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즈음에 일하기 시작한 아재 펨붕이임.
수련 받던 시절에 서울 시립 보라매 병원에서
일 년에 몇 달 근무하고는 했는데
그 때만 해도 방송국들이 전부 여의도에 있던 시절
보라매병원이 방송국이랑 가깝다 보니
드라마에서 병원 장면 찍으러 가끔 오는 편이었음
본격 의학드라마 말고 일반드라마에서
병원 장면 필요할 때 찍으러 오는 곳이었음.
(당시 기준 중앙대 흑석병원이랑
보라매병원이 제일 많이 나온 걸로 알고 있음)

내가 본 드라마에서 실제로 기억나는건 그사세
송혜교 배우님 전남친이 대학병원 수술하는 의사인데
그 사람 일하는 장면이나 송혜교가 그 남자
만나러 갈 때 나오는 병원이 보라매 병원이었음
그러다 2011년엔가 보라매 병원이 리모델링을 함
보통 병원들이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 하면
홍보 목적으로 평소보다 드라마 더 많이 찍으려 함
최근 제일 유명한 슬의생이 신생 병원인
이대 서울병원에서 찍은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랄까


그래서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지나가는 장면 정도로 보라매 병원이 등장하는데
개 중 유명했던 건 저 두개 정도??
박시연 배우님 볼려고 쫄래쫄래 구경갔는데
결국 송중기님만 보고 아쉬웠던 기억도 나고
여튼 잡설은 여기까지고
그 시절에도 방송국 놈들 갑질은 대단했어서
슛 들어가기도 전부터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
조용히 해달라고 난리난리 치고
지금 생각해보면 드라마가 무슨
나라 구하는 일도 아닌데 겁나 오바하곤 했었음
그러다 결국 내가 크게 당하게 된 날이 있었는데
보통 중환자가 수술 받게 되면 마취 안 깨운 상태에서
그대로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고
거기서 며칠 간 더 재우면서 인공호흡하고
그렇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그러면 수술방에서 중환자실로 옮기는 순간이
일종의 취약한 시간임
(그래서 요새 병원들은 수술방이랑 중환자실을
아예 붙여 놔서 바로 옮길수 있게 디자인 함)
몇 분 안되지만 그 순간에는 기계 호흡이 안되서
인턴이나 1년차 레지던트가 암부백 손으로 짜서
인공호흡해주고 환자에게 들어가야 하는
각종 약들도 못들어가는 상황인데
워낙 시간이 짧으니깐 보통은 별일 안생기고 잘 감
그날 따라 드라마 촬영이 중환자실 입구였어서
방송국 넘들이 입구 앞 복도를 틀어 막아 버림
(무슨 드라마 였는지는 기억이 안남)
한손으로 앰부 짜면서 이송요원님이랑 환자베드 끌고
중환자실 앞까지 왔는데
이 넘들이 찍어야 된다고 길을 열어 주질 않는거임
그 때도 다 허가 받았네 어쩠네 그랬었던 것 같음
지금 같으면 나도 머리가 커져서
난리난리 쳐서 열고 들어갔을 텐데
그 때는 갓 졸업한 초보 사회인이라 쫄아서
말도 못하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는 이놈들이 컷이 끊겨도 비켜 주질 않더라고
드라마라는게 한 장면이어도 여러 번 찍는 것 같던데
나는 어버버 하느라 항의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다가
그러고 한 10분 쯤 됐나
갑자기 환자가 깨기 시작함
환자 계속 재우려면 약이 연속적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송중이라 그게 안들어가니깐
환자 의식이 조금씩 돌아 온 건데
이러면 일단 자발 호흡 생기면서
내가 암부 짜는거랑 타이밍이 안 맞게 되고
그러면 환자 산소 환기가 안되고
환자는 정신없는데 기관삽관 되어 있으니깐
무의식 중에 뽑으려고 난리 치고 그러는데
이게 환자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뽑으려고 하는 거라
혼자 제압하기가 쉽지 않음
그렇게 환자랑 옥신각신 하는동안
결국 환자 몸에 붙어 있어야 할
모니터 장치 중 일부가 떨어졌는지
모니터링 기계 알람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함

요 기계인데, 이게 환자한테 조금이라도 문제 생기면
주변의 모든 의료인에게 상황을 알리라고 쓰는 기계라
장치가 손가락이나 흉부에서 빠지거나 하면
진짜 동네방네 다 들리게 큰 소리를 내는 장치임
여튼 이 넘이 미친듯이 큰 소리를 내니까
드라마 찍다가 난리가 났음
그러고 방송국 놈들 몇명이 뛰어왔는데
이 놈들이 와서도 길은 안 열어주고
어버버 하고 있는 거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놈들한테 쌍욕을 막 날림
(사실은 환자 안 좋아질까봐 무서워서 쫄아있다가
걔네들 보니깐 울분이 확 올라왔던 듯)
ㅆㅂ ㅁㅊㄴ들아.
너네 엄마가 이러고 있어도 안 열어줄거냐
환자 죽어야 비켜줄거냐 등등
고래고래 소리치는데 그 놈들은 계속 어버버하고
그러다 결국 에스텍(병원 보안 요원들)
몇명와서 몸으로 길 뚫어줘서
겨우 환자 밀고 들어갔었음
들어가서 부랴부랴 중환자실 간호사들이랑
환자 정리하고 보호자 불러서
수술설명하려고 중환자실 나왔는데
방송국 놈들 필요한 거 다 찍었는지 다 사라져 있더라
난 한 놈은 남아서 사과라도 하고 갈 줄 알았는데
진짜 양심 없는 새끼들이었음
여튼 그 뒤로 나는 길가다가 방송국 차만 봐도 빡침
크게 봐서는 자동차 렉카 나 방송국 드라마 놈들이나
똑같다고 생각함
그냥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들한테 피해주고
그러면서도 ㅈㄴ 당당함.
이번 병산서원 사건 좀 크게 이슈화돼서
앞으로 저런 버르장머리좀 고쳐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