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타임 레전드 크로노그래프' 롤렉스 데이토나의 변신
우리 롤렉스(Rolex)가 달라졌습니다. 2020년 형형색색의 컬러 다이얼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는 왼손잡이를 고려한 GMT 마스터 II를 선보이는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혁신을 추구하는 여느 브랜드에 비하면 소소한 차이일 수 있지만, 변화에 다소 인색하던 과거 롤렉스를 떠올리면 지금의 롤렉스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올해는 변화된 자신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수해오던 고집마저 꺾는 등 한층 더 과감해졌습니다. 그만큼 예상 밖의 시계들이 가득했습니다. 반전의 연속이던 롤렉스 드라마의 주연은 역시나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침내 속살을 노출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입니다.
‘올타임 레전드’ 크로노그래프로 통하는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는 1963년 탄생했습니다. ‘데이토나’라는 이름은 잘 알려진 대로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해변에서 열리는 데이토나 컨티넨탈(Daytona Continental, 지금은 ‘데이토나 24시’) 레이싱 대회에서 유래했습니다. 참고로, 롤렉스는 첫 대회가 열린 1962년부터 지금까지 데이토나 24시의 타임키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데이토나 24시의 역사가 곧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이하 데이토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데이토나는 그와 함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큰 골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부 디자인은 시시각각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레퍼런스 안에서도 요소요소가 다른 모델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데이토나의 세대를 큰 범주로 나눌 때는 무브먼트로 구분하곤 합니다. 밸주 72 시리즈를 비롯한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한 1세대, 1988년 제니스의 엘 프리메로 400을 수정한 자동 칼리버 4030과 같은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한 2세대, 새천년(2000년)을 맞아 선보인 자동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4130을 도입한 3세대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데이토나 60주년을 맞은 올해, 다음 세대를 예고하는 신형 엔진 4131이 나왔습니다.
자동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4131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기존 4130을 베이스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검증을 마친 칼리버 4130의 안정적인 설계는 유지한 채, 차세대 워크호스 32xx 시리즈처럼 독자적인 크로너지 이스케이프먼트(Chronergy escapement)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니켈-인 합금으로 제작한 크로너지 이스케이프먼트는 항자성은 물론 전통적인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를 최적화한 덕분에 에너지 효율까지 뛰어납니다. 칼리버 4131의 나머지 주요 부품은 베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항자성 및 내구성이 뛰어난 파라크롬 밸런스 스프링, 파라플렉스 충격흡수 장치 등 롤렉스가 자랑하는 최신 기술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크로노그래프 또한 컬럼 휠과 수직 클러치 조합으로 안정적인 작동을 보장합니다. 스펙도 큰 변화 없습니다. 시간당 진동수는 28,800vph(4Hz), 파워리저브는 약 72시간입니다. 일 허용오차는 -2~+2초.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COSC) 인증을 상회하는 높은 신뢰성을 자랑합니다. 관련 인증을 획득한 건 물론입니다.
신형 엔진을 품은 케이스 역시 리뉴얼을 거쳤습니다. 직경은 40mm로 이전과 같지만, 두께가 약 12.4mm에서 11.9mm 정도로 줄었습니다. 새로운 데이토나 Ref. 126500LN의 케이스는 그와 함께 러그 역시 손목에 맞춰 아래쪽으로 좀더 휘어지게 설계한 덕분에 착용감이 더 좋아졌습니다. 케이스 우측 러그는 얇게 다듬고, 그에 연결되는 크라운 가드는 크라운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보다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좀더 길게 제작했다고 합니다. 독자적인 세라믹 합성물인 세라크롬으로 만든 베젤도 언뜻 봐서는 뭐가 다른가 싶지만, 외곽을 보면 케이스와 같은 소재의 얇은 링이 해당 베젤을 감싸고 있습니다. 긁히진 않지만 스틸에 비해 잘 깨지는 세라믹 베젤의 단점을 외부적인 요소로 영리하게 보완한 셈입니다. 베젤 표면에는 전통대로 평균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타키미터 스케일이 새겨져 있습니다. 각 눈금은 PVD 공정을 통해 플래티넘 입자를 얇게 채워 넣었습니다. 유난히 또렷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케이스 방수 사양은 100m로 이전과 동일합니다.
케이스의 변화는 뒷면에 이르러 클라이막스를 맞이합니다. 솔리드백으로 꽁꽁 감춰왔던 무브먼트를 마침내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라스 너머로 드러냈습니다. 롤렉스가 이처럼 무브먼트를 노출한 건 과거 사각형 첼리니 프린스 이후로 처음입니다. 첼리니 프린스는 사각형의 수동 칼리버 7040을 탑재했으니, 원형의 자동 무브먼트를 드러낸 건 이번이 최초인 셈입니다. 단,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데이토나 50주년 때처럼 아이스 블루 다이얼로 선보이는 플래티넘 버전만 케이스 뒷면을 오픈합니다. 또 해당 모델에 탑재하는 칼리버 4131에 한해 옐로우 골드 로터를 사용합니다. 여러모로 ‘역시 롤렉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다이얼은 비율이 약간 달라졌습니다. 아플리케 아워 인덱스는 좀더 가늘고 길게 다듬는 한편, 표면에 도포한 독자적인 크로마라이트 야광물질은 면적을 넓혔습니다. 덕분에 푸르게 빛나는 야광이 어둠 속에서 보다 확실한 시인성을 약속합니다. 각 카운터에서 스케일을 표시한 챕터 링은 이전보다 얇아졌습니다. 다이얼 상단에 로고와 함께 5줄로 길게 늘어선 특유의 레터링 역시 글꼴이 약간 얇아졌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다이얼의 여백이 좀더 늘어난 셈입니다. 다이얼 6시 방향 끝자락에는 스케일 사이에 롤렉스 왕관 로고가 추가됐습니다. 깨알 같은 이 로고는 롤렉스에서 차세대 무브먼트를 탑재한 신제품에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크로노그래프 특유의 세밀한 스케일을 사용하지 않는 데이토나 이외의 제품은 원산지 표시 사이에 동일한 로고를 나타냅니다.
3연 링크 구성의 오이스터 브레이슬릿은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운데 링크는 케이스와 동일하게 유광 가공하고, 양쪽 사이드 링크는 브리시드 가공을 통해 무광 처리했습니다. 특유의 클라스프에는 링크를 빼지 않고 브레이슬릿 길이를 5mm 정도 손쉽게 조절할 수 있는 이지링크 컴포트 익스텐션 시스템이 포함돼 있습니다. 참고로, 골드 케이스의 경우 롤렉스 고유의 러버 스트랩으로 통하는 오이스터플렉스(Oysterflex) 브레이슬릿을 매칭한 버전도 있습니다.
새 시대의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Ref. 126500LN은 역시나 기존과 동일하게 소재, 컬러, 스트랩 등 각 요소를 달리해 다양한 베리에이션으로 나뉩니다. 가격은 1935만원(스틸 케이스/스틸 브레이슬릿)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