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애플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Mac 5
안녕하세요, 애플 맥만 사용한 지 16년이 다 돼 가는 골수 맥 유저 이주형입니다. 오늘로 맥 출시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매킨토시를 선보인 게 바로 40년 전의 오늘, 1984년 1월 24일이었으니까요.
현재 맥 라인업
맥은 애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이를 기념하여 맥의 4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5대를 선별해 보았습니다.
[1]
매킨토시 : 모든 것의 시작
개인용 컴퓨터(PC)가 처음으로 대중화된 1970년대 후반만 해도 PC를 사용하는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모든 건 복잡한 명령어를 직접 쳐서 작동시켜야 했죠. 이 이유만으로도 PC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기기였습니다. (지금은 뭔가 다른 의미로 높지만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새로운 개념이 바로 GUI, 즉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였습니다. 명령어 대신 UI 요소를 아이콘 등으로 시각화하여 명령어를 몰라도 쉽게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사실 PC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오면서도 현대 컴퓨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GUI를 처음 개발한 건 우리에게 복사기로 익숙한 제록스 산하의 팔로 알토 연구소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을 개발해 놓고 제대로 활용할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썩히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게 됩니다. 잡스는 아직 상장되기 전이었던 애플 주식 100만 달러 어치를 제록스에게 넘기고 GUI 관련 판권을 가져와 이를 활용한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1984년, 첫 매킨토시는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습니다. 물론 매킨토시가 애플이 처음으로 GUI를 도입한 PC는 아닙니다. 그보다 1년 먼저 공개됐던 애플 리사가 있었죠(긴 사연이 숨어있지만 리사는 스티브 잡스 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리사는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으로 판매량 면에서 참패를 합니다. 매킨토시는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제품이었죠. 출시 당시 가격은 2,499달러였고, 단숨에 애플의 주력 컴퓨터 제품이 됩니다. 모니터가 일체형으로 붙어 있는 귀여운 본체는 손잡이가 달려 있어 휴대가 가능했고, 거기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했습니다. 지금이야 마우스가 흔하다 못해 올드한 제품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화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미 15년 전에 발명되고도 명령어 기반의 인터페이스 때문에 찬밥 신세였던 마우스를 애플이 매킨토시를 통해 메인스트림으로 끌어 올린 거죠.
첫 매킨토시 이후 사람들은 처음으로 각종 명령어를 익히지 않아도 PC를 쉽게 쓸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PC가 대중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겁니다.
[2]
파워북 100 시리즈: 노트북의 초석을 다지다
PC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0년대, 휴대용 PC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대중화를 위해서는 기술의 한계가 유일한(상당히 큰) 걸림돌이었죠. 물론 위에 얘기한 첫 매킨토시도 손잡이가 있어서 ‘휴대’ 자체는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서나 쓸 수 있을 정도의 휴대성은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의 포터블 컴퓨터는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 했습니다. 성능, 혹은 크기. 80년대에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같은 신기술(?)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어떤 제품은 납 축전지를 달아서 무게만 11kg에 달했고, 어느 제품은 성능을 확 줄여서 PC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정도의 간단한 기능을 탑재해 무게 증가를 막아보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애플도 맥 포터블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포터블 컴퓨터 시장에 도전해 보았지만, 당시의 포터블 컴퓨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크게 해결하지 못하고 사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 실수에서 배우고 다시 도전합니다. 바로 1991년에 공개된 파워북 100 시리즈였습니다. 고작 2년 전에 나왔던 맥 포터블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언뜻 보면 지금의 노트북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죠? 사실, 현재의 노트북의 디자인은 파워북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9년에 나온 컴팩 LTE-386
당장 당시 나왔던 다른 포터블 컴퓨터들과 파워북의 모습을 간단히 비교해 볼까요? 둘 다 모양 자체는 지금의 노트북과 유사합니다. 다만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키보드 아랫부분입니다. 사진 속의 컴팩 포터블은 키보드 아래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파워북은 그 아래에 공간을 만들고 트랙볼을 달았죠.
