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선물’ 건네고 짐보따리만 받아온 윤 대통령

이제훈 2023. 3.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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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뉴스분석 l 1박2일 방일 거센 역풍 왜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난 16일 도쿄 정상회담 이후 관계 개선의 순풍은커녕 독도·위안부 합의 등 해묵은 현안이 물 위로 떠오르고 한국 사회의 반발 여론이 격화하며 오히려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에 현물로 선물을 잔뜩 안기고, 어음과 청구서만 오히려 받아들고 온 ‘일방 외교’라는 비판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한국, 일본, 국제사회에서도 공통되게 나온다”고 자평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귀국 다음날인 18일에도 ‘방일 결과 설명 자료’를 내어 △양국 관계의 미래 지향점 확인 △경제안보와 미래첨단산업 등 전략적 협력 지평 확대 △수출규제 조치 철회 △셔틀 외교 재개 등을 강조했다. 같은 날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윤 대통령 방일의 ‘성과’를 부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국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과 언론 보도를 비교해보면 외교 협상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저울추가 일방적으로 기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6일 오후 스키야키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요시자와’ 식당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만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안’과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발표로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 요구가 적법함을 인정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했다.

이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반응은 회담 뒤 사과·배상을 직접 입에 담지 않은 공동기자회견 발언에서 나왔다. 기시다 총리는 “옛 한반도 출신 노무자 문제”라는 표현으로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정면 부인했다. 더구나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명확한 사과가 아니다. ‘역대 내각의 입장’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힌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뿐만 아니라, “뒷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담화’(2015년 8월14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일본 쪽엔 ‘사과 없음’, 한국 쪽엔 ‘간접 사과’로 비치는 조처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이후 고수해온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풀었고,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했다. 하지만 일본은 간편 수출 절차를 허용한 ‘화이트리스트’는 즉시 복원하지 않고 추후 협의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수출규제 3대 품목의) 국내 공급이 안정적으로 됐다. 소재·부품·장비 100대 품목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많이 감소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평가에 비춰, 수출규제로 판로가 막힌 일본 기업과 국산화에 성공한 한국 기업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수혜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지소미아(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고, 국방부와 외교부는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 쪽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일이다.

이와 함께 한·일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게이단렌)가 16일 각 10억원씩 모두 20억원 규모의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사과와 배상이 없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반발을 억누르려 ‘미래’를 명분으로 급조한 기금인데, 구체적 사업계획과 기금에 참여할 일본 기업도 정해지지 않은 전형적 개문발차다.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회담 내용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불씨를 예고하고 있다. 회담 직후 <교도통신>과 <엔에이치케이>(NHK) 등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일-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하고, “다케시마(독도를 일컫는 일본 표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련의 보도는 16일 회담 직후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익명을 조건으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한테 △“다케시마” △위안부 합의 △레이더 문제 △(후쿠시마 핵사고 오염수) 수산물 수출입 규제 문제에 대해 “우리(일본) 입장에서 언급했다”고 언론에 설명한 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를 근거로 한 보도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은 모호하다.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한국방송> 뉴스에 나와 독도·위안부 두 문제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같은 날 <와이티엔>에 나와 “회담에서 오고간 정상들의 대화는 다 공개할 수 없다”고 얼버무렸다. 결국 “논의되지 않았다”는 정부 설명은, ‘기시다 총리가 독도 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 입장을 밝혔으나 윤 대통령은 그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일 관계에 오래 관여한 외교 원로는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제대로 된 반박을 내놓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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