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칼집에서 나온 '업무개시명령'이지만…약발 먹힐까?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2022. 11. 30.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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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업무개시명령 서둘러 강행한 정부…집행 과정 곳곳에 허점투성이
송달과정부터 곳곳이 장애물…업무복귀 여부 확인 후 처벌까지 상당한 시일 걸릴 듯
'집단 거부 아닌 개인 사정' 주장하면 처벌 어려워…국토부도 "케이스마다 다를 것" 기준 제시 못해
'어디까지 형사처벌하나' 처벌수위도 골칫거리…관련 기준 아직도 공개 못해
기준 낮춰 처벌 확대하면 오히려 물류 위기 심화될 수도
관건은 비조합원의 동요 여부…화물연대 "정부가 비조합원과 화물연대 갈라치기 노린 듯"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28일 경기도 의왕ICD 제1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의왕=박종민 기자


정부가 결국 화물노동자들을 겨눈 칼을 칼집에서 뽑아냈다. 형사처벌 위협까지 거론하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지만, 실제 정부가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는다.

사상 첫 운수업계 업무개시명령 발동했는데…준비 과정 곳곳에 헛점 보여


국토교통부는 지난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과 관련, 시멘트업계의 집단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해당 운수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명령서를 송달받은 다음 날 24시까지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번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2004년 업무개시명령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 발동된 사례다. 그동안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위헌·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위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제도 자체가 오랫동안 실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업 초기부터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거론하던 정부가 결국 칼을 뽑아든 것이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 상황 속에서 전례 없는 업무개시명령을 '속도전'으로 강행하면서 정부의 명령 집행 과정 곳곳에 허점이 눈에 띈다.

업무개시명령, 송달→업무복귀 확인→처벌까지 상당 시일 소요될 듯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엿새째인 29일 정부가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자 이날 오후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앞에서 화물연대 충남본부 조합원들이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업무개시명령 송달 과정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은 명령서를 당사자에게 송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발휘돼 다음날 24시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애초 명령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토부 공무원과 해당 지자체 공무원, 경찰 등 3인 1조로 76개 합동조사단을 꾸려 각 시멘트 운송업체의 현장을 직접 찾아 명령 송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국토부 원희룡 장관은 지난 28일 "고용자 또는 동거 가족에게 3자 송달을 하면 바로 효력이 발생하게 돼 있고, 그것도 안 되면 공시하는 방법도 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로 알릴 경우 최소한의 시간이 지나면 명령이 송달된 것으로 보는 유사 행정절차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을 집단 발송할 경우 수신인이 수신에 동의해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을 고의로 회피하는 사례에는 사실상 별 쓸모가 없다.

국토부, 시멘트업계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분주. 연합뉴스


다만 국토부 김수상 교통물류실장은 "업체에서 화물차주에게 전달하도록록 할 수도 있다"면서 "과태료를 처분할 때에도 화물운송업체에 과태료 고지서를 대신 전달하도록 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장 조사를 통해 번호판을 활용해 집단운송거부 여부를 확인하면 자동차 번호판을 근거로 화물차주의 성명, 주소를 확인해 명령서를 송달할 수도 있다"며 업무개시명령 집행에 큰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송달을 마치는 시점은 개별 노동자마다 들쑥날쑥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에 흩어진 채 고정된 출퇴근 장소도 없고, 운송계약 관계도 굉장히 복잡한데 이를 하나하나 확인한 뒤 주소·연락처를 확인한 다음 송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뒤, 해당 운수사업자·종사자가 실제 업무에 복귀했는지 여부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명령에 불복한 경우 소명 절차까지 고려하면 실제 처벌 등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아파서 쉬었다' 개인 사정 주장하면 처벌 어려워…형사처벌 대상 기준도 아직 불명확

시멘트업계 업무개시명령 발동에 분주한 국토부. 연합뉴스

명령이 송달되더라도 현장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업무개시명령의 요건부터 불분명하고, 그동안 시행된 적이 없어 관련 규정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에 규정된 업무개시명령의 발동 요건을 살펴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할 때 명령된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부른 안전운임제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위의 요건을 뒤집어 말하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 '개인적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면 업무개시명령이 아예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송달 대상자가 '몸이 좋지 않다', '집안 사정이 있어 일을 쉬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등의 이유를 대고 이를 소명할만한 증거 등을 제시한다면 업무개시명령을 적용하기 어렵게 된다.