파워북의 이러한 디자인은 ‘필요에 의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사실 이 당시의 대부분의 PC들은 맥을 제외하면 아직 명령어 기반의 운영체제인 MS-DOS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윈도우로 불리는 3.1은 1992년까지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커서를 움직일 입력장치가 필요하지 않아서 키보드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는 디자인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맥의 운영체제는 GUI 기반이기에 마우스, 혹은 트랙볼이 필수였습니다. 그렇다고 키보드의 옆에 놓자니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에 따라 마우스를 놓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놓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애플은 트랙볼을 키보드 아래에 놓아서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도 모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트랙볼 좌우에는 빈 공간을 두어 키보드를 치는 손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팜레스트의 기원입니다. (palmrest라는 단어가 손바닥을 뜻하는 palm과 쉬다라는 뜻의 rest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파워북은 맥의 휴대용 라인업을 완전히 리부트 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노트북의 모양을 만들어냈습니다. 파워북의 성공은 이후 새로운 파워북뿐만 아니라 인텔 CPU로의 이주 후의 맥북 라인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노트북의 판매가 데스크톱을 한참 앞서는 지금까지의 맥 라인업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 또한 맥 노트북의 역사에서 파워북을 그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플 CEO 팀 쿡은 2016년에 새로운 맥북 프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번 주가 바로 애플이 첫 노트북을 선보인 지 정확히 25주년이 되는 주입니다”라고 말하고, 맥 노트북의 역사를 1분 내로 담아낸 2016년형 맥북 프로의 소개 영상(https://bit.ly/3Oc2JFB)에서, 애플은 파워북 100을 맨 처음으로 담았습니다. 물론 그때 출시된 새로운 맥북 프로가 여러 가지 이유로 맥 노트북 역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가 된 것은 논외로 하죠.
[3]
아이맥: 안녕 (다시)
1998년 출시된 첫 아이맥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한 후의 첫 제품인 아이맥은 사실 첫 매킨토시와 놀랍도록 닮아있는 제품입니다.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형인 디자인도 그렇지만, 매킨토시처럼 컴퓨터 업계에 미친 영향도 만만찮았던 맥이었죠.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귀여운 디자인의 아이맥은 잡스의 귀환 당시 애플의 사운이 걸린 제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애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은 상당히 달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외에도 아이맥은 컴퓨터 업계와 인터넷 상시 연결의 개념과 USB라는 매우 중요한 혁신을 안겨다 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맥에 대해서는 제가 작년에 썼던 25주년 기념 기사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https://the-edit.co.kr/55561)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4]
맥북 에어 (2010): 노트북과 맥 라인업을 다시 정의하다.
2008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서류봉투 안에서 노트북을 꺼냈습니다. “가장 얇고 가벼운 노트북”. 그렇게 맥북 에어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3kg의 무게에 0.4-1.93cm밖에 안 되는 두께는 그 당시에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장면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젠테이션이 되었고, 맥북 에어는 경량 노트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맥북 에어는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일단 가격도 비쌌고(당시 가장 저렴한 맥북의 2배였습니다), 무엇보다 얇은 두께를 위해 확장성이나 성능에서 많은 타협을 봐야 했습니다. 광학 드라이브가 삭제됐고, USB 포트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https://the-edit.co.kr/8447) 혹자는 약간 따뜻한 방에서 쓰고 있으면 사용하는 게 어려워질 정도로 느려지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냉각 시스템이 열을 식히기에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2년 뒤, 애플은 맥북 에어를 완전히 다시 설계했습니다. 아이패드를 만들면서 배운 노하우로 다시 설계했다는 새 맥북 에어는 그동안 있었던 기술의 발전을 활용해 맥북 에어를 좀 더 사용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에 놓을 수 있었고, 이전 세대가 가졌던 성능이나 확장성의 문제점을 해결했습니다. 특히 더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며 USB 포트가 하나 더 늘고, 거기에 SD 카드 슬롯까지 넣은 점은 괄목할 만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맥북 에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맥 라인업에서 처음으로 SSD만을 탑재한 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하드디스크가 기본적인 저장매체로 쓰이고, 더 높은 사양의 모델에서만 SSD를 선택하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맥북 에어에서 맥 라인업에서는 처음으로 하드디스크 옵션을 없애고 아예 SSD만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SSD를 탑재함으로써 성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SSD의 작은 크기를 활용한 새로운 회로 설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습니다.
