한 최근 한 달 새 숨졌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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