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부고 문자를 보냈길래.."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사실

올해 예순일곱인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경조사가 생기면 서로 연락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4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에게서 부고 문자가 한 통 왔다. 당연히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신 줄 알고 자세히 읽어봤다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부고에 적힌 사람은 친구의 아들이었다

친구에게는 마흔을 갓 넘긴 외아들이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있었고 몇 년 전 동창회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친구는 손주 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그런데 부고에는 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다.

혹시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상주에는 분명 친구와 친구 아내의 이름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화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울지도 않고 계속 사람들에게 인사만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친구는 입구에 서서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을 잡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가 오히려 말했다.
"와줘서 고맙다."
그 말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구는 울지 않았다. 조문객이 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누가 식사는 했는지 확인하며 계속 움직였다.

나는 친구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아직 눈물도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사람이 뜸해졌을 때 친구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

그제야 우리가 친구의 지난 몇 년을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알았다

친구의 아들은 몇 년 동안 큰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동창들에게 한 번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우리가 여행 이야기를 하고 손주 자랑을 할 때도 친구는 평소처럼 웃었다.

내가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친구가 말했다.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괜히 만날 때마다 내 걱정만 할까 봐 싫었어."
그리고 한참 뒤 이런 말을 덧붙였다.
"친구들 만나는 날만큼은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몇 년이 떠올랐다.

친구가 모임에 자주 나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농담처럼 "나이 드니까 사람 만나기 싫은가 보다"라고 했다. 단체방에 답이 늦으면 "요즘 왜 이렇게 바쁘냐"고 웃었다.

그 시간에 친구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우리는 40년 친구였지만 친구가 가장 힘들었던 몇 년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나오기 전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뭐 해줄 거 없냐?"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중에 다 끝나면 밥이나 한번 먹자. 그때는 아들 이야기 좀 들어줘."

며칠 뒤 단체방에는 친구들이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 한동안 조용해지면 예전처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됐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의 친구 관계와 가족의 상실을 둘러싼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때때로 가장 힘든 시간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견디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정을 알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날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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