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법 위에 있지 않다”…X·텔레그램과 전쟁 나선 세계
김정수 방심위원 “굉장한 결단…브라질 조치 참고해야”
“표현의 자유 뒤 책임 방기” 비판…과잉규제 우려도 나와
“브라질 대법원이 엑스(옛 트위터)에 대해 서비스 중단이라는 강경책을 냈다. 굉장한 결단이다. 우리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이런 조치들이 가능한가.”
지난 2일 딥페이크 성범죄 대책을 논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전체회의 자리에서 김정수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딥페이크 성착취영상 유통 창구가 된 텔레그램에 대해 한국 이용자들의 접속을 전면 차단하는 대응책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방심위 사무처는 “텔레그램이 사회적 책무를 가지지 않고 소통에 부응하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차단 조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정수 위원은 “브라질의 조치를 분명히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램의 ‘불법 콘텐츠 모르쇠’ 바뀔까
방심위가 텔레그램 차단 같은 조치를 당장 단행하긴 어렵지만, 국외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상 유해 정보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서비스 접속을 차단하거나 운영 책임자를 구속하는 등 강경 대응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강제 조치는 한때 권위주의 독재 국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진다. 그간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책임을 방기해 온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조처가 규제 과잉이나 시민 사회 위축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상존한다.
다국적 플랫폼 기업 규제는 늘 난제였다. 글로벌 사업자인 이들 기업을 각 국가의 개별 법률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엔(n)번방 사건’ 이후 2020년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국내·외 통신사업자가 불법촬영물을 관리·감독하고 필요한 경우 삭제 조치하도록 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텔레그램 같은 국외 기업이 국내 유관 기관의 불법 콘텐츠 삭제 요청을 무시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점은 물론이고, 상호 소통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7월까지 방심위가 텔레그램에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정보 시정요구는 78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엑스(188건)의 절반 수준인데, 그마저도 텔레그램에 일방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뿐 방심위가 그에 대한 회신을 받은 적은 없었다. 딥페이크 논란이 커진 최근에서야 방심위는 텔레그램과 상호 소통에 성공했다. 방심위는 지난 3일부터 텔레그램 쪽과 핫라인을 구축했고, 이후 “100% 디지털 성범죄 정보 삭제 요청(11일 기준 75건)을 들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기업들 CEO 체포·서비스 차단에 ‘움찔’
텔레그램의 이런 태도 변화에는 최고경영자(CEO) 수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프랑스 검찰은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를 체포했다. 적용된 혐의는 12가지로, 텔레그램에서 자행된 미성년자 성착취물 제작·배포, 마약 밀매 등에 두로프가 공모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그가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범죄 수사에 협력을 거부하고 관리 책임을 저버리면서 각종 범죄를 방조했다고 본다. 두로프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출국금지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정수 위원이 거론한 브라질 사례도 초유의 사건이다.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 서비스를 차단했다. 엑스가 전임 자이르 보우소나르 대통령의 부정 투표 음모론을 퍼뜨리고 인종주의, 나치즘, 혐오 발언을 확산하는 극우 세력의 네트워크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계정 삭제 같은 사법 당국의 요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조치로 하룻밤 새 약 2천만명의 이용자가 트위터에 접속할 수 없게 됐다.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 접속할 경우에는 벌금이 부과된다.
기술의 공공성을 연구해온 존 노턴 교수는 가디언 기고 칼럼에서 프랑스의 두로프 체포를 두고 “거대 기술 기업이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평했다. 브라질의 엑스 접속 차단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허위 정보가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로 유포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서구 사회는 경종을 울려야 했다”며 “때가 된 것”이라고 썼다. 표현의 자유를 남용해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규제와 ‘표현의 자유’ 사이 균형 찾아야
한국에서도 플랫폼의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는 플랫폼 기업이 딥페이크 등 허위영상물에 대해 즉시 조처하도록 하거나(김용민안·김남희안), 수사 협조를 위해 유통된 불법 정보를 보존하도록 하는(이수진안) 등 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12일 방송통신위원회 주최 ‘딥페이크 성범죄영상물 대응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DSA)처럼 “플랫폼 사업자에 불법 콘텐츠 관리를 의무화한 입법이 필요하다”(정필운 한국교원대 교수)는 제언이 나왔다.
다만 갑작스러운 규제 일변도의 국가적 개입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검열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에서 두로프가 체포된 직후, 미국의 디지털 인권 단체 엑세스나우는 성명을 내어 경계심을 표명했다. 이들은 텔레그램의 인권·보안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위해 사용하는 플랫폼의 관리자를 입증 가능한 증거 없이 구금하는 일은 과잉 검열과 시민사회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5기 방심위원을 지낸 윤성옥 경기대 교수(미디어영상학과)는 “규제의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 사이 균형을 찾아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플랫폼을 차단한다고 인터넷을 완벽하게 규제할 수 없다. (차단하면) 다크웹 등을 통해 (범죄가) 다른 방식으로 우회해 나타날 수 있다”며 “법적 규제뿐 아니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등 사회적 규제, 기술적 규제가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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