문제는 업무개시명령 제도 자체가 전례가 없다보니 집단거부 동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유로 거부했다는 소명이 맞는지를 판단할 근거 기준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토부는 운송거부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송달한 후, 일정 시점이 지나 업무 복귀 여부를 확인해 복귀하지 않은 경우 업무복귀 거부자로 간주한다"며 "미복귀자에 대해서는 지자체, 경찰 등에 알려 적정한 행정처분 및 형사처벌이 내려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복귀 거부자의 소명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지자체, 경찰 등) 처분 주체가 하겠지만, 국토부가 관련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작 관련 기준에 대해서는 "케이스마다 다를 것이어서 예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국토부도 명확한 기준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더구나 만약 업무복귀 거부자의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내려질 처벌 수위도 아직 불명확하다.

업무복귀명령을 거부할 경우 30일 간의 면허정지(1차처분) 또는 면허취소(2차처분)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업무복귀를 거부해야 면허정지·취소의 행정처분을 넘어 벌금·징역형의 형사처벌을 받는지 여부에 대한 기준도 아직 정부가 밝히지 못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28일 경기도 의왕ICD 제1터미널에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의왕=박종민 기자


나아가 화물연대는 위헌·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위반 등을 제기하면서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과 취소 소송 제기를 검토하는 등, 정부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고 파업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유를 들며 업무복귀명령을 회피·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 원희룡 장관이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발표하면서 "업무개시명령은 운수종사자와 운송사업자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 화물운송 종사자들이 업무에 복귀함으로써 국가 물류망을 복원하고 국가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거듭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업무복귀 거부자를 발라내 실제 처벌하기보다는, 업무개시명령을 계기로 파업의 기세를 떨어뜨려 물류 위기를 최소화하고 교섭 테이블에서는 화물연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노림수에 더 가까워 보인다.

관건은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비조합원 동요 여부…비조합원 선택에 파업 성패 갈릴 듯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28일 경기도 의왕ICD 제1터미널에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의왕=박종민 기자

이 때 관건은 비조합원들이 얼마나 동요할 것이냐는 점이다. 화물차량 운전기사 가운데 화물연대 조직률은 10%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물연대 파업의 성패는 비조합원이 얼마나 파업에 결합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지난 6월 파업 당시에는 안전운임제 등 화물연대의 파업 명분에 동조한 비조합원들이 운송거부에 대거 동참하면서 파업 동력에 힘을 실었다. 반면 이번에 업무개시명령을 기점으로 비조합원들이 다시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면 화물연대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화물연대 박연수 정책실장은 "이번 파업에 비조합원들의 동참이 가시적으로 드러났는데, 업무개시명령을 받았을 때에는 아무래도 조합원보다 비조합원이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도 총파업에 결합한 비조합원을 화물연대와 갈라놓으려는 수순으로 업무개시명령을 선택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짚었다.

뒤집어 말하면 만약 비조합원들이 집단거부가 아니라고 소명하고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다면 정부로서는 외통수에 빠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관련 기준을 낮춰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더기로 처벌할 경우, 1차로 내려질 처분이 30일 간의 영업정지다. 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려지는 처벌이 다시 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더구나 만약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고 업무개시명령이 중지되더라도 한 번 내려진 면허정지나 취소 처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물류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이 오히려 화물기사들의 업무 복귀를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화물연대와 국토부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차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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