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수능지옥’ 아니면 ‘수행지옥’
지필·모의고사에 수행까지 연 70회 시험
학생을 학교서 내모는 제도 방치할 건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교육기업 공신닷컴 대표 강성태씨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수행평가로 고통받는 중고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선의로 도입된 제도가 학교를 황폐화하는 현실이 놀라웠다. 학생, 학부모, 교사, 졸업생이 남긴 1,900개 댓글은 영상보다 처절했다.
내신 준비라곤 △중간·기말고사 △예체능 실기 △교련 총검술 16개 동작(또는 붕대 감기)이 전부였던 부모 세대에게, 수행평가는 존재부터가 낯설다. 1999년 도입된 수행평가는 ‘교사가 학생의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법’(교육부 정의)이다. 지필고사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창의력이나 문제 해결력을 면밀히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능과 정규시험에 찌든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취지 자체는 좋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선 학생들이 "수행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비명을 지른다. 일단은 평가가 많아도 너무 많다. 강씨가 소개한 고교생 사례를 보면 중간·기말, 과목별 수행, 평가원 모의고사 등을 합해 연간 70회 정도의 테스트를 치른단다. 방학 빼면 매주 두 번꼴로 평가가 있는 셈이다. 한 평가를 세 번에 나눠 치른다고도 하니, 실제 느끼는 부담은 그 이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걸 과연 중고생이 혼자 할 수 있나’ 싶은 고난도 평가가 난무한다는 점. 실제 사례로 ①중1에게 해외여행 소개서를 영작하라는 수행 ②고교생에게 창업계획서를 쓰라는 과제 ③노래를 편곡하라는 음악 수행 ④미술작품을 응용해(컬래버) 가방을 디자인하는 미술 수행 ⑤저글링(공 여러 개를 공중에 던지고 받는 묘기)을 준비하는 체육 수행 등이 있었다. 결국 부모가 부담을 뒤집어쓰거나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걸 다 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기말고사 1주일 전까지 수행 준비를 한다”거나 “수행 때문에 새벽 3시에 잔다”는 푸념이 쏟아진다. “제발 시험공부만 하게 해 주세요”란 비명이 터지고 “잠은 죽어서 자렵니다” 같은 체념이 나온다. 뭔가 과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얘기들이라,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물어보고 학부모 카페 등을 검색했더니 다르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수행 때문에 자퇴했다”거나 “자퇴를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는 얘기가 쉽게 발견된다.
‘수능지옥’에서 탈출하고자 수시 제도를 강화하고 상시평가를 도입했더니 이제는 ‘수행지옥’이 아이들 숨통을 조인다. 수능 한 번, 지필고사 몇 번에 인생을 걸어서야 되겠느냐고 만들었던 새 제도가 매일매일을 ‘수행의 고행길’로 만들었다. 70번 평가를 받는 학생에게 어찌 ‘배움의 즐거움’을 운운할 수 있나. 학생은 버틸 수 없고, 부모는 아이가 안쓰럽고, 교사는 주관적 평가를 객관적으로 해야 하니 모두가 괴롭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도라면, 바뀌어야 한다. 수시 모집인원이 80%에 이른 현 입시에서 수행평가 자체를 당장 폐지하긴 쉽지 않겠지만 평가의 횟수, 범위, 난이도 조정을 통해 부담을 줄이는 개선은 분명 필요하다. ‘어른들은 왜 자기들도 안 해본 이런 제도를 우리에게 강요하나요’란 댓글은 뼈아프다. 교육정책 입안자들께서 그 댓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래서 수행평가를 대체할 수단은 뭔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입시나 교육과정상 수행평가만 손볼 수도 없는 구조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한들, 그 좋은 제도를 버티지 못하고 학생들이 학교를 자꾸 탈출하려 한다면, 이제 변화의 시기가 온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학교의 근간인 학생을 학교에서 몰아내는 제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나가려는 학생을 붙잡고 “이렇게 한번 달라지면 어떨까”라고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우리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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