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2,300만대가 마시는 기름, 그 놀라운 여정
대한민국에서 달리는 2,300만 대의 자동차들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마다, 그 연료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 5위의 정제기술을 자랑하며 95번째 산유국이 되었는지, 그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5,000km 대장정, 중동에서 우리나라까지

서울에서 부산을 30번 왕복하는 거리와 같은 25,000km.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중동 페르시아만까지의 해상 거리입니다. 유조선이 이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만 무려 45일이 걸립니다.
페르시아만까지 가는 데 16일, 원유를 선적하는 데 4일, 무거워진 배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데 22일, 그리고 원유를 정유공장 저장탱크로 옮기는 데 3일. 이 모든 과정이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마실 연료를 위한 대장정입니다.
정제기술 세계 5위의 비밀

2004년 세계에서 95번째로 산유국으로 인정받은 대한민국의 비밀은 바로 정제기술에 있습니다. 원유를 고온으로 가열해 40도에서 휘발유를, 220도에서 경유를 추출해내는 이 기술로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정제능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SK는 쿠웨이트와 사우디 등에서 67%의 원유를 수입하고, 에쓰오일은 90%를 사우디에서, 현대오일뱅크는 중동산 40%와 미국·유럽·러시아산을 다변화해 수입하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20여 개국에서 원유를 수입할 만큼 공급선을 다각화했습니다.
수출이 내수보다 많은 놀라운 현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 중 정제 후 수출하는 비율이 52.5%라는 것입니다. 내수보다 수출이 더 많다는 뜻이죠. 지난해 우리나라는 70개국에 석유제품을 수출했으며, 호주(19.5%), 싱가포르(12.2%), 일본(10.8%) 순으로 수출량이 많았습니다.
특히 항공유는 수출 1위 품목이고, 휘발유와 경유도 세계 2~3위권의 수출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정제기술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자동차 산업과 정유산업의 동반성장

현대차의 팰리세이드 같은 대형 SUV부터 소형차까지, 우리나라 2,300만 대의 자동차가 사용하는 연료의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정제기술 덕분입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파티스 크루드와 미국 텍사스 WTI 원유 같은 고급 원유를 정제해 만든 연료는 자동차 성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의 핵심, 해상 수송로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67%가 중동에서 오기 때문에 페르시아만, 인도양, 말라카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의 해상 수송로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될 위험에 대비해 정유사들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95번째 산유국의 자부심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 5위의 정제기술을 바탕으로 95번째 산유국이 된 대한민국. 이제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마시는 연료가 단순히 수입품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수출이 내수를 넘어서는 정제 역량은 우리나라가 단순한 원유 수입국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허브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든든한 뒷받침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