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탱크데이…‘다양성’ 뒤에 숨은 가해의 자유 [왜냐면]


안지훈 |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 지속가능발전센터장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 마케팅 논란에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의 진정성을 기대했던 대중은 곧 이어진 발언에 실망했다. 정 회장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해당 문구와 마케팅 내용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고 국가 폭력을 희화화한 논란에 ‘의견의 다름’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대하는 일부 기득권층의 인식을 드러낸다. 또한 반인도적 범죄의 기억을 상업적으로 소비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뒤에 숨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정 회장의 발언과 스타벅스 측 해명은 미국식 자유주의와 ‘사상의 자유 시장’(Marketplace of Ideas)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불쾌하거나 무지한 표현도 법적 처벌보다 사회적 토론과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미국식 표현의 자유가 가진 한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미국은 흑인 차별과 원주민 학살이라는 국가 폭력을 겪었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이나 혐오 표현을 강하게 규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학자들은 그 이유를 권력 구조의 연속성에서 찾는다. 가해 세력 또는 그 후신이 정치·경제 권력을 유지한 사회에서는 과거 범죄를 엄격히 단죄하는 제도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미국식 표현의 자유는 이상적인 자유의 원칙인 동시에 역사적 책임을 둘러싼 타협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회장이 언급한 ‘다양한 의견’도 비슷한 문제를 드러낸다. 과거 폭력을 해석의 문제로 돌리면 가해 책임은 흐려진다. 결국 ‘다양한 의견’이라는 표현은 책임을 희석하는 방어 논리로 작동할 수 있다.
독일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민주주의가 나치에 의해 무너진 경험을 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자유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Streitbare Demokratie)는 민주주의 자체를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둔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홀로코스트 부인·찬양을 처벌한다. 독일 사회는 이를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본다. 독일이 이런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범죄에 대한 강한 반성과 역사적 단절 노력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는 독일과 다른 길을 걸었다. 민주화를 이뤘지만 국가 폭력에 대한 역사 청산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그 결과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조롱하는 발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도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 어렵다. 역사적 비극을 기업 마케팅 소재로 소비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비판 여론을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로 설명한 태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표현의 자유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타인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을 훼손하는 표현까지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논의해 왔다. 이번 논란이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시민사회의 비판과 문제 제기는 그 경계선을 다시 묻고 있다.
정용진 회장과 스타벅스는 기억해야 한다. 역사적 비극은 마케팅 소재가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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