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바쳐 키운 자식이 정성껏 마련한 저녁 식사에 초대해도, 70대 부모들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며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손주가 보고 싶고 자식 얼굴이 그리워도, 막상 문턱을 넘으려면 망설여지는 것이 우리네 노년의 솔직한 심정이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를 넘어, 70대들이 자식집 방문을 극구 사양하는 그 서글프지만 현실적인 이유를 깊이 들여다본다.

자식은 부모를 반기지만, 그와 함께 사는 며느리나 사위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 순간 부모의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살가운 사위나 며느리라 해도, 남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며 화장실 사용부터 식사 시간까지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차라리 내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이 몸도 마음도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결과다.

자식들은 부모가 오면 잘해드리고 싶어 정성껏 음식을 차리고 이것저것 챙기지만, 그런 호의가 오히려 부모에게는 큰 심리적 빚으로 돌아온다.
내가 대접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자식들에게 무리한 노동을 시키는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즐거워야 할 방문이 결국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시간이 된다.
부모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공간을 원할 뿐, 굳이 자식이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내 눈에는 자식들의 살림살이나 육아 방식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불화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70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조언을 빙자한 간섭이 자식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릴 것이 뻔하기에, 아예 방문하지 않음으로써 자식의 삶에 참견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방어 기제다.
내 집에서는 내 방식대로 살면 그만이지만, 자식집에 가면 나의 가치관과 자식의 가치관이 충돌할까 봐 늘 마음을 졸이게 된다.

70대가 되면 거창한 외출이나 여행보다 익숙한 내 집, 익숙한 침대에서 보내는 정적인 시간이 가장 큰 행복이자 안식이다.
자식집에 가면 불규칙한 손주들의 일정에 맞춰야 하고, 자식들의 생활 리듬에 나를 맞춰야 하는 모든 과정이 이제는 육체적으로도 버겁게 느껴진다.
늙으면 익숙한 곳이 가장 편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이상,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식집으로 향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자식들은 오시라고 말하지만, 늙은 부모는 행여나 자신이 자식의 삶에 작은 짐이라도 될까 봐 방문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내가 가는 것이 자식 부부의 주말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나중에라도 자식들이 나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자식집 문턱을 넘지 못하게 만든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끝까지 멋진 노인으로 기억되고 싶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삶을 지키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Copyright © 나를 돌보는 마음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