맥북 에어는 ‘울트라북’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창조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인텔이 울트라북의 인증 기준을 만들 때, 맥북 에어를 많이 참조했기 때문입니다. 맥북 에어 이후로 다른 제조사들의 노트북의 개발 기조 역시 얇고 가벼우면서 SSD를 탑재해 성능을 보강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현행 15인치 맥북 에어
이후 맥북 에어는 2018년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신형 모델로 나오게 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첫 맥용 애플 실리콘 칩인 M1의 탑재로 애플이 처음에 구현하고자 했던 ‘얇고 가벼우면서, 성능도 부족하지 않은 모두가 쓸 수 있는 노트북’의 목표를 10년 만에 달성했습니다.
[5]
맥 스튜디오: 애플 실리콘의 잠재력
2020년에 처음 선보인 M1은 PC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특히 위에 언급한 대로 M1 맥북 에어는 애플 실리콘의 정체성을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애플 실리콘의 잠재력을 극강으로 보여준 맥은 맥 스튜디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맥북 에어나 프로 모두 애플 실리콘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설계에 반영하여 만들어졌지만, 맥 스튜디오만큼 애플 실리콘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제품은 없기 때문이죠.
애플은 먼 옛날부터 고성능의 데스크톱을 작은 크기에 넣는 디자인을 계속 시도해 왔습니다. 2000년에 나온 파워맥 G4 큐브(https://bit.ly/3SFgteN)도 그러했고, 2013년에 나온 연탄통 모양의 맥 프로(https://bit.ly/3UafiF6)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그 제품들은 모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발열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발열이 심한 부품들을 밀어 넣으니 제때 냉각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죠. 결국 이런 디자인을 시도할 때마다 애플은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거대한 타워형의 고성능 데스크톱으로 회귀하곤 했습니다.
맥 스튜디오에 와서야 애플은 그토록 원하던 작은 고성능 데스크톱을 발열 걱정 없이 실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애플 실리콘의 놀라운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 덕분이었죠. 하지만 M1 울트라, 그리고 이후의 M2 울트라는 성능 면에서도 어떤 인텔 맥보다 빠른 성능을 보여줍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작은 고성능 데스크톱의 단점은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데스크톱이 타워형으로 나오는 것은 내부에 달린 PCIe 슬롯 등을 이용한 확장을 하기 때문인데, 맥 스튜디오는 외부에 달린 썬더볼트 단자를 활용해 확장을 해야 합니다. 썬더볼트 스펙의 발전 덕분에 썬더볼트를 통한 확장도 어느 정도 쓸만해졌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여전히 내부 확장형 데스크톱에 의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맥 스튜디오는 여전히 확장성 면에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것이죠. 물론 그 확장성이 절실하다면 M2 울트라 맥 프로를 사면 되겠지만, 가격 차가…
One More Thing: 사실 가장 성공한 맥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기기를 더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맥은 아니지만, 맥에서 파생된 기기 중에서는 세상에 가장 거대한 파급력을 몰고 온 기기입니다.
▼ 그 기기의 정체는 바로…
아이폰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독자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아이폰의 운영체제인 iOS는 처음에 macOS(당시 macOS X)에서 파생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예 아이폰을 처음 발표했을 때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아이폰은) OS X을 구동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폰에 macOS를 옮겨온 것은 아이폰에 맥에 준하는 소프트웨어 기반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잡스는 블랙베리로 대표되는 당시 스마트폰들의 운영체제를 ‘아기 소프트웨어’라며 스마트폰으로서 요구되는 기능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폰의 운영체제가 맥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더욱 강력한 앱들을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스마트폰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데스크톱 수준의 웹 브라우징이 가능했던 것도 macOS의 강력한 기반을 가져와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iOS가 macOS를 기반으로 둔 것은 이후에 애플도 예상하지 못했던 몇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앱 스토어를 통한 앱 기반의 생태계를 구축한 점입니다. 처음에 애플, 아니 잡스는 애플 외의 개발자가 아이폰을 위한 앱을 개발해 배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방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의 다른 임원진들이 잡스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2세대인 아이폰 3G부터 개발자들이 아이폰 앱을 개발할 수 있는 SDK와 앱 스토어가 등장합니다. iOS의 기원 덕분에 기존에 맥용 앱을 개발하던 개발자들도 아이폰 앱 개발에 손쉽게 뛰어들 수 있었고, 초기 앱 스토어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거기에, 맥과 아이폰의 운영체제들 사이에 유사점이 많은 것은 이후 애플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맥과 아이폰 사이에 사용할 수많은 연속성 기능들은 두 운영체제가 많은 부분들을 서로 공유하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아이폰은 애플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해 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맥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