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는 왜 ‘비호감 영부인’이 됐을까
‘조용한 내조’ 약속했으나 집권 후 광폭 행보
‘사법리스크’ 우려에 공천 개입 의혹까지 발발
與 불만 확산에…‘김건희 특검법’ 이탈표 촉각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학력 위조 논란부터 주가 조작 의혹, 공천 개입 논란까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관련 수사와 취재가 계속되는 등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그가 '조용한 내조'에 나서지 않자,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불만이 제기되는 모습이다.
정치권 일각에는 김 여사를 향한 비판이 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역대 영부인의 행보와 비교해 김 여사의 활동폭이 넓지도, 이례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 여사를 향한 민심의 온도는 분명 이례적으로 차갑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때 '정치 셀럽'으로까지 불렸던 김 여사는 왜 '비호감 영부인'으로 전락한 것일까.
김건희만? 부대 찾은 육영수, 셰프와 시장 찾은 김정숙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남성 대통령이었다. 곧, '퍼스트레이디'는 박근혜 정권을 제외하고 늘 존재했다. 그리고 모든 영부인이 내조만 하지는 않았다. 명절이면 시장을 방문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세계 정상의 영부인들과 차담도 나눴다. 이 모든 장면은 사진으로 기록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각종 천을 동대문시장에서 사다가 식탁보 등을 직접 만들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육 여사는 박 전 대통령과 동행하지 않고 홀로 전방부대를 방문해 통닭과 사탕 봉지, 축구공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 보병, 취사병과 사진을 찍은 뒤 직접 출력해 부대에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다른 영부인들도 청와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명절 등이 되면 대통령과 별도의 일정을 소화하며 민생을 살폈다. 특히 '시장 정치'에 적극적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1994년 12월 김장철에 서울 신촌에 있는 시장을 방문해 배추 물가를 직접 점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2002년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망우동 우림시장을 방문해 정부의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도 2008년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수유동의 시장을 찾아 장을 봤다. 김윤옥 여사가 밤을 사자 상인이 "덤으로 가져가라"며 밤송이를 건네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2005년 3월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여성 상인 75명을 청와대로 직접 초청해 만찬을 대접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확진자가 다녀간 시장 내 음식점에서 상인들과 오찬을 갖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동원전통종합시장을 유명 요리사인 이연복, 박준우씨와 함께 방문해 식자재를 구매하는 등 전통시장 활력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그런데 왜? '사법리스크'에 계속되는 '전화 정치'
즉, 김건희 여사의 최근 행보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여당이 야권의 '조용한 내조' 공세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권과 민심은 분명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입'이 부메랑이 됐다는 시각이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다'며 영부인의 일정 등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했다. '영부인 역할론'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김 여사는 또 본인을 둘러싼 학력위조 논란이 불거지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이 같은 약속을 번복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조선일보와 단독으로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김 여사의 역할과 관련해 "선거 때는 영부인이 특별히 하는 일이 있겠나 생각했는데, 취임해보니 배우자도 할 일이 적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일을 대통령이 다 못 한다"며 영부인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폐지했던 제2부속실 부활도 예고했다.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 여사는 '문자 정치'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취재에 따르면, 김 여사는 대선 전부터 정치권 및 종교, 사회 각계 인사들과 활발한 소통을 이어온 것으로 확인된다. 이른바 '명품백 수수 논란'을 촉발시킨 최재영 목사와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등이 김 여사와의 면담, 통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나아가 김 여사가 총선 정국에서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대국민 사과 요구'에 대한 입장을 피력한 사실이 최근 여당 전당대회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한 관계자는 "김 여사가 굉장한 '인싸'(insider,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다. 진영과 종교,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며 "정권에 대한 호감도가 높으면 이런 영부인의 스타일이 약이 될 텐데, '레임덕' 위기에 직면하니 여사의 과거 행보가 약점이 되고, 지뢰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여사를 둘러싼 '학력‧주가조작 논란'과 '비선 의혹' 등이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의 민심 이반을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데이터 심층 분석 도구인 썸트렌트(SomeTrend)로 지난달 19일부터 9월10일까지 김 여사에 대한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를 도출한 결과, '의혹' '논란' '혐의' '범죄' '비판' '뇌물수수' '금품' '특혜' '비판하다' '증거인멸' 등 부정 언어가 주를 이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여당의 '약한 고리'가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야당은 끊임없이 김 여사 관련 논란을 엮어 윤 대통령을 맹공하고 있다"며 "한동훈 대표도 전당대회에서 명품백을 둘러싼 '사과 논의 문자' 파동을 비롯해 검사 시절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관계로 김 여사와 관련한 정치적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與 불만 기류 확산…'김건희 특검법' 이탈표 촉각
김 여사를 향한 여당 내 불만도 심화되고 있다. 대통령실발 악재 탓에 당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 친한(親한동훈)계 인사들은 대통령실과의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며, 김 여사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전날 SBS 라디오에 출연, 김 여사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우리 당원들도 만나면 '여사 좀 다니시지 말라 그래'까지 얘기하더라"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마포대교에 가서 소방관들을 만난다든가 경찰들을 만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주지는 못한 것 같다"고 김 여사의 최근 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뉴스토마토'가 보도한 '김 여사 공천 개입설'도 정국의 진앙이 된 모습이다. 그간 '지라시'(풍문)처럼 떠돌던 김 여사의 '텔레그램 정치 개입 의혹'이 실명 보도를 통해 일부 드러나면서, 여권도 혼란에 휩싸인 모양새다. 나아가 김 여사와 유사한 의혹을 받는 '전주'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것도 여권에는 악재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는 '김건희 특검법'이 용산을 향한 여당 의원들의 '당심'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여사와 관련된 주요 의혹들을 수사하는 '김건희 특검법'은 전날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다시금 국회로 넘어오게 된다. 재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야당이 모두 찬성해도 192석에 그치는 만큼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법안은 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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