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오 회장의 토요타 '센추리 독립'…현대차·제네시스에 남긴 과제는?

센추리 브랜드 출범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 /사진=토요타

센추리 브랜드 출범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 /사진=토요타"잃어버린 30년을 뒤로 하고, 향후 100년을 준비할 센추리!"

토요타가 자국의 상징 '센추리(Century)'를 별도 브랜드로 독립시키며 일본 럭셔리 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고급차 확장이 아니라,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감성과 장인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이다.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10년 전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 분리한 결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경쟁의 무대는 '럭셔리'가 아니라 '헤리티지'와 '정체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회장은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2025 재팬모빌리티쇼' 프레스데이에서 센추리를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로 공식 발표했다. 그는 "센추리는 단순한 고급차가 아니라 일본을 짊어지고 태어난 차"라며 "봉황 엠블럼은 평화를 상징하고, 센추리는 일본의 본질을 세계에 보여줄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는 1948년 전쟁이 끝난 후 불과 18년 만인 1963년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 센추리를 설립했다. 암울했던 전후 시대에 어떻게 서구 자동차와 경쟁할 수 있겠냐는 분위기에서 프리미엄급 차를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이제 센추리는 기존 렉서스보다 한 단계 높은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매김 시킨다. 렉서스가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대중 고급 브랜드였다면, 센추리는 수작업 제작과 맞춤 주문 방식으로 롤스로이스·벤틀리·마이바흐와 같은 전통 명차들과 경쟁한다. 이번 재편으로 토요타는 고급차 시장을 '프리미엄-하이엔드'의 2층 구조로 완성했다.

센추리 

센추리 

센추리토요타는 이날 센추리의 새 모델을 자신있게 공개했다. 신형 센추리는 앞선 3세대 센추리와 완전히 달라진 자태와 웅장함을 표현했다. 주황 컬러의 미래지향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에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토요타의 전략은 명확하다. 전동화로 성능이 평준화된 시대, 남는 것은 브랜드의 상징성과 이야기다. 센추리는 1967년 1세대 출시 이래 일본 총리 관용차로 쓰이며 '기술의 정점'으로 자리해왔다. 나카무라 켄야 주사의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봉황 엠블럼에는 에도시대 금속세공 기술이, 시트에는 니시진 직물이 들어갔다. 이런 '일본의 손맛'이야말로 센추리가 지금까지 생존해온 이유다.

아키오 회장은 이번 발표에서 단순히 브랜드 독립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의 정체성을 호소했다. 그는 "일본에는 토요타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 자동차 산업이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진심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토요타·렉서스·다이하츠·센추리 등 4개 브랜드를 '원팀'으로 묶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동화, 수소연료전지, 모터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공존'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같은 행보는 현대차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읽힌다. 2015년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하나의 브랜드로 독립시킨 이유는 '국산 럭셔리 브랜드'의 필요성이었다. 당시 제네시스는 에쿠스와 그랜저 사이에 있던 '제네시스 BH' 세단을 기반으로, 'G80'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후 G90·GV80 등 라인업을 확장하며 프리미엄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제네시스는 여전히 '현대의 고급차'라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제네시스 2026 GV80, GV80 쿠페

제네시스 2026 GV80, GV80 쿠페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제네시스를 단순한 고급 브랜드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헤리티지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제네시스의 디자인 철학은 '여백의 미'로, 한국 전통 미학에서 출발한다. 실내에는 금속 상감 기법을 응용한 메탈 지-메트릭스 패턴이, 외장에는 '한라산 그린'과 '크레인 화이트' 같은 한국식 색명(色名)이 적용됐다.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은 '한국적 일상의 향유'를 주제로 한옥의 공간 구조를 구현했다.

이처럼 현대차는 '한국적인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있다. 반면 토요타는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전통적 감성을 고도화해 럭셔리의 상징으로 삼았다. 두 회사의 방향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국가 정체성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삼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다만 시장의 구조는 다르다. 일본은 내수 기반이 탄탄하고 초고가 수요층이 두텁다. 센추리의 연간 판매량은 많지 않지만, 브랜드가 가진 상징성이 일본 산업 전체를 대변한다. 반면 한국은 초고가 럭셔리 시장의 규모가 작고, 제네시스의 주력 무대는 북미와 중동 등 해외다. 

제네시스 전기차 GV60

제네시스 전기차 GV60따라서 토요타처럼 '초고가 독립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신 제네시스가 전동화 시대에 맞춘 새로운 플래그십 브랜드, 혹은 순수 전기 하이엔드 라인을 별도로 구축할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토요타의 이번 '센추리 독립'을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본다. 전동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성능보다 감성, 기술보다 헤리티지가 브랜드의 가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토요타의 센추리 독립은 브랜드 상징성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이라며 "제네시스 역시 전동화 시대에 맞춘 새로운 프리미엄 정의를 내릴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의 고민은 '두 번째 제네시스'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히 고급 모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제네시스 이후 10년을 견인할 차세대 럭셔리 아이콘이 필요하다. 토요타가 센추리를 통해 '일본의 자존심'을 세웠다면,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통해 '한국의 품격'을 어떻게 세계에 각인시킬 것인지 답을 내야 할 때다.

/도쿄(일본)=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